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꽃할배] 원숭이 신 ‘하누만’이 지키는 네팔 더르바르광장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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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꽃할배] 원숭이 신 ‘하누만’이 지키는 네팔 더르바르광장

네팔 더르바르광장의 수호신 ‘하누만’

‘병신년(丙申年)’ 원숭이 해다. 손오공이 여의봉을 휘두르며 요괴를 물리치는 <서유기>는 통쾌하고 짜릿하다. 천둥벌거숭이로 말썽을 피우다가 삼장법사 호위무사가 되어 구도(求道)의 여정에 오르면서 탁하고 거친 기운이 맑은 심성으로 바뀐다.

힌두교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원숭이 장군 ‘하누만(Hanuman)’도 악귀 라바나를 물리치고 ‘라마’를 돕는 것이 손오공과 닮았다. 네팔 사람들은 원숭이를 신성한 동물로 숭상한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 더르바르광장 옛 왕궁 앞에는 원숭이 신 ‘하누만’ 조각상이 수문장이다.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 스와얌부나트에는 야생 원숭이들이 많아 ‘몽키 사원’으로 불릴 정도다.

네팔 옛 왕궁 하누만 도카 앞의 원숭이 신 ‘하누만’ 조각상. 붉은 망토를 씌웠다. 이는 총각 신인 하누만이 맞은편 자간나트사원에 있는 에로틱한 조각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규섭

카트만두 옛 도심에 위치한 더르바르광장은 16세기 말라왕조에 의해 건설이 시작돼 18세기 샤왕조를 거쳐 19세기 라마 통치자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더르바르는 ‘왕궁’이라는 의미로 옛 카트만두 왕국의 중심 광장이다. 옛 왕궁을 비롯하여 독특한 구조의 수많은 사원과 신상을 만날 수 있다. 카트만두 분지의 원주민 네와르족이 꽃 피운 건축과 장식예술은 미술사에서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9세기까지 네팔 왕족이 머물렀던 옛 왕궁 하누만 도카 앞에 ‘하누만’ 조각상을 세운 것은 신화처럼 왕을 수호한다는 의미다. 특이한 것은 하누만 조각상의 얼굴을 붉은 망토로 가려 놓은 것인데, 이는 맞은편 자간나트사원의 에로틱한 조각을 총각 신인 하누만이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누만 도카는 역대 왕들의 자료와 사진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이 넘쳐나는 더르바르광장

더르바르 광장에서 돋보이는 건물은 약 40m 높이의 3층 12기단으로 이루어진 딸레주사원. 카트만두왕국의 주신 딸레주 여신을 모시는 곳이다. 워낙 지체 높은 사원이다 보니 1년에 한 번 있는 다사인 축제 기간 때만 개방된다.

부근에 있는 마주 데발사원은 외형은 불교사원에 가깝지만 쉬바신을 모시는 힌두사원이다. 계단은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이자 관광객들의 광장 조망 명소다. 쉬바 파르바티사원은 특이하다. 대부분의 사원이 한 명의 주신을 모시지만 이곳은 쉬바와 파르바티 두 신을 모시는 사원이다. 두 신이 창문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는 부조가 인상적이다.

광장 남쪽 구석에 있는 카스타먼터브사원은 ‘나무의 집’이라 불린다. 12세기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로 지었다는 전설을 지닌, 나무 조각이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광장 북동쪽 방면으로는 인드라 초크, 아산 초크 등 바자르(시장)와 이어져 서민들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네팔 카투만두왕조의 화려한 건축물들이 즐비한 더르바르광장. 지난해 4월 대지진으로 주요 건물들이 붕괴되고 수많은 인명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 ⓒ이규섭

더르바르광장 남쪽 끝에 위치한 쿠마리사원은 카트만두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 운이 좋으면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를 볼 수 있다. 쿠마리는 네팔의 왕도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여신으로 추앙 받는다.

쿠마리 여신을 선발하는 과정은 전대(前代) 달라이 라마가 환생(還生)한 것으로 보이는 4~5세의 어린이를 판첸 라마(후계자)로 지정하는 상징적 혈연 세습구조와 비슷하다. 선발 과정도 전임 쿠마리가 쓰던 소지품을 골라내야하는 등 까다롭다. 쿠마리는 사원에서 가족과 생활하다가 초경을 하면 사원에서 축출된다. 피를 부정하게 여기는 관습 때문이다. 은퇴한 쿠마리가 결혼하면 남편이 죽는다는 속설로 결혼도 못한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힘들게 생활하거나 자취를 감춘다고 하니 쿠마리 여신의 말로는 비참하다.

왕을 수호한다는 하누만 신도 천재지변에는 무력했다. 지난해 4월 대지진 참사로 더르바르 광장의 주요 건물들이 무너졌고 수많은 인명과 막대한 재산의 피해를 입었다. 하누만 신의 기운이 네팔 땅에 다한 것인가.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