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른 일본의 연말연시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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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른 일본의 연말연시

극심한 불경기와 안팎으로 어지러운 나라 정세 때문에 연말이 가까워도 영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거리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사라진 지 오래고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심드렁하기만 합니다. 도심을 뒤덮은 중국 관광객들이 주고받는 말소리와 웃음 그리고 꼬리를 문 불법주차 관광버스 행렬만 빼놓고 본다면 시간이 연말을 향해 달려가도 서울 도심에서는 도시 특유의 활기와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도 물론이지만 보통의 한국인, 주변 서울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 어느 해보다 팍팍한 삶에 지쳐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엇박자

인생살이 수십 년 동안 내 나라 땅이 아닌 타국에서 연말연시를 보내신 적이 있으신지요? 세계가 한나절이면 끝에서 끝이 닿을 정도로 공간적 거리가 좁혀지고 경제적 풍요에 힘입어 우리 한국인들도 안방에서 건넌방 드나들 듯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는 오늘날,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촌스러운 일이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연말연시라는 특정 시점에 한해서 질문을 드리는 것이고 이는 어디까지나 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너스레에 불과할 테니 웃으며 넘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일본 도쿄에서 연말연시를 전후한 시기를 여섯 번 겪었습니다. 배고픈 유학생으로 다다미 골방에서 해가 바뀌는 경험을 한 것도 아니고 회사 일로 동해를 건너간 데다, 가족들도 모두 곁에 있었으니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섯 번의 송구영신(送舊迎新) 체험을 통해 저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의 벽, 생활 습관의 차이를 꼼꼼히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거창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전문 학자도 아니고, 보통 서민들의 삶과 역사를 한우물 파듯 매달려 연구해 온 관찰자도 아닌 이상 제 이야기는 신변잡기 수준의 잡담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래서 장광설로 풀어놓기도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고를 써내려 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겉으로는 너무도 비슷하고 차이점도 거의 없는 듯해 한마을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이지만 밑바닥 정서와 일상생활을 촘촘히 들여다보면 작은 차이점이 수두룩하게 많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작은 시냇물이 모여 큰 강을 이루고, 강물이 흘러 내려 바닷물이 되듯 작은 차이 하나하나가 모여 큰 차이를 이루게 됨을 이해한다면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엇박자 원인을 우리 보통의 한국인들도 조금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서양 문화를 철저히 본뜨고 따르는 일본의 새해 첫날은 새 달력의 첫 장 맨 앞에 나와 있는 날이 맞습니다. ©ankomando/Shutterstock

세밑이 되면 청소용품 판매 신바람

우리와 비슷한 점도 없지는 않지만 제 생각으로 일본의 연말연시 풍속 중 가장 두드러지게 차이 나는 것은 ‘청소’, 한발 더 나아가 일본 사회의 매듭짓기 관습입니다. 잘 알고 계시다시피 일본의 정월 초하루는 양력 1월 1일입니다. 우리도 설날을 민족 모두의 명절로 다시 컴백시키기 전까지는 양력 새해 첫날을 신정이라는 이름의 명절로 정해 쉬어 왔음을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서양문화를 철저히 본뜨고 따르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36년간이나 당했던 우리 한국인들로서는 고유의 명절까지도 일본 스타일로 강요당한 셈이었지요.

아무튼 일본의 새해 첫날은 새 달력의 첫 장 맨 앞에 나와 있는 날이 엄연히 맞습니다. 그리고 이 날을 전후한 일본 사회의 풍습 중 외국인인 제 눈으로 볼 때 가장 특이한 것은 앞서 말했듯 연말의 ‘청소’였습니다. 청소도 일상적으로 하는 보통의 집안 정리 수준이 아니라 땀 흘려 열심히 닦고 치우는 대청소였습니다. 이러한 대청소는 가정은 물론 직장의 사무실에서도 치러졌으며, 유명 사찰과 신사에서도 묶은 때를 벗겨내고 번쩍번쩍 광이 나도록 걸레질하는 모습이 TV 뉴스 화면을 단골로 장식했습니다.

이 시기의 청소는 아직 더 쓸 수 있는 형광등 전구도 싹 새 것으로 갈고 집안 구석구석의 낡은 비품과 장식을 바꾸는 일이 보통이었습니다. 부자 동네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절약 습관이 몸에 뱄다는 일반 서민 가정에서 흔히 목격되는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대형 슈퍼는 물론이고 동네 곳곳의 조그만 드러그스토어 등에는 청소용품이나 집안 보수에 쓰이는 소품 등이 연말만 되면 잔뜩 깔려 있었습니다. 대목을 보기 위해 따로 임시 코너를 설치할 정도였으니까요.

 

한 해를 깨끗이 마무리하고 넘기는 ‘매듭짓기’

집안 청소를 말끔하게 끝내고 전구도 새 것으로 갈아 끼우고 난 후 일본인들의 저녁 밥상 또는 간식 메뉴에는 대개 메밀국수가 오릅니다. 그리고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꽃을 피우거나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아 연말 분위기를 즐기는 가정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연말을 보내고 난 후 맞이한 새해의 첫날,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 우체국에서 벌어집니다. 개인과 직장이 연말에 부친 새해 인사 연하장을 싣고 배달에 나서는 빨간 오토바이 행렬이 그것입니다. 지금에야 이메일, 휴대전화 문자와 메신저가 대세지만 손으로 쓰는 편지, 엽서에 대한 일본인들의 애정은 유별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연말이 다가오는 12월은 너도 나도 연하장을 대량으로 구입해서(편의점에서 인쇄 주문도 받아줍니다) 인사말을 적어 넣은 후 지인이나 친구, 거래처에 보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일본 사회의 특이한 망년 풍속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쌓인 연하장을 우체국은 바로 수신인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만사형통과 건강을 기원하는 문구가 가득한 연하장들은 새해 첫날, 날이 밝자마자 집배원들의 오토바이에 가득 실린 채 수신인을 찾아 힘차게 달려갑니다. 연휴가 한국보다 긴 일본이고 아직 휴일임이 분명하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듯 집배원들은 연하장 배달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연하장을 건네받은 수신인들의 표정에 기쁨이 가득할 것임은 물론입니다.

일본 우체부(크기변환)
새해 첫날 일본에서는 연말에 부친 새해 인사 연하장을 싣고 배달에 나서는 빨간 오토바이 행렬이 줄을 잇습니다. ⓒtwoKim/Shutterstock

목욕은 끝맺음 의식 중 하나

일본의 세시풍속 중 또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정월 초하루 아침의 목욕입니다. 일본의 대중목욕탕(센토)은 한국과 영업 방식이 딴판입니다. 새벽에 문을 열고 초저녁에 닫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대중목욕탕들은 오후 3시쯤 시작한 후 오전 12시가 다 돼야 장사를 끝냅니다. 아침에 목욕재계하고 일을 시작하는 한국인들과 달리 일본인들은 하루 일과를 마친 후 목욕탕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푼 후 잠자리에 드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그렇습니다. 한국의 목욕이 하루의 준비를 알리는 것이라면 일본들에게 목욕은 끝맺음 의식 중의 하나로 전해져 내려왔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새해 첫날만큼은 다릅니다. 1월 초면 적어도 사흘 정도씩 셔터를 내리는 것이 관행이지만 이날은 목욕탕들이 반나절 반짝 영업을 합니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점심나절까지만 손님을 받습니다. 새해의 출발을 알리는 첫날을 소중히 여기는 의미에서 오늘만큼은 일찍 손님을 받아줄 테니 깨끗이 잘 씻고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면서 각오를 잘 다져보라는 의미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보통의 일본인들은 우리 한국인들의 눈에도 익숙한 신사를 너도 나도 가족 단위로 찾아(‘하츠모오데’라고 부릅니다) 경건한 자세로 건강과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을 당연한 정월 초하루 풍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잠깐 스쳐가듯 알려드린 일본의 연말연시 풍습과 정월 초하루의 모습이…. 어찌 보면 우리 한국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생소하면서도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지리적으로 우리 한국과 인접한 나라인 데다 피부색과 얼굴 생김새도 비슷한 터라 세시풍속도 크게 색다르게 보일 것은 별로 없습니다. 일제 식민지배 시대를 거쳐 온 분들이라면 아마 상당수가 어린 시절에 이미 경험해봐서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대나무(크기변환)
일본인들은 ‘후시메(節目, 대나무의 마디처럼 옹이가 있는 부분)’라는 말을 중시하는 의식이 뿌리 깊습니다. 중간의 마디마디가 튼튼하고 제 구실을 다해야 대나무가 쭉쭉 하늘로 뻗어 자라듯 사람이 하는 일도 후시메를 잘 넘기고 앞으로 나갈 때 더 번듯하고 단단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Scorpp/Shutterstock

일본 사회에 담긴 ‘맺고 끊음’의 문화 메시지

하지만 제가 두서없이 엮어낸 이 글의 끝자락에서 드리고 싶은 한 마디 키워드는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맺고 끊음’의 문화를 우리가 눈여겨보자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후시메(節目, 대나무의 마디처럼 옹이가 있는 부분)’라는 말을 중시하는 의식이 뿌리 깊습니다. 중간의 마디마디가 튼튼하고 제 구실을 다해야 대나무가 쭉쭉 하늘로 뻗어 자라듯 사람이 하는 일도 후시메를 잘 넘기고 앞으로 나갈 때 더 번듯하고 단단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연말연시가 다가올 때마다 대청소를 하고 주변의 때와 허물을 걷어낸 후 목욕재계하면서 새 출발의 각오를 다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시간의 후시메를 소중히 하려는 의지와 무관치 않다고 저는 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어떻습니까? 모든 분들이 하루하루 마감을 나름대로 잘해 가시리라고 믿습니다만 또 하나의 새해를 앞둔 지금 이 시점에서의 마무리는 어떠신가요? 일본에서 돌아온 지 10년이 넘었습니다만 이번 연말에는 저도 과거 기억을 잠깐 되살려 가족들과 함께 대청소를 하고 주변 정리를 싹 한 후 새 각오로 새해를 맞아 볼까 합니다. 2015년의 후시메 만큼은 다른 때보다 좀 더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왜 그러느냐고요? 어영부영 살다 보니 어느새 세컨드라이프의 제 인생 시계도 오후 6시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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