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역사] 2009년 11월 26일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판결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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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역사] 2009년 11월 26일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판결

2015.11.26 · 심언준(전 미디어칸 대표) 작성

임모(33세) 씨는 2006년 같은 음식점 직원인 여성에게 “부모님께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라고 소개하겠다”고 속여 이 여성을 네 차례 간음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임 씨는 “혼인빙자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에 불과할 뿐이며, 헌법상 성적 자유의 보호는 상대 의사의 자유를 제압하거나 자유가 없는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며 형법 제304조에 대해 위헌제청 신청을 냈다. 형법 제304조에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僞計)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해 간음한 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혼인빙자간음죄, 이른바 ‘혼빙’이다.

혼인빙자간음(크기변환)
혼인빙자간음죄는 남성만을 처벌 대상으로 해 남녀평등에 반할 뿐 아니라,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여성의 성적(性的) 자기결정권을 부인하고 있어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역행하는 법률로 규정돼 위헌 판결을 받았다. ⓒPeerayot/Shutterstock

53년 만에 형법에서 삭제

우리나라 형법에 혼인빙자간음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 서독 형법의 사기간음죄를 모태로 했다는 게 정설이다. 원조 격인 독일은 1969년 이를 폐지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1975년에 한 차례 개정됐고, 1995년 형법 개정 때 폐지론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유지됐다.

2002년 헌법소원 때도 헌법재판소는 7대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당시에 헌법재판소는 “남성이 여성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 뒤 가장된 결혼의 무기를 사용하여 성을 편취할 경우, 이는 이미 사생활 영역의 자유로운 성적 결정의 문제라거나 동기의 비도덕성에 그치는 차원을 벗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인들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성적 사생활을 국가가 법률로 통제하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혼인빙자간음죄는 점차 존재 의미를 잃어갔다. 헌법재판소가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공개 변론을 열자 여성부가 “혼인빙자간음죄는 위헌”이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헌재에 낸 것도 이 같은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여성부는 “피해자를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한정해 여성을 자신의 성적 의사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에 대한 차별 소지도 있다”고 밝혔다. 여성의 정조를 중시하는 낡은 가치관을 반영한 데다 남성도 결혼을 빙자한 여성에게 피해를 보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여성부는 “해외에서도 성범죄 피해자를 ‘부녀’에서 ‘타인’으로 바꾸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공개 변론을 거쳐 2009년 11월 26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304조 혼인빙자간음죄 조항은 남성만을 처벌 대상으로 해 남녀평등에 반할 뿐 아니라,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여성의 성적(性的) 자기결정권을 부인하고 있어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역행하는 법률”이라고 규정하면서 “개인의 성행위는 사생활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부분으로 국가는 최대한 간섭과 규제를 자제해야 하며 성적인 사생활의 경우 다른 생활영역과 달리 형법을 적용하는 데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또한 “목적과는 달리 혼인빙자간음 고소 및 그 취소가 남성을 협박하거나 위자료를 받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폐해도 종종 발생, 국가의 공형벌권이 정당하게 행사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 뒤 형벌 조항에 대해 단순 위헌 결정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위헌 결정 후 혼인빙자간음죄는 2011년 3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후 2012년 12월에 완전히 형법에서 삭제됐다.

 

2015년 2월 간통죄도 폐지돼

한편 헌법재판소는 2015년 2월 26일 간통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2008년 10월에는 간통죄에 대해 “법이 개입할 수 없는 순수한 윤리·도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후 성적 자기결정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에 따라 간통죄에도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1953년에 제정된 간통죄도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