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丙申年)엔 유유자적 세월을 즐겨라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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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丙申年)엔 유유자적 세월을 즐겨라

장강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양자강. 우기 때 특정 지역에선 강의 수위가 50m에 이르기도 한다. ©Pawika Tongtavee/Shutterstock

‘세월의 빠름은 이 같은가, 강물은 쉬지 않고 흐르고.’

춘추전국시대를 산 공자(孔子)는 어짊과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왕도를 설파하느라 한 평생(기원전 551~479년) 중원의 각 나라를 떠돌지만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한다. 그나마 말년에 이웃 위나라의 부름을 받고 달려가던 중 장강의 대범람에 발길이 묶여 뜻을 펼 마지막 기회조차 무산되고 만다. 어쩌겠는가. 하늘이 무심타 할 밖에. 강둑에 서서 도도히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세월을 한탄하다.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그저 밤낮으로 쉬지 않고.’

<논어> 자한편(子罕篇)에 기록된 천상탄(川上嘆)의 ‘서자여기부 불사주야(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는 대목이다. 이때 공자의 나이 67세였다고 한다.

 

시쳇말 ‘세월유수’의 유래

정념의 사나이 공자는 그로부터 6년 동안 제자양성에 혼신을 다하다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한다. 아무도 그가 2500년을 넘어 대성현으로 추앙받을 줄은 몰랐다. 다행이 72명에 이르는 훌륭한 제자 집단이 있어 그의 가르침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

공자는 조그만 고을의 수령이 동네 여인과 야합(野合)하여 낳은, 보잘 것 없는 집안의 아들이었다.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에서 공자를 폄하해 ‘아버지의 무덤조차 어디 있는지 모르는 자’라고 기술했는데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자는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했다. 기록에 그 키가 ‘9자 6치’라고 했으니 춘추시대의 1자는 22.5㎝이므로 216㎝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실제 공자의 고향 사람들은 그를 ‘키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완력과 권모만 있으면 세력을 모아 고을을 평정하고 한 지역을 호령하던 전국시대에 그처럼 장대한 기골이라면 의당 병장기를 익혀 떨쳐 일어났을 법한데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 인본사상을 완성했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류에게는 큰 축복이 되었지만. 아마 요즘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MBA의 고액연봉자로서 호사를 누렸을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공자께서도 세월의 빠름을 현세의 우리만큼 절절하게 아쉬워했다니 그로부터 위안을 받을 것인가. 또 한 해를 바꾸어 병신년(丙申年)을 맞으면서 온갖 감회가 온몸을 휘감는다.

세월이 과연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것일까. 시간이 정작 시계의 초침을 따라 재깍재깍 지나가는 것일까. 3차원의 공간에서 4차원으로 존재하는 시간의 개념이 자못 궁금해진다.

 

시간은 과연 무심하게 흘러가는 것일까

시간이란 개념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생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죽음의 상태, 멈춤의 상태에서는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신이 살아있다는 것은 생각하는 영혼이 함께 있을 때인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시간은 공간에서 일컫는 존재의 본질이거나 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쉬지 않고 흘러가는 과정으로 여기며 단지 그 시간에 편승해서 삶을 영위해 나간다고 판단한다. 시간이란 과연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붙잡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무형의 간섭일까.

아닐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과학적으로도 입증했고 경험적으로도 인지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원리를 통해 ‘광속 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움직일 때는 시간이 더디거나 일시 정지한다’는 가설을 수학적으로 입증했다. 광속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라면 우리의 ‘생각’밖에 없다. 우리의 생각은 몇 백 광년 떨어져 있는 별을 순간적으로 다녀올 수 있을 만큼 빠르다. 광속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다.

불전에서 ‘영겁’에 대해 논한 것을 보면 시간은 무한한 개념이다. 이 우주공간이 무한한 것처럼 말이다. 성경에서도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린 사례가 수차례씩 언급되고 있다. 죽음을 이기고 살아났다는 것은 죽음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갔다는 뜻인 것이다. 우리는 꿈에서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생하게 만나곤 한다. 우리의 영혼이 시간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해석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시간은 일정 방향으로 속절없이 흘러가고 우리가 거기에 편승하고 있다는 개념은 약간 어색하다. 공간보다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존재하는 시간을 우리가 소유하면서 어떤 땐 빠르게 소비하고 어떤 땐 더디게 소비하는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시간(크기변환)
다가오는 병신년 새해를 우리 모두에게 내려주시는 신의 축복으로 여기고 세상의 오욕칠정에 조금만 더 유유자적, 세월을 즐겼으면 한다. ⓒliseykina/Shutterstock

시공(時空)의 테두리 안에서 즐거운 한 해가 되길

공간이란 테두리는 사실 무(無)에 지나지 않고 시간이란 개념이 있기 때문에 유(有)가 실존하게 된다. 방금 전 화장실에 앉아있던 내가 지금 거실에 앉아있는 현상은 시간 개념 때문에 가능한 것일 뿐, 시간의 테두리가 없어 방금 전으로 자유로이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지금도 화장실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소유한 시간, 내가 운용하는 시간이라는 관념이 정립된다면 시간이 배제된 공간에 존재하는 이 세상의 물질은 한낱 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념을 키울 수 있다. 그리고 온갖 잡다한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소한 물욕이 온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요즘의 세태에서 한 번쯤 되새겨봄직한 테두리 담론이다.

다가오는 새해 병신년을 우리 모두에게 내려주시는 신의 축복으로 여기고 세상의 오욕칠정에 조금만 더 유유자적, 세월을 즐겼으면 한다. 글 쓰는 이는 글을 쓰고, 글 읽는 이는 읽으면서 그렇게 세월을 아끼고 존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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