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예정자 6인의 은퇴 준비 일기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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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예정자 6인의 은퇴 준비 일기

2016.01.04 · HEYDAY 작성

이름 윤석원
나이 61세
은퇴 예정일 2016년 12월 31일
근속기간 31년
소속 현대자동차(주) 변속기 3부 주임

평소 ‘은퇴’ 하면 ‘설마 나에게까지 그런 일이’싶었다(웃음). 사람들 모두 언젠간 죽을 것을 알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지 않나. 나에겐 은퇴가 그랬다. 아무 생각 없이 매일 회사와 집을 번갈아 다녔더니 어느덧 은퇴다. 요즘 환갑이면 청년이나 마찬가지인데.

요즘 나는 ‘정년퇴직하면 2~3년 내에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마냥 농담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수십 년간 주 · 야간 번갈아가며 근무했으니 몸에 무리가 갔을 테고, 퇴직하면 긴장이 풀리니 결국 병을 얻는다는 뜻인데 내 얘기가 되고 보니 은근히 신경 쓰인다.

생각해보면 은퇴가 아쉬운 이유 중 하나는 달라진 처우와 인식 때문이다. 1979년 현대자동차에 취업했을 때만 해도 속칭 ‘똥 구루마’를 만든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랜저, 제네시스 같은 최고급 자동차를 만든다며 다들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나를 비롯해 동료들 역시 이만큼 회사를 키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다. 근무 여건이나 복지 역시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한편으로 내 자식 같은 애들이 비정규직 신분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걸 보면 그래도 ‘여기까지’가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한 선배들은 “돈 만원이 그렇게 아쉬워질 줄은 몰랐다”며 “회사 다닐 때가 최고”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그래서 현직에 있는 후배들에게 ‘있을 때 아껴 써라, 저금을 많이 해라’라는 말을 미리 하고 싶다.

내 고향 친구는 얼마 전 나에게 시멘트 공장 경비 자리를 제안했다. 월급은 150만원. 마침 내 고향 정동진 근처라 객지 생활을 접고, 어머니도 모실 겸 올라갈까 생각 중이다. 그러나 친정 울산을 떠나 뒤늦게 강원도에서 객지 생활을 해야 할 우리 집사람은 어떤 생각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껏 문제없이 잘 지냈는데 괜히 고부 갈등이라도 생기면 그땐 어떡하지? 서두르면 반감이 들 테니까 퇴직 후 10개월은 실업급여 수당으로 잘 버텨보고 차차 재취업, 합가 준비를 해야겠다.

퇴직금은 중간 정산을 몇 번 해서 얼마 되지 않지만 나보다 오래 살 것으로 예상(?)되는 집사람을 위해 예금으로 넣어놓겠다. 만약 어머니와 합가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일단 처분해야 할 텐데 연금으로 돌리든 재테크를 하든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겠다.

아내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본 게 언제인가 싶다. 우리 연배의 부부가 다 그렇듯 데면데면하다. 집에서 세끼 밥을 꼬박꼬박 얻어먹는 ‘삼식이’가 될 까 두렵다. 회사에서 연중 2~3일씩 은퇴자 교육을 실시하는데 그때마다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노력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겠더라.

내년 5월 아들을 장가보낸다. 딸은 이미 혼해 손녀딸까지 낳았으니 자식 농사도 어느덧 끝물이다. 이제부터는 쉬엄쉬엄 일하며 색소폰도 배우고 봉사 활동도 다녀야겠다. 꿈이 있다면 캠핑카 몰고 집사람이랑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것. 여행다운 여행, 이젠 떠나도 되겠지?


이름 최상희
나이 59세
은퇴 예정일 2016년 6월
근속기간 33년
소속 경기고등학교 행정실장

‘은퇴’라는 단어에 나는 사회라는 무대에서 퇴장당하고 마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렸다.

은퇴란 ‘이제 그만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나는 바쁘게 인생 후반전을 보내기 위해 준비한 것이 많다. 짬을 내 대학원 과정을 마쳤고,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도 취득해 앞으로 체계적으로 사회봉사를 할 계획도 갖고 있다. 콕 집어서 말하자면 세곡동 어린이병원에 들어가 장애 학생들과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다른 한편 골프, MTB(산악자전거), 탁구, 테니스 등의 스포츠를 따로 배워둬서 앞으로 계절에 구애 없이 다양한 운동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여행 시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준비된 은퇴만이 만족스러운 노년을 약속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의 힘을 강조하는 요즘 나는 인문학 책들을 별로 읽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퇴직 후 한동안 인문학 책에 집중하는 ‘기획 독서’를 하고 싶다.

선배들의 퇴직을 볼 땐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이제 내가 학교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요즘 내 책상을 볼 때마다 쓸쓸하고 허전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지만 늘 학교에 매여 살던 과거를 벗어나 자유롭게 새 미래를 꾸밀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후배들에게 100세 시대라고 치면 은퇴 후 40년이 덤이다. 이 긴 시간을 잘 즐기려면 체계적인 은퇴 디자인이 필요하다. 업무에만 집중하지 말고 다방면으로 틈틈이 은퇴 준비에 시간을 투자하라고 말하고 싶다. 잘 다져놓은 인간관계,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취미를 특히 강조하고 싶다.


이름 이금영
나이 62세
은퇴 예정일 2016년 2월 26일
근속기간 40년 10개월
소속 김포 고촌초등학교 교장

날씨가 추워지니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주 자각하게 된다. 교장 생활은 통상 10년 정도 하게 되는데 세 번째로 부임한 이 학교가 내 교직 생활의 마지막 장소가 되고 말았다.

꽤 엄격한 교사였던 나는 요즘 들어 아이들에게 ‘사랑합니다’란 인사를 자주 건넨다. 영 어색해하던 아이들도 이젠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교사들에게도 교장으로서 권위를 내려놓고 먼저 다가가 애로 사항을 묻곤 한다. 가급적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일. 그것이 바로 내 은퇴 계획의 일부다.

올해 우리 학교 입학식 때 생긴 일인데 학부모 중 한 명이 나를 알아보며 자기소개를 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수십 년 전 내가 가르쳤던 1학년 학생이었다. 여덟 살짜리 꼬마가 학부모가 되어, 하필이면 내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 자식을 입학시키다니. 이런 게 바로 삶의 작은 기적이 아닐까.

은퇴를 해서 좋은 점은 ‘아침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 이제부터는 출근 걱정 없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겠다. 또 하나 비성수기에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방학 기간은 늘 성수기라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여행을 다녀야 했다.

내년 봄부터 해외 선교 단체 회장인 남편을 따라 본격적으로 해외 봉사 활동을 다닐 계획이다. 이미 8년 전부터 방학 기간을 활용해 동남아로 봉사를 다녔는데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교사가 되겠다. 아이들이 가진 순수함,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그때의 기쁨은 죽을 때까지 잊혀질 것 같지가 않다. 새로 부임한 교장 선생님이 지금 내 자리에 앉아 더 큰 열정으로 아이들을 보듬길 기대해본다.


이름 이광옥
나이 59세
은퇴 예정일 2016년 12월 31일
근속기간 35년
소속 강원도 동해경찰서 정보보안과 보안계장

무사히 은퇴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22년 전, 위암 판정을 받았던 나는 24번이나 항암 치료를 받아가며 죽을 고비를 넘겼고, 이후 또 한 번 직장암이 재발되면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었다. 그때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도 정년퇴직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모든 걸 이겨내고 정년퇴직을 앞둔 지금, 나는 매사에 감사함을 느낀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가 있는데 그곳에서 채소 원예를 할 계획이라 미리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들어가 농학을 배웠다. 요즘도 틈틈이 농업기술센터에서 장려하는 곰취, 고추냉이 농장에 찾아가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은퇴 후에는 수갑 대신 농기구를 만지며 살 작정이다.

또 하나의 계획이 있다면 바로 경찰 상담사다. 우리 경찰관들은 각종 범죄 현장에 출동해 진압과 처리를 맡기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많이 겪는다. 그러나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 끔찍한 기억을 묻고 살려다 보니 각종 스트레스와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나는 늘 그 점이 안타까웠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상담심리지도사 1급 자격증을 따놨다. 아직 어떻게 활용할진 모르지만, 좋은 길이 열리길 고대하고 있다.

동해경찰서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곳이다. 나는 1980년 동해경찰서 개서에 맞춰 처음 발령을 받았는데 은퇴마저 이곳에서 할 줄은 몰랐다. 다른 경찰서를 한 번도 거치지 않고 한 서에서 첫 발령과 은퇴를 함께 경험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한곳에서 오래 근무한 덕분에 나름 가시적인 성과를 쌓기도 했는데 서내 포돌이 축구단을 창단한 일이나 마라톤 동아리를 결성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 한 일이다. 축구단은 체력 증진에 도움을 줬을 뿐 아니라 직원들의 화기애애한 근무 분위기 조성에도 보탬이 됐는데 전국 규모의 경찰청장기 축구대회에 5회나 출전해 준우승과 3위를 거두는 등 좋은 성과를 냈다. 5km도 채 뛰지 못했던 동료들과 함께 매주 훈련을 해서 창단 2년 만에 12명 전원이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성취감도 맛봤다. 하나하나 되새길수록 애틋한 추억들이다.

나에게 직장이란 ‘일터’ 그 이상의 의미다.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나의 동료들. 그들은 내가 두 번의 고비를 넘기는 동안 엄청난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던 내 책상과 의자, 그리고 반듯하게 각 잡힌 나의 제복. 이 모든 것들로부터 은퇴할 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끔 슬프다.

중년의 부부가 다정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같이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필수라고 한다. 내 아내는 크로마하프, 만돌린, 우쿨렐레, 오카리나 등 다룰 줄 아는 악기가 꽤 많아 종종 연주회를 열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서 이제부터라도 배울 생각이다. 오붓하게 같이 합주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길게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백두대간 36개 종주는 엄두도 못 냈는데 기회가 되면 꼭 도전해보고 싶다.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무조건 건강을 지키라는 것. 몸이 아프면 본인을 비롯해 가정, 직장, 지인에게 모두 누가 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하라는 것. 경찰이라는 직업상 다른 사람을 규제하고 제재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만인으로부터 호평을 받을 순 없겠지만 내 동료, 내 지인의 소중함을 알고 노력했으면 한다.


이름 최진묵
나이 58세
은퇴 예정일 2015년 12월 31일
근속기간 37년
소속 KT 강남고객본부 분당지사 차장

나에게 은퇴란 회사에 혼신과 열정을 다한 대가로 누릴 수 있는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시간이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도록, 오로지 회사만 보고 살았던 자신이 대견하고 짠하다.

회사 생활이 가장 즐거웠던 때는 2004년 우수 개선 사례 공모전에서 기술 분야 최우수상에 뽑힌 공적으로 과장에 승진했을 때다. 최근 나는 책상을 정리하며 가슴이 찡했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직원들 개개인의 사진을 살펴보며 마음과 달리, 그동안 좀 더 잘 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앞으로 소속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공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은퇴 후 시간적인 여유가 주어지는 만큼 고미술 분야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겠다. 내 취미는 고미술을 감상하는 일인데, 앞으로 시간을 투자해 전문성을 기르면 감정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남은 생애를 풍족하게 살려면 금전적 대비가 필요하므로 부동산 경매시장을 공략해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법을 연구해보겠다.

집사람과의 돈독한 관계를 위해 젊은 사람 못지않은 패기로 함께 해외 배낭여행을 다녀오겠다. 스페인,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점찍어뒀는데 파리 테러 때문에 당장은 어렵겠지.

옛 선인의 말씀 중에 ‘구름은 바람 없이 못 가고 인생은 사랑 없이 못 가네’라는 것이 있다. 치열한 직장 생활에서 갈등과 반목이 없을 순 없겠지만 그럴수록 동료나 선후배 사이에 사랑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름 김명기
나이 58세
은퇴 예정일 2017년 6월 30일
근속기간 33년
소속 경기도청 자치행정국 회계과장

흔히 은퇴를 두고 ‘새로운 시작’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니 준비해놓은 것이 없어 두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바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다. 이를 위해 경기대학교에 다니면서 사회복지계열 석사과정을 마쳤고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당장 도시를 떠날 생각은 없지만 은퇴 후 텃밭을 일구며 살 수 있도록 수원 인근에 약간의 땅을 마련해뒀다.

기회가 된다면 바쁘다는 핑계로 포기했던 동양화 그리기를 시작하겠다.

돌이켜보면 열심히 살았다. 나를 칭찬하고 싶을 만큼. 감사관실에서 청렴 업무를 위해 노력했던 일, 경제 투자실에서 보트쇼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일, 일자리센터를 개소해 취업률 향상에 힘썼던 일, 판교 테크노벨리 공연장 사고 수습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요즘 내 동료들을 보며 헤어짐을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많은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이별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만남이란 이별을 전제하는 일임을 알고 있기에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하겠다. 사람뿐 아니라 내 공간, 내 업무와의 작별도 준비해야 한다. 은퇴를 목전에 둔 지금은 ‘그간의 익숙한 것들과 헤어지는 일’ 그것을 연습해야 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끝으로 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많은 문제 중 공직자의 솔선수범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는 공직자가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기획 장혜정 일러스트 김가빈
※ 이 기사는 <헤이데이> 1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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