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스레 통통] 자녀들을 뭐라고 부르십니까? – 전성기뉴스
콘텐츠 바로가기

top

[너스레 통통] 자녀들을 뭐라고 부르십니까?

소통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사랑 하나가 의사소통의 필요충분조건 곧 완전조건은 아니겠지요. 사랑 또한 공짜로 생기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사랑이 싹트고 자라려면 믿음과 존중이라는 자양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존중을 표현하는 한 방법, 상대방에 대한 호칭 문제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자녀에 대한 호칭 이야기입니다.

 

자녀들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아이들이 갓난아기 때 우리는 대부분 ‘왕자님’ ‘공주님’이라 부르는 호칭부터 시작합니다. 조금 자라면서부터 갑돌이 갑순이 등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미운 일곱 살이 지나고 진짜 말을 안 듣게 되면 자칫 니은(ㄴ) 자가 들어가는 욕이 튀어 나오기도 합니다. 또 여자 아이에게 너무 예쁘다고 해서 예쁜 ‘니은’ 자를 함부로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뒤 결혼하게 되면 누구 애비야 에미야 또는 간혹 옛날식으로 김실이 이실이 등으로 호칭하지요.

필자는 딸, 아들, 딸 이렇게 셋을 두었습니다. 그들이 갓난아기 오줌싸개 때부터 지금껏 같은 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큰딸은 ‘큰딸램씨’, 아들은 ‘아들램씨’, 늦둥이 막내에게는 ‘막내딸램씨’라고 부릅니다. 물론 그들 다 결혼해서 하나같이 부모가 되었고 필자는 손주가 다섯이 됩니다. 그들이 며느리 또는 사위 손주들과 함께 우리 집에 왔을 때도 물론 호칭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건 바뀌지 않습니다.

쌍시옷이 들어간 욕이라든가 지읒 자 욕은 저희 집에서 허용되지 않습니다. 특히 애들 앞에서 어릴 때부터도 결코 써 본 적이 없습니다. 시아버지가 자기 남편을 ‘아들램씨’하고 부르는데 며느리가 남편을 함부로 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 아내를 장인이 꼭 ‘딸램씨’ 하는데 사위가 자기 부인을 마구 부를 수 없겠지요.

 

자녀와의 교감과 소통은 호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건 꼭 계산해서 이렇게 하는 건 아닙니다. 사실은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입니다. 단지 한 가지 생각했던 것은 있습니다. 자식이지만 어릴 때부터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고 싶었습니다. 부모가 먼저 자녀를 존중하자는 뜻에서 그렇게 시작 된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어른이 되고나서 부터는 애비한테 존칭을 씁니다만 딸애들은 지금도 말을 놓고 지냅니다. 그게 더 정감이 가고 살가우니 좋습니다. 특히 큰딸램씨는 제 딸아이가 유치원생이 될 때까지도 수틀리면 “아빠 죽을래”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러지요. “내가 죽으면 딸램씨는…” “시꺼 잉잉잉 그러지 말고 이러쿵저러쿵….”

어릴 때부터 이렇게 지나다 보니 그런 저런 생활 속의 이야기들을 시시콜콜 터놓고 얘기하곤 합니다. 물론 숨겨 놓은 비밀이야 있겠지요. 남들이 들을 때는 ‘아니 저런 것 까지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다니’ 하며 놀라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선 보통이고 다반사입니다.

 

자녀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딸램 씨와 말을 터놓고 지낸다고 해서 집안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의가 없어지는 것 또한 아닙니다. 사이가 더 가까워 질 뿐입니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다’ ‘아무리 어려도 인격체로 대해 줘야한다’ 우리는 이 같은 이야기를 곧잘 합니다. 그리고 그래야 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그러지 않는, 아니 그러지 못하는 생각 따로 행동 따로의 경우가 더러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부모자식 간에도 사랑이 싹트고 자라려면 믿음과 존중이 필요합니다. 존중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호칭이겠지요. 부모가 자신을 인격체로 대해준다는 사실만으로 자녀들은 행복을 느낍니다. ©InesBazdar/Shutterstock

새해입니다. 올해는 문화를 상징하는 남방 붉은 원숭이 해라고 합니다. 가족 간 서로가 존중하고 사랑하며 더 많은 소통이 이뤄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