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생태파수꾼 김승호·이명화 부부가 사는 법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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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생태파수꾼 김승호·이명화 부부가 사는 법

철새사랑에 빠진 남편, 결혼기념일도 헷갈려요

“우린 결혼 날짜가 달라요. 저는 9월 20일에 결혼을 했고, 남편은 22일에 했거든요.”

이명화(54세) 여사의 농담어린 핀잔이다. 이 여사는 철새 사랑에 빠져 결혼기념일도 헷갈리는 남편 김승호(55세) DMZ생태연구소장의 철새 사랑에 대한 열정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한다.

김승호 소장과 이명화 여사는 DMZ 생태연구의 끈으로 묶인 찰떡 부부다. 토요일이면 으레 카메라와 600㎜ 망원렌즈, 망원경을 챙겨 들고 함께 서부전선을 누빈다. 김 소장은 고등학교 교사로 학교 수업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열일 제쳐두고 생태 모니터링에 나선다. 철새를 관찰하고 촬영하는 게 그의 주말 일상이다.

김 씨 부부의 탐방 지역은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일대, 서부전선 DMZ 안에 있는 임진강 하구의 초평도와 덕진산성 그리고 통일촌과 해마루촌 일대의 민간인 통제구역 논밭이다. 이들은 청소년 탐사대를 인솔해 이 지역의 자연 생태를 관찰하고, 청소년 생태학교를 열어 자연의 소중함을 설파한다.

서울대에서 식물습지생태학 분야 석사학위를 받은 딸 재현(27세) 씨까지 가세한다. 게다가 군복무 중인 아들 기덕(23세) 씨도 제대하면 아버지를 따라 생태 연구를 할 계획이다. 온 가족이 DMZ 생태와 철새 연구에 매달리는 DMZ 전문 가족인 셈. 겨울 철새 관찰은 새들이 먹이를 찾아나서는 아침이 적격. 새벽부터 부산을 떨 수밖에 없다.

김승호·이명화 부부는 1987년에 결혼했다. 앞으로 1년여면 결혼 30주년이다. 철새 관찰에 미치다 보니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도 제대로 못했단다. 결혼 30주년이 코앞이라는 기자의 환기에 김 소장은 격세지감을 토로하며 아내의 눈치를 살핀다.

“30주년 기념으로 유럽 여행이나 할까?”

잠시 후 아내의 승낙이 떨어지자 그의 입가에 멋쩍은 웃음이 감돈다.

부부
김승호 DMZ생태연구소장과 부인 이명화 여사. 파주시 군내면 임진강 하구에서 관찰한 흰꼬리수리 사진을 놓고 생태 및 서식 습성을 논의하고 있다. ©문인수

문산고교 재직이 환경운동의 시발점

김 소장이 DMZ 생태 환경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문산고등학교 재직 시절인 2004년부터다. 서울대학교 원예과를 나온 김 소장은 평소 동식물 등 자연에 관심이 많았다. 이명화 여사도 평소 꽃과 나무를 가꾸는 데 취미가 있었다. 그런 취미와 관심이 지역 환경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허나 호락호락 쉽지만은 않았다. 장비 구입과 조사비, 교통비 등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 학교에서 받는 월급 절반이 날아갔다. 게다가 자식들도 커서 씀씀이가 커져 늘 가정불화가 끊이질 않았다. 지금은 그래도 환경기금에다 생태학교 운영수입금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비용을 댈 수 있어 다행이라며 부부는 크게 웃었다.

두 번째 찾아온 시련은 함께 생태조사를 하던 동료들끼리의 갈등. 공을 가로채는 일로 반목했고, 서로 이간질을 해 애써 길러놓은 제자들이 곁을 떠날 때는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픔이 컸다고 회고했다. 그런 일의 반복으로 김 소장은 결국 담낭암에 결려 투병의 시련을 겪기도 했다. 한때는 마실 줄 모르는 술까지 마시며 자포자기하기도 했다. 이명화 여사는 그 당시인 2004년에 본격적으로 남편의 일에 뛰어들었다.

“호위무사를 자청했죠.”

이 여사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남편의 투병과 생태조사를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아내의 노력 덕분인지 남편도 병을 이겨냈고 조직도 안정됐다. 이제 완치판정을 받은 김 소장은 서부전선 DMZ 생태조사를 천직으로 알고 주말이면 그곳을 찾는다.

10년 동안 이 부부가 관찰하고 찍은 조류는 400여 종. 그중에 멸종 위기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조류만도 30종이 넘는다. 이런 조류 사진과 함께 DMZ 생태를 분석한 책 <비무장지대 조류 DMZ 10년의 기록>을 냈다.

재두루미 떼의 장관(파주시 군내면 덕진산성 들녘, 600㎜ 렌즈/니콘 D4). ©김승호(DMZ생태연구소장)

철새 도래 개체수 해마다 줄어

임진강 하구에서 한강 하구로 이어지는 서해안 하구벨트는 철새의 중요한 이동 경로다. 국제기구인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Bird Life International)은 이 지역이 아시아의 3대 철새길 중 하나라며, 동아시아·대양주 이동경로에 있는 철새들의 중요한 서식지로 지정했다. 특히 서부전선 DMZ는 철새들의 천국이다.

독수리 떼(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일대 논밭, 600㎜ 렌즈/니콘 D4). ©김승호(DMZ생태연구소장)

통일촌과 해마루촌 일대의 질펀한 논밭과 임진강 하구의 초평도 그리고 장산반도로 이어지는 이곳은 바다와 육지가 접하고,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으로 철새들의 먹이가 풍부하다. 그래서 두루미를 비롯해 재두루미, 고니, 큰기러기, 독수리, 흰꼬리수리, 황조롱이, 개리, 물수리, 호반새 등 멸종 위기 조류나 천연기념물의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해마다 철새들의 도래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큰기러기 떼(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일대 논밭, 600㎜ 렌즈/니콘 D4). ©김승호(DMZ생태연구소장)

DMZ생태연구소가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동안 관찰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동철새의 개체수는 확연히 줄었다. 재두루미는 10년 전에 300마리 가까이 관찰됐지만 지금은 100마리도 관찰되지 않는다. 독수리 또한 1300마리에서 200여 마리로 똑 떨어졌다. 흰꼬리수리도 임진강 하구의 탐조대에서 13마리씩 관찰됐지만 지금은 한 마리 관찰도 힘들다. 두루미는 아예 사라졌다.

이렇게 철새들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통선 지역의 긴장이 완화되면서 각종 개발로 철새 서식지들이 많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늪지대가 줄어들고 새들의 먹이인 새섬매자기나 모새달 같은 식물들도 사라지고 있다. 조류 등 동물이나 식물은 병들어가는 자연의 청진기나 다름없다.

동식물이 살지 못하는 자연엔 인간도 존재할 수 없다. 기후변화만이 인간의 재앙은 아니다. 인위적 자연훼손도 그에 못지않은 재앙이다. 원시적 자연은 인간에게 친화적이자 후손들에게 물려줄 미래의 자산이다. 서부전선 DMZ를 지키는 김승호·이명화 부부는 미래의 자산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큰기러기 떼(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일대 논밭) 사진(600㎜ 렌즈/니콘 D4). ©김승호(DMZ생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