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고 가는 역사 탐방] ⑨ 조선시대 최고 국립대학 ‘성균관’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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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타고 가는 역사 탐방] ⑨ 조선시대 최고 국립대학 ‘성균관’

볼로냐대학 1088년 설립, 파리대학 1109년 설립, 옥스퍼드대학 1167년 설립, 케임브리지대학 1209년 설립, 하버드대학 1636년 설립, 프린스턴대학 1746년 설립, 조선 성균관 1398년 설립.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원형은 고려의 국자감으로까지 올라가지만 지금의 명륜동 터에 공식적으로 성균관이 들어선 것은 1398년(태조 7년)이었다. 태조가 명륜당(明倫堂),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 유생들의 기숙사 재(齋) 등 성균관의 기초를 세웠고 태종은 땅과 노비를 지급하고 친히 문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왕세자의 입학을 명령하니 그 후 이것이 상례가 되었다. 이 후 성종 때에 향관청(享官廳)과 존경각(尊經閣, 도서 창고), 현종 때 비천당(丕闡堂, 과거장), 숙종 때 계성당(啓聖堂)이 세워졌다.

 

공자사상을 삶으로 배웠던 성균관 유생

정원은 대개 200명이었고 진사시와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입학 기회가 주어졌다. 학생은 반드시 기숙사 재(齋)에 머물며 교칙을 엄수하고 열심히 공부해 대과(大科)에 응시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가끔 중대한 정치적 이슈가 돌출했을 때는 연명 상소를 올리거나 궐문 앞에서 집단 시위를 하거나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제 일신의 영달만을 꾀하지 않고 식자층의 여론을 환기하는 대학생의 역할을 충실히 했던 셈이다.

성균관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당연히 공자를 배웠다. 공자의 학문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까지 배워야 했으니 마땅히 학교 단지 제일 앞에 공자를 모시는 사당을 크게 세웠다. 그 건물이 대성전(大成殿), 즉 문묘다. 문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그 후면에 있는 명륜당에서 공부하는 구조다.

문묘의 중심 건물 대성전(大成殿). 현판 글씨는 조선 명필 한석봉이 썼다 한다. ©강기석
문묘 지역 제2의 중심 건물 명륜당(明倫堂). 대성전이 신위를 모신 제사용 건물이라면 명륜당은 실질 교육용 건물이다. ©강기석
문묘 지역 제2의 중심 건물 명륜당(明倫堂). 대성전이 신위를 모신 제사용 건물이라면 명륜당은 실질 교육용 건물이다. ©강기석

문묘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길게 행랑채처럼 늘어선 동무와 서무가 있는데 이곳이 제사 공간이다. 대성전과 동무, 서무에는 공자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중국의 성현 133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지만 지금은 대성전에만 공자와 사성(四聖), 십철(十哲), 육현(六賢) 그리고 한국의 십팔현(十八賢) 등 39명의 위패만 모시고 동무와 서무는 비워져 있다.

문묘 지역에서 보물로 지정된 다섯 동의 건물 중 하나인 삼문(三門). 석전제례 때만 열리는 상징적인 정문으로 사람들이 들어올 때는 오른쪽, 나갈 때는 왼쪽 문을 사용하며 중앙 문은 귀신들이 출입하는 문으로 상정하고 있다. ©강기석
명륜당 건물 뒤편에서 본 가을철 마당 전경. ©강기석

엄숙하고 고귀한 문화유산 ‘문묘대제’

문묘에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석전제를 지내는데 이를 ‘석전대제’ 또는 ‘문묘대제’라 한다. 일반적으로 고기를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제사 의식이며 이 음악을 ‘문묘제례악’이라고 한다. 국가적인 행사로 치러지는 석전대제는 엄숙한 제례 절차와 더불어 기악과 성악, 춤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 공연장의 성격을 띤다. 발상지인 중국에서도 그 원형이 남아있지 않고 우리나라에만 남아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성균관과 문묘 건물들은 임진왜란의 병화로 거의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후 성균관 유생들이 전국적으로 기금을 모아 1601~1602년(선조 34∼35년)에 대성전을 중건하고, 1603~1604년(선조 36∼37년)에 동무·서무·신문·중문을, 1606년(선조 39년)에는 명륜당과 동재·서재를 중건, 확충하였다. 1626년(인조 4년)에는 정록청(正錄廳)·존경각·양현고(養賢庫) 등을 재건하였으며, 1869년(고종 6년) 한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균관과 문묘를 구성하는 건물 중에서 보물로 지정된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삼문 등 모두 다섯 동이다.

명륜당에서 본 동재(東齋) 기숙사. ©강기석
진사식당에서 바라 본 동재의 앞모습. 성균관에 입학하는 자격은 진사시 혹은 생원시에 합격한 자이므로 학생들이 식사하는 식당 이름으로 ‘진사식당’이 어울리는 듯하다. ©강기석
명륜당 마당 쪽으로 보이는 동재 뒷모습. 추운 날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의 엉덩이를 덥혀주었을 아궁이가 정겹다. ©강기석
동재에 걸려 있는 북. 식사 때나 행사 때를 알리는 북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강기석
서재(西齋) 기숙사. ©강기석
기숙사 툇마루. ©강기석

문묘 일원은 성균관대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일곽을 이루며 위치하고 있다. 명륜동 일대는 조선시대에 한성부 숭교방(崇敎坊)이었던 곳이다. 원래 입구에 ‘반교(伴橋)’라 부르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없어졌고 영조가 세운 탕평비 비각은 지금도 문묘 바로 앞 성균관대학 입구에 서 있다.

문묘 입구에 세워져 있는 탕평비와 하마비. 1742년(영조 18년) 영조가 “두루 사귀어 편당을 짓지 않는 것이 군자의 마음이고, 편을 가르고 두루 사귀지 못하는 것이 소인의 마음이다”라고 직접 쓴 비석을 세워 탕평의 뜻을 알렸다고 한다. ©강기석
1519년(중종 14년)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윤탁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공자가 은행나무 밑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고사에 따랐다고 한다. ©강기석
수령 600년을 자랑하는 은행나무 옹이의 위용. ©강기석
성균관답게 화장실에도 이런 좋은 글귀가 걸려 있다. ©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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