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비 톡톡] ④ 동시조를 노래하는 여류시인 진복희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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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비 톡톡] ④ 동시조를 노래하는 여류시인 진복희

‘비자비 톡톡(Vis a Vis Talk Talk)’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 기사입니다. 보통 사람의 좀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사람의 보통 이야기를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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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섬세한 소녀감성을 풍기는 여류시인 진복희씨. ©유창하

올해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국정 국어교과서에 동시조가 실렸습니다. 동요나 동화야 많이 나오지만 초등학교 교과서에 동시조가 얼굴을 내민 건 극히 드문 일입니다. 오늘 비자비 톡톡에서는 주인공 여류시인 진복희(69세) 선생을 만나봅니다.

 


 

안녕하십니까? 먼저 작품부터 하나 읽어 주시지요.

그러지요.

<서둘러 폴짝폴짝 산자락을 오르는데 “달리기 경주 아니야, 느긋하게 걸으렴, 나무랑 풀을 데리고 새소리도 데리고.” 자작나무 숲 사이로 어, 새털구름이 스치네. 정답게 말 걸어오는 비비추, 나리, 장끼소리…… 할머니 말씀을 좇아 한 걸음 늦췄더니.>

‘걷는 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처음 작품을 읽고는 젊은 시인인가 했었는데 연세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뭘요, 연세랄 것까지야. 이제야 칠순이 낼 모렌데요. 그리고 동시조나 동요 동시 모두 어린이들의 노래 아닙니까. 어린이 맘을 읽는다면 신체나이는 상관없겠지요.

 

근데 작품에 나오는 ‘비비추’가 무엇인지요?

산 속 개울가에 많이 피는 난 종류의 다년초인데요. 도시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의 생활이랄까 생활의 여유를 노래하는 것 같은데 5학년 학생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모든 시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시나 동시조도 마찬가지겠지요. 쉽게 생각하면 쉽고 어렵게 바라보면 어렵고. 있는 그대로 읽고 느끼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동시조는 아직 좀 생소하다 그럴까요, 그렇게 가까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동시조 작가였는지요?

아뇨. 시조시인으로 문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러나 시조의 아름다운 선율을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동시조를 진작부터 가슴에 품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대선배 시조시인 박경용선생으로부터 ‘시인이 시조를 못써도 절름발이며 시조시인이 동시조를 못쓴다는 것 또한 절름발이 시인’이라는 야단을 맞고 억지춘향으로 동시조라는 바다에 뛰어 들었어요. 물론 동시도 함께 하고 있고요.

 

대학(경희대 국문과) 2년 재학 중이던 지난 1968년 ‘시조문학’을 통해 일찌감치 등단했으며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동시조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시조집 ‘불빛’으로 가람문학상을 수상(1996년)했고 두 번째 동시조집 ‘별표아빠’로 방정환문학상(2012년)을 받기도 했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걷는 법’은 ‘진복희 동시선집’에 실려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집 ‘진복희 동시선집’에 실린 작가의 커리커춰.  ©유창하
작품집 ‘진복희 동시선집’에 실린 작가의 캐리커처. ©유창하

대학졸업 후 중고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했다고 되어있던데 갑자기 교사를 그만두고 시인으로 인생행로를 바꾼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전 상업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대학국문과에 간 것부터도 이상한 것이 되겠지요. 인생이 꼭 생각대로 각본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꿈대로 안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춘향전으로 유명한 전남 남원골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고교까지 다녔답니다. 고교시절 ‘구름재’란 필명으로 유명한 시조시인 박병순 선생이 국어교사로 부임한 것이 시조시인으로서의 인생길을 걷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국어시간에 과제로 써 낸 작품이 선생님 눈에 띄었고 습작 또 습작 끝에 이화여대와 경희대에 응모한 문예현상모집에서 장원/차상을 동시에 거머쥐게 되었고 결국은 시인이라는 모자를 쓰게 된 것이라는 얘깁니다.

 

문예현상모집 수상이 결국 경희대로 진학하게 만들었군요.

그렇게 됐습니다. 상고 졸업 후 주산실력으로 어떤 직장에 한 1년 다니다 고교 때 문제의 그 국어 선생님이던 박병순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 것이지요.

 

학교에 입학해 보니 어땠어요?

와! 기라성 같은 교수님들이 쫙 깔렸잖아요. 국문과라면 경희대가 어느 대학 못지않지요. 황순원 조병화 서정범 박노춘 김우종 선생님 같은 문학계 대부들이 가득한 교실, 환상이었지요. 그때 함께 수학한 동문들 가운데 지금은 문단의 중진이 된 친구 선후배들 또한 한 둘이 아니지요. 정호승 박정만 이근배씨 등 많지요.

 

다시 돌아가서 묻겠습니다. 대학 졸업 후 학교 영어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뛰쳐나와 ‘시인=가난’이라는 한국사회에 뛰어든 것은 용기인가요, 만용인가요?

글쎄요, 지금 생각하면 뭔가 씌었겠지요. 도돌이표 같은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낀 데다 젊음이 가진 무언가가 분출 한 것이겠지요.

 

그 뒤 얼마 안 있어 같은 과 선배인 시인과 결혼했잖아요?

‘시인부부’ 보기에도 듣기에도 참 좋지요. 그리고 실제로 좋기도 해요. 단지 돈이 없다는 것만 뺀다면 말입니다.

 

부군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신다면?

‘참 나쁜 남자’예요. 함께 시를 쓰면서 같이 부대끼며 살기로 했으면 끝까지 함께 가야지 나를 홀로 두고 ‘하늘나라’로 혼자 가 버렸어요. 그것도 벌써 20년이 지난 것 같네요.

그 사람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시인이었지요. 맘이 여려도 너무 여린 시인이었어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면 딱 좋을 사람이었는데 현실이 어디 그렇습니까. 고생만 실컷 정말 원 없이 하다가 그냥 그렇게 가버렸거든요.

 

그 사람은 시인 류제하씨. 문학도들에게는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이 꿈이었던 당시 그는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을 통해 시조시인과 문학평론가로 데뷔했으니 문학계의 부러움을 받는 대단한 문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가니 장군을 말할 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노벨문학상을 꿈꾸며 문학에 빠져있던 영혼이 맑고 아주 순수한 사람이었답니다. 그러나 그는 살아생전에 시집 한 권 내지 못하고 떠났지요. 아내 진복희씨는 남편의 작품을 모아 유고시집 ‘변조’를 펴 낸 바 있습니다.

유고집 ‘변조’에 실린 ‘낮달’이라는 작품은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작품’이라거나 ‘심장이 저미도록 슬픈 이야기’라는 평을 듣곤 하는데 시 낭송회에서는 자주 읽혀지는 작품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인이라는 직업은 참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구한테 간섭도 지시도 받지 않고 자기 영혼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토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거기다 정년도 없잖아요.

그럼 기자님도 시인 한 번 해 보시지요. 후후.

 

손주들 동시조 할머니가 있어 참 좋아하겠습니다.

손주요? 엄청 좋아하지요. 근데 손주가 한 둘이라야지, 누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그는 슬하에 자녀가 없다고 합니다. 물론 가까운 친인척들의 손주들이야 많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모든 어린이가 다 손자손녀라 여겨져 편견 없이 아이들 눈으로 아이들 맘으로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장시간 고맙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더 좋은 작품 많이 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