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병, 저장강박증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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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하는 병, 저장강박증

2015.11.18 · HEYDAY 작성
Q 쓰레기까지 모아두는 어머니, 이대로 괜찮을까요?저희 어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알뜰하고 잔정도 많아서 쓰던 물건을 잘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실수록 버리지 못하는 습관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낡은 신발과 옷, 다 쓴 화장품은 물론, 고장 나서 못 쓰게 된 전자제품까지 모아두십니다. 어머니는 나중에 다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고,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버리는 게 너무 아깝다고 하시지만, 이런 물건들 때문에 생활공간이 좁아져서 같이 사는 가족들 모두가 불편해하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어머니가 모아둔 물건들이 쓰러져 아버지가 다친 적이 있는데도, 여전히 그 물건들을 버리지 않아 가족들과 크게 다툰 적도 있습니다. 도가 지나친 어머니의 물건에 대한 애착, 문제가 있는 걸까요?

버리지 ‘못’하는 그 마음을 헤아려라

강박장애 중에는 쓸모없는 물건을 방 안 가득 쌓아두고 쓰레기에 불과한 것도 마치 귀중한 수집품인 양 모아두는 저장형 강박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hoarding type)도 있다. 우울증이나 치매 같은 정신질환 때문에 저장 강박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전문적인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른들이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쉽게 내다 버린다, 물건 아낄 줄 모른다”라고 하시며 고장 난 전자제품이나 철 지난 신문지, 오래된 옷가지들과 신발 등을 버리지 않고 집 안 곳곳에 모아둔다고 ‘저장 강박증’이라며 함부로 질병화해서는 곤란하다. 그들의 행동 뒤에 숨겨진 심리적 의미를 헤아리는 것이 먼저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이 세상에 남겨두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진다. 특히 가족의 추억이 담겨 있거나 특별한 사연이 숨겨져 있는 물건이라면 죽을 때까지 곁에 두고 싶어 한다. 겉으로 봐서는 쓸모없는 것 같아도 특정한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 사람에게 그것은 인생의 ‘국보’가 된다.

앤디워홀_브릴로상자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브릴로 상자’.

버려져서 혼자 남게 된다는 ‘공포’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브릴로 상자’는 ‘브릴로’라는 주방 세제를 담은 상자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앤디 워홀의 작품과 실제 브릴로 상자는 겉모양만 보면 똑같다. 종이로 만든 것과 나무로 만들어진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예술이 된다. 즉 특정한 물건에 집착하는 행동에는 삶에 의미를 남겨두려는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있는 어떤 물건이라도 그것에는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추억이 담긴 물건,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 과거의 힘든 시기를 함께했던 물건은 그 자체가 ‘나’라는 사람의 대변자인 것이다.

이런 물건을 내다 버리는 것은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과 똑같은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물건을 버리지 않는 것, 자꾸 물건을 쌓아두려고 하는 것에는 자기 자신이 ‘버려져서 혼자 남게 된다는 공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황혼기를 맞아 여생을 조금씩 정리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나이 들었다고, 여생을 정리하고 준비하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는 미래에 대한 꿈의 힘으로 살아가지만, 나이가 들면 추억의 힘으로 살아가는 법이다. 추억이 담긴 물건을 정리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리정돈이라는 이름으로, 추억을 정리하라고 강권할 수는 없다.

알폰스무하_황야의여인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의 ‘황야의 여인’.

어머니의 ‘진짜’ 심정

사연의 주인공 어머니는 낡은 신발과 옷, 다 쓴 화장품, 고장난 전자제품까지 모아두고 살지만 그녀의 마음은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의 ‘황야의 여인(Woman in the Wilderness)’ 속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혼자 내버려진 여인의 마음과 똑같을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 황야에 절망에 빠진 한 여인이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다. 칠흑 같은 밤에 혼자 남겨진 여인 위로 외로운 별빛만 내리비추고 있다. 외로움과 절박함, 여기서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이 여인을 덮치고 있다. 사소한 물건 하나 내다 버리지 못하는 마음 깊은 곳에는 어머니가 살아내야 했던 삶의 고난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작은 것 하나라도 아껴야만 황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을 느끼는 그림 속 여인의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앙리 마티스의 삶의 기쁨

처방전 ‘삶의 기쁨’

사연의 주인공 어머니에게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삶의 기쁨(Le benheur de vivre)’을 처방해주고 싶다.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작품만큼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관념과 이론으로 삶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삶은 이래야 한다’고 눈앞에서 직접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 속 여인들은 둥글게 모여 춤을 추기도 하고, 풀밭에 누워 여유를 즐기기도 하며, 남자와 대담하게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피리를 불기도 하고, 들에 핀 꽃을 감상하기도 한다. 밝은 빨강과 눈부신 노랑, 깊은 초록… 풍부한 색채들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선명한 색의 대비가 율동적인 리듬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멈춰진 그림에 불과하다고 하겠지만, 보고 있으면 지금도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사연의 주인공 어머니도 물건에 집착하는 삶이 아니라 ‘삶의 기쁨’ 속 여인들처럼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기획 최동석 김병수(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부교수)
※ 이 기사는 <헤이데이> 1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