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을 걷기에 더 애틋한 가족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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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길을 걷기에 더 애틋한 가족

2015.12.21 · HEYDAY 작성

PEOPLE STORY 1. 무대 위의 친구
배우 전무송과 배우 전현아

전무송, 전현아 배우 부녀.

전무송 딸이 연극 무대에 서기를 은연중에 바랐지요. 연극은 인생살이를 똑바로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차근차근 삶의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며, 오랫동안 무대를 지키는 좋은 배우로 성장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전현아 가난한 배우로 살면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삶을 꾸려나가기 힘드셨을 텐데 단 한 번도 삶에 찌들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으세요. 덕분에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오로지 배우의 삶만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엄마 뱃속에서부터 아버지의 연극을 듣고 자란 전현아에게는 극장이 놀이터이자 학교였다. 한국 연극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무대들을 일상처럼 보며,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삼촌 이모’ 삼아 자란 그녀가 무대에 서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현아는 학예회를 하면 꼭 뽑혀서 무대에 서고, 동화 낭독을 하면 화술과 호흡이 참 좋았죠. 어느 날 연극을 하겠다고 하길래. 아,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습니다.” 최고의 배우가 아버지라 좋은 선생님이 되어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생각은 좀 달랐다. “선후배들과 호흡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선생님들께 가르침을 받으라고 조언했어요.” 아버지의 바람대로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스스로 성장한 전현아는 곧 연극계의 보물로 자리 잡았고 연극 하는 남자와 결혼도 했다.

지난 2012년 전무송의 연기 인생 50주년을 맞아 올렸던 작품 <보물>은 아직도 연극계에 회자되고 있다. 딸인 전현아가 극작, 사위 김진만이 연출을 맡고 연기자인 아들 전진우가 아버지와 함께 출연한 아름다운 무대! 관록의 배우인 아버지가 딸에게 건네는 조언은 명확하다. “배우이기 전에 인간이어야 한단다. 삶의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자기 연기에 믿음을 가지고 꾸준하게 해나가기를 바랄 뿐. 자, 오늘 공연 잘 하거라.” 딸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넨 아버지는 홀연히 돌아서 언제나처럼 대학로로, 무대 한복판으로 돌아갔다.

 


 

PEOPLE STORY 2. 새로운 100년을 위하여
부산 심진어묵 박종수 대표와 박용준 관리실장

삼진 피시케익 스탠드 앞에 선 부자.

박종수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기 때문인지 아들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놀라운 경영 감각으로 저를 놀래킵니다.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가업을 이어가는 아들이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원해주고 싶습니다.
박용준 어릴 때는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 보였어요. 공장 일을 도와드리며 힘들었던 기억도 많았고요. 하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궈내신 가업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이 저를 일깨웁니다. 소비자들이 진짜 원하는 어묵을 만들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어요.

부산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 회사가 있는데, 마치 베이커리 같다는 소문을 들은 건 몇 년 전이다. 게다가 새로운 발상으로 어묵 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은 30대 청년. “6남매 중 막내인 제가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게 된 것처럼, 어묵 냄새 싫다고 미국으로 도망갔던 아들이 사업을 물려받은 걸 보면 신기해요.” 박종수 대표가 아들 박용준 관리실장을 보며 웃었다. 사실 어린 시절 ‘오뎅’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게 싫어 일찌감치 미국 유학을 떠났던 아들은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했다. “힘든 결정이었지만 미련은 없습니다. 뉴욕은 제가 없어도 상관없지만 이곳은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니까요.”

아들은 돌아오자마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60년 전 할아버지가 지으셨던 공장, 기계가 멈춘 지 오래된 창고를 직영 매장으로 만들고, ‘어묵 베이커리’ 콘셉트를 도입했다. 어묵 제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과 체험관도 열어 부산의 명소로 변모시켰다. “아들은 1년 내로 사람들이 줄을 서게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저로서는 큰 도전을 한 셈인데 문을 연 지 1주일 만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더군요.” 박용준 실장이 가업에 뛰어든 지 4년 만에 매출은 10배로 뛰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정성과 열정을 그대로 이어서 100년 후에도 사랑받는 기업으로 성장해나갈 겁니다.” 부자의 당차고 맛있는 도전이 다시 100년을 이어가길.

 


 

PEOPLE STORY 3. 아빠는 나의 영웅
삼성스포츠단 신치용 부사장과 전 농구선수 신혜인

신치용 감독과 딸 신혜인
신치용 감독과 딸 신혜인

신치용 아기 같은 혜인이가 엄마가 된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지요. 농구를 그만두었지만 차근차근 공부해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일구고, 남편 박철우 선수가 안정된 마음으로 운동할 수 있게 내조하는 최고의 아내가 되어주라고 조언합니다.
신혜인 아빠는 한 번도 우승을 자신하셨던 적이 없었어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그리움과 고독을 견디며 엄청난 절제와 치열한 준비로 이겨내신 거지요. 시간이 흐를수록 아빠를 더 존경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1995년 삼성화재 배구단의 초대 감독을 맡아 올해까지 무려 20년을 이끌어온 최장수 감독이라는 엄청난 존재감뿐 아니라 엄격하기로 유명한 그 앞에서는 누구나 꽁꽁 얼어붙기 마련이다. 하지만 막내딸 혜인에게 아버지는 다정한 남자 친구이자 늘 그리운 애인이었다. “1년에 두세 달 정도 집에 오실 수 있었으니 아빠가 오신다는 전화를 받으면 친구랑 놀다가도 집으로 달려들어갈 정도였어요.” 코트 위에 선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던 딸은 자연스럽게 운동선수의 삶을 택했다. 물론 농구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어머니 전미애 씨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그뿐이랴. 2011년 아빠처럼 배구 하는 남자(대전 삼성 블루팡스의 박철우 선수가 그의 남편)와 결혼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늘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니 모든 것에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한다. 건강 문제로 선수 생활을 중단했지만 슬럼프에 빠지지 않고 학업을 시작, 성균관대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든든한 조언자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감독이 아니다. 블루팡스 배구단의 단장 겸 농구와 축구 등의 그룹 산하 스포츠구단 운영담당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코트를 떠나게 되어 아쉽지만 막중한 임무를 맡아 부담도 큽니다. 하지만 가족에게 좀 더 신경 써야 할 때지요. 아내에게 ‘잘 할게’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이제 철들어가냐’고 답이 왔더라고요. 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어보려고 합니다.”

 


 

PEOPLE STORY 4. 옷 짓는 행복을 나누다
한복 연구가 김혜순과 드레스 디자이너 정민경

김혜순, 정민경 모녀 의상디자이너
김혜순, 정민경 모녀 의상디자이너

김혜순 저는 칭찬에 인색한 엄마였어요. 혹시라도 교만해질까 봐 일부러 그랬지요. 다만 배움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지원하고 무한한 자유를 주었습니다. 사람은 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재능이나 영감은 오로지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까요.
정민경 저러다 쓰러지시는 게 아닐까 염려될 정도로 일하시지만 단 한 번도 불평하거나 후회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옷을 짓고 공부하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일인지 감사하며 늘 영감과 열정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오랫동안 국악을 하면서도 꿈은 늘 디자이너였어요.” 거문고를 배웠던 민경 씨가 손을 다쳐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의상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었다. “딸이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여자의 직업 중에 옷을 만드는 일은 큰 축복이니까요.” 한복 연구가 김혜순은 딸의 새로운 도전을 환영했다. 자신 또한 복식 디자이너인 외삼촌 고 허영 선생을 통해 한복을 배웠으니 3대가 옷 짓는 일을 이은 셈이다. 대중은 드라마 <황진이>와 영화 <광해> 등에서 목격한 놀랍도록 아름다운 한복을 기억하고 있다. 곱고 화려한 색감과 우아한 선을 완벽하게 구현해 내는 한편 담백한 아름다움까지 오롯이 담아내는 김혜순의 한복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림을 꾸리면서도 흔들림 없이 옷을 연구하고, 새벽 시간을 쪼개 서예 등을 배우는 엄마를 보며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제대로 된 옷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배워야 한다는 엄마의 조언대로 이탈리아로 유학을 다녀온 딸은 ‘SALLY’라는 자신의 닉네임을 딴 웨딩드레스 숍을 오픈했다. “처음에는 엄마와 완전히 다른 서구적인 옷을 만들고 싶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적인 감성이 깃들어 있는 드레스에 관심을 갖게 되네요. 엄마가 평생 옷에 헌신하신 것처럼 저 역시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려 합니다.”

 

기획 오유리 사진 김태정 스타일리스트 이재하 헤어&메이크업 신민정
※ 이 기사는 <헤이데이> 6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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