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기억과 흔적] 국가대표팀 우승의 순간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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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기억과 흔적] 국가대표팀 우승의 순간

극본 없는 드라마의 시작, 9회말 2아웃

지난 11월 21일 ‘2015 WBSC 프리미어 12’가 일본에서 첫 대회를 마감했다. WBSC 프리미어 12는 세계야구소프트볼총연맹이 주관하고 세계 야구 랭킹 12개국이 참여하는 대회로 올해 신설됐다. 2011년 대회를 끝으로 폐지된 야구월드컵을 대신해 신설되어 앞으로 4년마다 열린다.

이번 첫 대회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삼성 선수들의 해외도박 사건 연루로 인해 약체의 투수진으로 일본 삿포로 돔구장에서 일본과 개막전을 치렀다. 일본 야구의 괴물 투수 오타니 쇼헤이에게 봉쇄 당한 한국 타자들은 7이닝 동안 무려 11탈삼진을 빼앗기며 맥을 못 췄다. 그 결과 5대0으로 완패 당했다.

그리고 11월 19일 준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양팀. 역시 오타니에게 1안타 무득점으로 8회말까지 3대0으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마지막 공격에 나선 한국은 교체된 투수 노리모토에게 대거 4점을 뽑으며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일본 야구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돔에서 이뤄 낸 ‘도쿄대첩’의 순간이었다. 돌아서서 환호하고 다시 생각해도 왠지 모를 힘이 솟구친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올림픽 금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랭킹 3위

인류의 제전 올림픽에서 야구 종목이 정식 첫 경기를 치른 것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이었고 비공식 종목이었다. 그 후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2005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야구와 소프트볼 종목을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 제외시키기로 결정했다. 거기에는 미국 MLB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가 분명 있는 듯하다.

올림픽에서 1위, 2위, 3위에게 메달을 수여한 것도 1904년 올림픽 때부터다. 아마야구 강국 쿠바가 금메달 3개로 으뜸이고 미국이 금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2위, 대한민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1개,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1개로 3위다.

우리의 야구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남자단체 구기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안긴 날이 8월 23일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며 이 날을 ‘야구의 날’로 제정해 각 프로 구단들과 함께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로 기념하고 있다. 이 메달은 2012년 없어진 야구종목이 되살아나기 전까지 처음이자 마지막 금메달이 되는 셈이라 그 의미가 더 크다.

지난 2008년 올림픽 야구팀은 아시아 최종예선 2위로 캐나다에 이어 두 번째로 올림픽 본선 출전 자격을 얻게 됐다. 본선에 올라선 대한민국은 거칠 것 없이 7전 전승을 거두며 쿠바, 미국을 따돌리고 영광의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온 국민이 뜨거운 환호성으로 하나가 되던 날이었다.

2008년 제29회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 한국 대 쿠바 전 입장권. ⓒ이호근
2008년 제29회 베이징올림픽 야구 우승 금메달. ⓒ이호근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성적표

우리나라 올림픽 야구 성적을 살펴보면 1984년 LA올림픽에서 2승 3패로 4위, 1988년 서울올림픽 역시 2승 3패로 4위,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은 예선 탈락,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은 1승 6패 8위로 최하위였다. 그리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5승 4패로 동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선사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한국 야구의 세계 무대 활약상은 어땠을까. 1975년 캐나다에서 열린 제2회 대륙간컵쟁탈 세계야구대회를 시작으로 세계 대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결과는 예선 탈락이었다. 2년 뒤 남미 니카라과에서 거행된 제3회 슈퍼월드컵세계야구대회에서 강호 미국과 일본을 꺾고 사상 첫 야구 세계제패를 맛본다. 그리고 우리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을 준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역전 3점 홈런으로 일본을 이기고 우승한 1982년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잊을 수 없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선 3위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6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대망의 2008년 제29회 베이징올림픽에서 귀중한 금메달을 조국 대한민국에 안겼다. 당시 베이징올림픽를 위해 중국에 입성한 이승엽 선수는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겠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그 말 그대로 금메달의 열매를 맺었다. 한국 야구가 거둔 메달이 값진 이유는 순전히 노력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행운이 아니라 선수들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성실함임을 한국 야구의 역사를 통해, 세계 대회에서 이룬 성적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 그리고…

해외 무대를 멋지게 치러내며 이번 ‘2015 WBSC 프리미어 12’ 경기에서 주목받은 선수가 있다. 바로 롯데 자이언츠 정대현 선수다. 그의 활약상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KBO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의 수모를 씻기 위해 페넌트레이스까지 중단하는 파격 조치를 취하면서 강한 대표팀을 원했고, 이는 동메달의 시금석이 됐다. 당시 경희대 재학 중이던 정대현 선수는 미국과의 4차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미국과의 예선 1차전에서 미국 킬러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쿠바와의 결승전, 3대2로 앞선 마지막 운명의 9회말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8회까지 볼넷 하나 없던 류현진이 내려가고 사이드암 정대현이 마운드를 이어받아 쿠바의 강타자 율리에스키 구리엘을 상대로 유격수 병살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번 프리미어 12 대회 8강전에서 정대현은 7년만에 다시 격돌하게 된 쿠바의 구리엘을 유격수 땅볼로 무릎 꿇게 했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 국가대표 경력 15년째 그리고 그에게 9번째 국제대회이자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는 경기였다. 여왕벌 정대현은 마지막 경기까지 혼신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후배들의 선망이 되고 야구팬에겐 자랑스러운 야구선수로 남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5년 WBSC 프리미어 12에서 얻어낸 대한민국의 우승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극본 없는 드라마는 예측할 수 없어 짜릿하고 감동적이다. 몇 번을 곱씹어도 행복한 여운이 남는 한국 야구의 과거에 박수를 보내며 더 빛이 날 미래를 기대해본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한국 국가대표 선수단감독 김인식
코치 선동열, 송진우, 이순철, 김동수, 김평호, 김광수
투수 김광현, 이현승, 장원준, 정우람, 차우찬(이상 좌완), 심창민, 우규민, 이대은, 이태양, 임창민, 정대현, 조무근, 조상우(이상 우완)
포수 강민호, 양의지
내야수 김상수, 김재호, 박병호, 오재원, 이대호, 정근우, 허경민, 황재균
외야수 김현수, 나성범, 민병헌, 손아섭, 이용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