[야구의 기억과 흔적] 가슴 설레는 가을의 향연, 한국시리즈 – 전성기뉴스
콘텐츠 바로가기

top

[야구의 기억과 흔적] 가슴 설레는 가을의 향연, 한국시리즈

올해 KBO 리그 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와일드카드전에서 정규시즌 5위인 SK 와이번스가 첫 수혜자로 4위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를 치렀다. 물론 한 경기 만에 넥센에게 준플레이오프 진출 자리를 내주고 말았지만 야구팬들은 흥미진진했다. 곰같이 기다리고 있던 3위 두산은 넥센을 상대로 3승 1패로 이기며 플레이오프에 진출, NC 다이노스와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관문을 두고 싸웠다. 결과는 3승 2패로 이긴 두산이 2년 만에 대망의 한국시리즈에 진출, 5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삼성 라이온즈와 7전 4선승의 결전만 남겨두게 됐다.

그리고 10월 31일 5차전이 열린 잠실구장엔 4승 1패로 삼성을 잠재운 두산 팬들의 찬가와 환호가 14년 만에 울려 퍼졌다. 플레이오프 승리 팀이 정규시즌 1위 팀을 누르고 패자의 진정한 축하를 받은 가을 축제였다.

2015년 KBO 리그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잠실구장에서 두산이 삼성과의 대전에서 공격을 하고 있다. 이날 비로 인해 두 번이나 경기가 중단됐다. ©이호근

KBO 리그 한국시리즈의 역사

한국시리즈는 KBO 리그 정규시즌인 페넌트레이스 1위 팀과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한 팀이 경기를 펼쳐 챔피언을 가리는 경기로, 그해 프로야구를 마무리 짓는 가을의 불꽃축제와도 같다. 경기는 7전 4선승제로 치러지며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시작됐다.

1982년 원년엔 두산 베어스의 전신인 OB 베어스가 삼성 라이온즈를 4승 1무 1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두산은 9번째(OB 포함) 한국시리즈에 올라 4번 우승했고 삼성과는 4번을 상대해서 2승 2패로 동률을 이루었지만 이번 경기로 두산이 1승을 앞서게 됐다.

1982년 원년 한국시리즈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전신)와 삼성 라이온즈의 대결에서 OB가 4승 1무 1패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후 참가 선수들이 서명한 사인볼. ©이호근

한국시리즈가 정규시즌 1위 팀의 대관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속설을 한방에 날린 시리즈가 있다. 1989년 해태, 1992년 롯데, 2001년 두산 그리고 2015년에 두산이 다시 그 역사를 썼다. 기록 속으로 들어가보면 한국시리즈에서 1승 1패로 맞선 적은 2014년까지 15번이고, 3차전에서 승리해 2승을 먼저 선점한 팀이 우승한 경우가 13번이나 됐다. 그만큼 3차전의 승률 가치가 높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많이 우승을 이끈 명장은 김응용 감독으로 해태 9회, 삼성 1회로 10번이나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당분간 그 기록을 깨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최다 우승 구단은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기아 타이거즈(해태 시절 포함)로 10번 우승했다. 그 뒤를 삼성이 8번으로 바짝 쫓고 있다. 1985년 삼성 라이온즈는 KBO 리그 최초로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은 해로 남겼다. 당시 우승 주역으로는 투수 김시진, 투수 김일융, 외야수 장효조, 포수 이만수 선수가 있었다. 삼성은 최초 전원안타, 전원 득점, 최초의 3연속 홈런, 3년 연속 100안타(장효조)라는 기록도 남겼다.

 

팬들과 하나되어 즐기는 한국시리즈 명승부

그럼 팬들이 뽑은 역대 최고의 한국시리즈 명승부는 어떤 경기였을까? 2013년 10월에 <프로야구 매니저>가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1위는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로 6차전에서 대구를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린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이 터진 2002년 한국시리즈를 꼽았다. 그 뒤를 이어 5대5로 팽팽한 7차전에서 나지완이 쏘아 올린 끝내기 홈런으로 기아를 한국시리즈 10번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게 한 2009년 한국시리즈를 2위로 뽑았다. 3위는 한국시리즈 나 홀로 4승으로 팀의 우승을 이끈 최동원의 롯데가 이긴 1984년 시리즈가 차지했고, 세 차례 무승부로 9차전까지 간 빗속 혈투로 기억된 2004년 한국시리즈가 4위에 올랐다.

그러나 올해는 원정도박 사건에 연루된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로 인해 한국시리즈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이들은 한국시리즈뿐만 아니라 프리미어12 국가대표 엔트리에서도 제외됐다. 이는 자기관리를 못한 선수에 대한 당연한 조치라 본다. 프로 스포츠가 개인적이고 자본적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스포츠 정신의 본보기가 돼야 할 스포츠 마당이다. 대(大)선수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래서 선수 자신들이 부정한 것에 대한 처신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대만 프로야구의 도박 흥망사를 잊어선 안 될 일이다.

1982년 우승 트로피는 170㎝로 대형이었다. 받침대에 네 바퀴가 달려 있어 그라운드를 돌며 우승을 환호했다. OB 베어스 선수들은 시상식이 끝난 후 샴페인 대신 캔맥주로 자축했고 어린이 팬 10만여 명에게 선물을 선사했다. 언론은 ‘그해는 10월에 몰아친 열풍이라 해도 좋을 만큼 많은 관중 동원과 경기마다 박진감 넘친 플레이로 프로야구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했다. 참고로 첫 한국시리즈 MVP는 김유동 선수였다. 당시 한 일간지는 ‘비행접시처럼 날아간 김유동 만루홈런’이라고 멋진 제목을 달아줬다.

 

관중과 수입은 어땠을까?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엔 6경기에 관중은 10만4449명(1일 평균 1만7408명), 수입은 2억345만4320원(1일 평균 3390만9053원)이었다. 전기리그 우승 팀과 후기리그 우승 팀이 7전 4선승제로 한국시리즈를 거행했다. 30년을 넘긴 2014년 KBO 리그 한국시리즈는 6경기에 관중은 8만8548명(1일 평균 1만4758명), 수입은 30억9111만400원(1일 평균 5억1518만4067원)으로 원년 관중보다는 적었지만 수입 면에서는 15배 정도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많은 관중을 불러들인 한국시리즈는 1996년 시리즈로 7경기에 21만634명이었고, 최저 관중은 1991년 시리즈로 4경기에 4만9404명이었다. 수입 면에서 보면 최고의 수입을 올린 한국시리즈는 7경기에 38억6475만9000원을 올린 2013년 시리즈였다. 최저 수입을 기록한 건 4경기에 1억1768만560원을 거둔 1987년 한국시리즈였다.

수입은 KBO 규정상 포스트시즌 수입 가운데 운영비와 야구발전기금 등 40%를 제외하고 나머지 60%를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4개 구단에 배분한다. 먼저 정규리그 우승 팀에 20%를 떼어주고 나머지 금액은 포스트시즌 1~4위 팀에 차례로 50%, 25%, 15%, 10%를 나눠준다.

가을의 향연 한국시리즈, 어느 팀이든 어느 선수든 정상에 올라가 그 환희를 맛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한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에서 프로야구가 부당함과 부정에서 벗어나 부패가 없는 깨끗하고 정정당당한 프로 스포츠의 멋진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 세우는 일은 수 년, 수십 년이 걸릴지라도 무너지는 일은 한순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