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징비록 15 – 이순신에게 청렴의 길을 묻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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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징비록 15 – 이순신에게 청렴의 길을 묻다

대통령도 감당 못하는 고위 공직자 비리

집권 후반기로 들어서는 박근혜 대통령도 관행적인 비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청해부대의 출항 환송식마다 격려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지난 11월 3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열린 청해부대 20진 최영함 출항 환송식에는 격려 서신을 보내지 않았다. 부대원의 식재료비를 빼돌린 전직 부대장 K 준장 사건에 분노한 것이다. K 준장은 청해부대 11진 부대장으로 2012년 12월 당시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제미니호 선원을 넘겨받는 작전을 수행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군 검찰 조사에 따르면 횡령 혐의로 구속된 K 준장은 빼돌린 돈으로 조니워커 블루나 발렌타인 30년산 등 고급 양주를 사고 진급을 위해 상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3월 중동 4개국 순방차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했을 때 군 통수권자로는 처음으로 파병 함정인 대조영함에 올라 청해부대원을 격려했다. 그런 애정을 보였지만 보고되는 소식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통영함 납품 비리 등 방산(防産) 비리로 국민적 지탄을 받은 해군은 이번 사건으로 대통령의 신뢰를 깡그리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수많은 해군 장병들이 불철주야 동-서 NLL, 제주도-이어도 등 주변 해역 및 저 멀리 아덴만까지 가서 고생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고위 장군들의 비리 때문에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방산(防産) 비리, 해외 자원 비리, 대기업 비리, 공직 비리, 중소기업 영세상인 괴롭히는 비리, 전문직 비리, 국가재정 낭비 비리 등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밀리는 형세에 놓여있다. 부패와의 전쟁을 주도한 전직 국무총리가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총체적 ‘부패공화국’ 대한민국

ROTC(Republic Of Total Corruption)공화국! 사회 전반에 걸쳐 총체적 부패를 뜻하는 말이다. 일찍이 율곡 이이(李珥)가 선조에게 올린 <만언봉사(萬言封事)> 가운데 ‘기국비국(基國非國) 부부일심지대하(桴腐日深之大厦)’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나라가 나날이 썩어가는 큰 집의 대들보와 같습니다’라는 말이었다.

<만언봉사>는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이다. ©김동철

빙산(氷山)의 일각(一角)이겠지만 최근 며칠 부패 사례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이 최근 무기중개상 함태헌(59세) 씨를 수사하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정홍용 소장과 최윤희 전 합참의장의 아들이 함 씨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당사자들은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고, 검찰이 지난 11일 함 씨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도 ‘돈의 성격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그러나 군 방위산업 최고 간부의 가족이 무기중개상과 돈을 주고받은 것 자체가 부적절하며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거물급 무기중개상인 함 씨는 해군의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을 포함한 무기체계 도입 과정에서 금품 로비 혐의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의 조사를 받고 있다. 해군이 이 기종을 선정할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최 전 합참의장이었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외밭에서 벗어진 신발을 다시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머리에 쓴 관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이다. 정말 이들이 괜한 오해를 받고 있는지 명백하게 밝혀내 결백을 증명해줘야 할 것이다. 무기중개상이나 방산업체의 로비용 마수(魔手)는 ‘군피아’를 넘어서 그 가족에게까지 닿아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학연, 지연, 근무 연줄로 얽히고설킨 유착 구조의 발본색원이 과연 이뤄질 것인지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를 지켜볼 따름이다.

 

숨기고 가리기 급급한 비리 만행

이번에는 ‘낙하산 인사’ 비리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한국투자공사(KIC) 안홍철 사장이 투자운용사 선정에 개입해 장녀가 다니는 미국 회사를 선정하도록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KIC가 투자 검토 중인 회사가 운영하는 프랑스 파리 호텔에서 향응을 받은 의혹도 나왔다. 1박에 2100만원 하는 로열스위트룸에 98만원만 내고 묵었다는 것이다. 홍콩 호텔에서도 1469만원 프레지덴셜스위트룸에 26만원을 내고 묵었다. 이 호텔도 투자 검토 중인 회사가 운영했다. 안 전 사장은 경제관료 출신으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특별직능단장이었다. 그가 2013년 말 KIC 사장에 임명되자 낙하산 논란과 함께 야당이 반발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그의 사퇴 문제로 파행을 거듭해 최경환 부총리가 사퇴를 권고했으나 듣지 않았다.

안 전 사장은 “운용사 선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호텔 투숙 건은 호텔 측이 알아서 업그레이드해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 씨는 “정치권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2년 가까이 버티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오기 직전인 지난 6일 자진 사퇴했다. 우리나라 국부(國富) 펀드를 관리하는 수장(首長)의 처신이 이 정도다.

이런 와중에 탤런트 이영애(44세) 씨가 국군 부사관들을 위한 음악회 <더 히어로스>의 경비 4억원을 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날 행사에는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비롯해 참전용사 가족 등 4000명이 초청됐다. 6·25 참전용사의 딸인 이 씨는 또 지난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부상 당한 두 명의 부사관에게도 위로금을 전달한 바 있다. ‘산소 같은 여자’의 선행(善行)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부끄러운 우리의 부정부패지수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나타내는 지수가 있다. 2014년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지수로 보면 우리나라는 7.05점이다(10점에 가까울수록 부패함). 참고로 싱가포르(1.60), 일본(2.08), 호주(2.55), 홍콩(2.95), 미국(3.50), 마카오(3.65), 대만(5.31), 한국(7.05), 중국(7.10), 필리핀(7.85), 캄보디아(8.00), 태국(8.25), 베트남(8.73), 인도네시아(8.85), 인도(9.15) 순이다. 곧 국민소득 3만 달러로 선진국 문턱을 넘는다 하더라도 국민의식 수준은 한참 뒤처진 후진국인 것인 같아 여전히 씁쓸하다.

조선은 1392년 개국한 이래 200년 동안 이렇다 할 외침이 없어 태평한 편이었다. 따라서 숭무(崇武)정신이 옅어지고 성리학에 빠진 선비들의 문약(文弱)한 문치주의(文治主義)가 극성을 부렸다. 어쩌면 오늘날도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단 한 차례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인 6·25전쟁을 겪은 우리는 그 후 60년 이상 평화 시기를 맞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부 군인들은 매너리즘에 빠졌다.

‘이 한 목숨 조국을 위해!’의 초심은 점점 사라져가고 점차 ‘월급쟁이’가 되어갔다. 진급과 보직에 더 목숨을 거는 현실이 되었다. 그 틈새를 파고든 것은 물질만능주의 가치관이었다. 방산 비리 관련 신임 해군참모총장이 “밖에서 해군을 ‘도둑놈 집단’이라 부른다”는 말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폐쇄된 높은 담장 속에서 상명하복(上命下服)은 성폭행을 낳았고 여전히 군대 왕따 등 가혹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심각한 군기문란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이순신 장군의 청렴 리더십

매사 원리원칙을 강조했던 이순신 장군의 일생은 파란만장(波瀾萬丈), 우여곡절(迂餘曲折), 그것이었다. 관행이란 명목으로 부패를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수많은 부패 관료들로부터 시기와 모함을 받았다.

1579년 훈련원 봉사(종8품) 때 병조정랑(정5품)인 서익(徐益)이 자기와 친한 사람을 차례를 뛰어넘어 참군(參軍, 정7품)으로 올리려 하자 일개 봉사였던 이순신은 담당관으로서 허락하지 않았다. 병조정랑은 병조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실력자였지만 이순신은 부당한 지시를 받지 않았다. 1582년 1월 장군이 발포만호(종4품)로 근무하고 있을 때 서익이 군기경차관, 지금의 국방부 군기검열단장으로 발포만호를 찾았다. 군기보수불량이란 무고로 이순신을 파직시켰다. 3년 전 이순신에게 인사 청탁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분풀이를 한 셈이다.

이 해 전라좌수사 성박(成鑮)이 발포 객사 뜰의 오동나무를 베다가 거문고를 만들겠다며 사람을 보냈다. 이순신 장군은 “이것은 관가의 물건”이라며 직속상관의 부탁을 거절했다. 이 ‘괘씸죄’는 근무평점을 매기는 후임 수사에게 인계됐고 나중에 또 화를 당했다. 1579년 훈련원 봉사로 있을 때 병조판서 김귀영(金貴榮)이 자기의 서녀(庶女)를 첩으로 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갓 벼슬길에 올랐는데 어찌 권세가의 집을 드나들 수 있느냐”며 거절했다. 국방부 장관 첩의 딸과 인연도 끊어버렸다.

임진왜란 때 병조판서와 우의정을 지낸 이항복이 이순신에 대해 쓴 인물평. ©김동철

이순신 장군은 1582년 발포만호에서 파직되고 다시 훈련원에서 근무하게 됐다. 정승 유전(柳琠)은 이순신에게 좋은 화살통(箭筒)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자칫 뇌물이 될 수 있다”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당시 서익의 무고로 파직당한 뒤 훈련원 말단으로 복직한 상황, 정승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가 있었지만 장군은 원칙을 고수했다.

어릴 적 한성 건천동(마른내골)에서 함께 자랐던 류성룡 대감이 이순신에게 다음과 같이 귀띔했다. 이조판서였던 율곡 이이(李珥)가 같은 성씨(덕수 이 씨)인 이순신을 한번 만나보길 원한다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이마저도 거절했다. “같은 성씨(덕수 이 씨)여서 만날 수는 있지만 공직의 인사권을 가진 이조판서를 만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오늘날의 상식(?)으로 보면 앞뒤가 꽉 막힌 처세에 답답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수지청즉무어(水至淸卽無魚) :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인지찰즉무도(人至察卽無徒) : 사람이 너무 (깐깐하게) 따지고 살피면 동지가 없느니라

22년 동안 무인으로서 장군의 삶은 이렇듯 원리원칙주의를 지켰다. 그렇다고 그가 벽창호(碧昌牛)처럼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 단순무식한 고집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 온갖 미혹에서 자신을 이기고, 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말이 아니면 듣지 않는, 인간 본연에 다가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옳은 일에 자기 한 몸을 선뜻 바쳐 죽을 수 있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시 중에도 지방 관리들의 뇌물수수 등 부패는 끝이 없었다.

1594년 2월 16일 난중일기수령즉엄악포계(守令則俺惡褒啓) : 수령들은 뇌물 받고 비리 덮어주고 포상 받게 해주었다
기망천청지어차극(欺罔天廳至於此極) : 국왕의 귀를 기망하니 이것이 극에 달했다
국사여시만무평정지리(國事如是萬無平定之理) : 국사가 이러니 나라가 결코 편안할 수 없다
앙옥이이(仰屋而已) : 나는 그냥 천장만 바라볼 뿐이다
우국충정의 뜻을 담은 일심(一心). 이순신의 수결(사인) 표시. 그 오른쪽은 난중일기에서 일심 쓰기를 연습한 모습. ©김동철

‘군(軍)피아’ ‘관(官)피아’는 우리나라에 있는 신조어다. 정년을 마치고 산하기관에서 다시 제2의 인생을 사는 수많은 ‘군피아’ ‘관피아’가 모두 마피아 같은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집단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폐해가 오죽했으면 마피아에다 빗댔겠는가. 규제를 만들어서 단속권을 가진 공무원들이 영원한 갑(甲)으로서 국민 위에 군림한다면 이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은 한낱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