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반딧불이 – ‘서울촌놈’의 양평살이 ③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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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반딧불이 – ‘서울촌놈’의 양평살이 ③

처음 만난 적막한 어둠

산골로 이사한 뒤 맨 처음 겪게 된 어려움은 엉뚱하게도 어둠이었다. 달빛마저 없는 밤을 맞으면 그 어둠은 그야말로 칠흑 같다. 도회지에서는 주고받는 빛이 많다. 가로등이 없더라도 상점의 불빛이나 간판을 돋보이게 만드는 밝은 조명,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전조등 불빛만으로도 어둠을 쉽사리 걷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산골은 다르다. 가로등이나 보안등이 거의 없는데다 통행하는 차량이 없으니 헤드라이트 불빛도 찾기 어렵다.

필자가 사는 곳은 주위에 다른 집이 없으니, 남의 집 불빛을 빌릴 수도 없다. 산 넘어 큰 도회지라도 있으면 그쪽의 수많은 불빛 조각들이 모여 희뿌연 모습으로 산등성이에 걸리기라도 하는데 이곳은 그런 잔광조차 구경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달 없는 밤하늘은 온통 별빛 바다뿐인데 이런 별빛만으로는 발길조차 밝히지 못한다. 이런 밤은 플래시를 켜도 불빛이 직선으로 뻗어나갈 뿐 주위로 번지지 못한다. 마치 어둠이 옆으로 번지는 빛을 모두 빨아들이는 느낌이다.

해가 지면 그 여광마저 이내 사라지고 어둠이 짙어진다. 그리고 고립감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홍수원

해가 떨어지면 상록의 잣나무 숲 때문인지, 그 여광(餘光)마저 이내 사라지고 어둠은 더욱 짙어진다. 이사한 뒤 정서적 불안감을 가라앉히고 고립감을 덜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데 어둠이란 복병에 또 한 차례 기습을 당한 듯한 느낌이었다. 흔히 ‘어둠에 휩싸인다’는 말을 자주 쓰면서도 그런 표현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도시에서 경험하지 못한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 보니 그 말을 얼마간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달 없는 밤은 하늘에 다이아몬드 가루를 뿌려놓은 듯, 무수한 별이 반짝이지만 그 별빛은 서로를 비춰 보일 뿐, 지상에는 아무런 빛도 전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뜰에 나와 플래시를 끄고 잠시 눈을 감은 채 서 있으면 마치 어둠이란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 온몸이 둥둥 뜰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숲은 아름답지만 어둡고 깊다

이처럼 산골의 어둠은 그 결이 비단처럼 곱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까닭 모를 두려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사실 일상적 활동의 시간과 공간을 물리적으로 확장시키려면 많은 빛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현대사회는 빛의 과잉 상태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빛에 노출된 현대인들은 숲과 어둠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구절처럼 숲은 아름답지만 어둡고 깊어 어둠까지 내려앉으면 동물들의 터전으로 바뀐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인간은 공룡이 멸종된 이후에야 낮에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파충류에 대한 두려움은 무의식 속에 그대로 잠재해 있어 그 이후 어둠과 함께 뱀에 대한 공포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초승달처럼 달빛이 거의 없는 밤이면 하늘은 다이아몬드 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이는 별빛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이런 별빛 바다도 칠흑 같은 지상의 어둠은 걷어내지 못한다. ⓒ홍수원

어둠이 동물들의 시공(時空)이라 하지만 뒤쪽에 바싹 붙어있는 울창한 숲은 한밤중에도 별로 무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20년 가까이 살면서 들고양이와 고라니, 오소리는 자주 보았지만 서울에도 가끔씩 출몰한다는 멧돼지는 단 두 차례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좀 겁이 날만큼 덩치가 큰 멧돼지는 딱 한 번 먼발치에서 보았을 뿐인데, 그 장소는 산 속이 아니라 아스팔트 도로 위였다.

그러나 필자에게도 파충류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는 탓인지,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늘 신경이 쓰였다.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뱀이 소리에 둔감한 탓인지, 어지간한 발자국 소리에도 잘 움직이지 않아 특히 여름철에 슬리퍼만 신고 다니다가 혹시라도 뱀을 밟거나 건드리면 여지없이 물린다는 것이다. 낮에 풀숲을 다닐 때는 아예 장화를 신거나 아니면 잘 살피며 다닌다지만 밤에는 플래시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이쯤 되면 밤과 어둠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의 이면에 공룡 같은 파충류가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반딧불이의 등장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얼마간 가라앉혀준 것은 다름 아닌 반딧불이였다. 이사한 첫 해 초여름에 처음 모습을 보여준 반딧불이는 꼬리 부분에 앙증맞은 형광을 매단 채 어둠 속을 어지럽게 날았다. 주위가 캄캄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반딧불이는 마치 밤을 희롱하고 별빛과 맞서려는 것처럼 보였다. 손톱만한 작은 몸체로 암흑 속을 거침없이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는 불빛을 몹시 싫어해 가까이 가려면 빛을 버릴 수밖에 없다. 이때의 강한 인상 때문에 반딧불이의 생태를 살펴보니 놀라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꼬리 부분에 앙증맞은 형광을 매단 반딧불이는 청정지역에서 이슬만 먹고 사는 환경지표 곤충으로 불빛을 싫어한다. ⓒ홍수원

성충이 되면 2~3일 뒤에 짝짓기를 하고 4~5일 뒤에는 암컷이 이끼 위에 알을 낳고 그 뒤 열흘 남짓이 지나면 죽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2주간의 수명을 누리는 반딧불이는 이슬을 먹고 살며 깨끗한 곳에서만 사는 ‘환경지표 곤충’이라고 한다. 그러나 알이 부화해 애벌레가 되고 반 년 이상 다슬기를 먹으면서 수중생활을 한 뒤 육상으로 올라와 두 달 가까이 번데기생활을 거친 다음에야 성충이 된다는 것이다. 어른 벌레가 될 때까지 1년 가까이 걸리는 셈이다.

그런데 2~3년이 지나자 반딧불이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초여름만 되면 밤마다 은근히 기다려졌지만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우리가 이사 와서 텃밭 가꾼답시고 땅 갈아엎고 씨 뿌리고 비료 주고 농약 뿌린 것이 탈이 된 것인지, 아니면 산골생활 한다며 아는 사람들을 청해 바깥에서 고기 구워먹고 쓰레기 함부로 태우면서 못된 냄새를 피운 탓에 이 까다로운 개똥벌레가 다른 곳으로 떼 지어 이동한 것이 아닌가 싶어 어지간히 섭섭했다. 실제로 반딧불이는 농약사용으로 토양이나 수질이 오염되는 등의 서식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하고, 가로등이나 승용차 헤드라이트 같은 강한 불빛을 몹시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나 괴로움을 겪는 것이 어디 반딧불이뿐이겠는가? 이런 청정한 산골에 온갖 잡동사니를 펼쳐놓고 사람이 살게 되면 근처 토박이 생물들이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분명했다. 우선 풀을 베거나 뽑고, 땅을 파거나 돌을 들어내면 번번이 이름 모를 곤충이나 지렁이들과 부딪친다. 그뿐일까? 뒤뜰에 어지럽게 핀 들꽃이나 잣나무 숲 속의 산새들은 괜찮을까? 집 짓겠다고 흙을 마구 파헤치고 시멘트를 들이부었으니 땅 속의 생물은 물론, 땅 위의 초목인들 온전했을까? 조경을 위해 앞뜰에 뿌려놓은 잔디꽃이나 뒤뜰 석축 위에 심어놓은 인동초가 이곳 장수말벌의 밥상을 어지럽히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봄철과 가을철에 살짝 나타나 등짝의 갖가지 화려한 무늬를 뽐내다가 사라지는 무당벌레는 그 독한 사람 냄새가 싫지 않은지, 집안 구석구석에 옹기종기 모인 채 겨울을 나곤 봄철에야 바깥으로 나가니 다소 위안이 되었다.

 

다시 만난 반딧불이

그렇지만 늘 따뜻한 글귀 속에 담긴 채 갖가지 향수를 자아내는 반딧불이가 하필이면 필자가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사라져버렸으니, 이건 영락없이 몰아낸 셈이 되었다. 그 서운함이란! 그런데 몇 해 전 반딧불이의 형광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것도 대여섯 마리가 잣나무 숲가에 바짝 붙어있는 감나무와 그 앞쪽 돼지감자가 있는 뜰 앞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꽁무니에 반짝이는 인광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동안 도대체 어디에서 지냈던 것일까? 정말 이곳에서 사라졌다가 오늘에서야 다시 나타난 것일까?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뜰 앞에는 자동점멸식 가로등이 달려 있다. 저녁쯤 되어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저절로 켜졌다가 아침에 날이 밝아 일정한 광도에 이르면 역시 저절로 꺼진다. 이사 온 지 3년쯤 되자 외딴 집의 밤 나들이를 걱정해 이장님이 설치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 뜰과 잇닿아있는 묵전에 오랜만에 들깨를 심은 이장님이 가로등 때문에 깨가 제대로 자라지 않으니 가로등을 끄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농작물도 밤이 되면 잠을 자야 하는데 가로등 불빛이 밝아 들깨의 생체리듬이 깨지는 모양이다. 그 때문에 우리 집 뜰은 오랜만에 인공 불빛을 몰아내고 달빛과 별빛만이 가득 차게 되었다. 그리고 이 별빛 바다 속에서 마침내 반딧불이가 그 앙증맞은 형광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반딧불이를 쫓아낸 것이 우리가 아니라 잠시도 어둠을 놓치지 않는 이 자동점멸식 가로등이 아니었던가?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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