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도시, 잠에서 깨어난 앙코르와트의 비밀 – 전성기뉴스
콘텐츠 바로가기

top

신들의 도시, 잠에서 깨어난 앙코르와트의 비밀

정글의 은둔자. 신들의 도시. 앙코르와트에 붙은 별명들이다. 그 앙코르와트가 540여 년 만에 정글 속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인천공항에서 앙코르와트까지는 비행기로 5시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서북쪽으로 약 300㎞ 떨어진 시엠립에 있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일컬어지는 앙코르와트의 비밀을 풀어보자.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의 중부 메콩강 유역 농촌도시 시엠립에 있다. 1863년 프랑스의 박물학자 앙리무어가 발견해 서방세계에 알렸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문인수

베일의 신비 앙코르와트를 세상에 알린 ‘앙리무어’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왕조의 도읍지였다. 889년 아소바르만 1세가 크메르부족을 통일하고 이곳에 수도를 정하면서 앙코르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연간 40만 명이나 찾는 지금의 앙코르 돔은 1181년부터 재임한 자야바르만 7세 때 지은 것이다. 이때가 앙코르문화가 가장 찬란했던 시기다.

그러나 앙코르문화는 1432년 크메르의 멸망으로 정글 속에 묻혀버렸다. 앙코르 문화가 다시 깨어난 것은 프랑스의 박물학자 앙리무어 덕분이다. 물론 그 전에도 서세동점(西勢東占)의 물결 속에 서방의 탐험가들에 의해 앙코르와트 소식이 구전으로 간간이 전해졌지만, 그 모습을 상세하게 알린 것은 앙리무어가 처음이다.

1863년 이곳을 탐험한 그는 뛰어난 데생 솜씨로 구조물들을 정교하게 그렸다. 그는 데생에 주석을 달아 세상에 알렸다. 앙리무어 덕분에 앙코르와트는 540여 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반열에 올랐다.

앙리무어는 미신적 두려움에 사로잡힌 원주민들이 이곳에 접근하기를 두려워해 앙코르와트 구조물이 훼손되지 않고 정글 속에 잘 보존됐다고 했다. 또한 원주민들은 앙코르와트를 마법에 걸린 유령의 도시로 인식한다는 사실도 전했다.

미신에는 안식과 저주, 두 얼굴이 있다. 이곳 원주민들에게는 미신이 안식보다는 저주에 더 가깝다. 지금도 메콩강의 돈레삽 주민들은 미신의 저주를 믿는다. 앙코르와트를 유령의 저주로 마법에 걸린 도시라고 믿는 것이다. 또 하나는 크메르왕조가 이민족의 침략에 의해 무너졌다는 점이다. 이웃나라 태국이 크메르를 정복하고 앙코르를 사람이 없는 유령도시로 방치했기 때문이다.

바이온사원_re
12세기 후반의 바이온 사원. ⓒ문인수
10세기 후반의 피미아나까스 사원. ⓒ문인수

별자리를 닮은 앙코르와트 사원

용자리를 본 떠 만든 앙코르와트 배치도. ⓒ문인수

학자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하늘의 오리온자리를 본뜬 것이라면 앙코르와트는 용자리를 본떴다고 주장한다.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자야바르만 7세의 비문에도 캄부자의 땅은 하늘을 닮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보아 앙코르와트는 하늘의 용자리를 본떴다는 것이 입증된다. 춘분에 이곳을 방문하면 때에 맞춰 나타나는 하늘의 용자리와 앙코르와트 15개 사원의 위치가 놀랍게도 일치한다. 하늘에서 투사한 건축물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천문학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고대이집트→인도→인도차이나 반도로 이어지는 컬처로드(Culture Road)의 증거일 수도 있다는 대목이다.

앙코르 사원으로 들어가려면 250여m에 이르는 해자(垓字)를 건너야 한다. 그 해자를 가르는 다리는 사암(砂巖)으로 이루어졌다. 폭 12m, 길이 250m의 돌다리다. 여기 사용한 돌덩이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옮겨 왔을까. 거대함도, 운반기술도 놀랍지만 1000년을 견뎌온 아치형의 축조기술과 그 과학성에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앙코르 사원은 동서 길이 1.5㎞, 남북 길이 1.3㎞, 면적이 195만㎡나 된다. 해자를 건너 500여m를 들어가면 앙코르 돔이 나온다. 이 사원은 웅대한 방추형의 중앙 사당탑과 이를 호위하는 동서남북 모서리에 우뚝 선 탑이 시선을 제압한다. 원래는 이 탑이 금으로 치장됐었지만 약탈꾼들의 노략질로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참배로를 따라 들어가면 십자형으로 뻗은 익랑(翼廊)과 그것을 둘러싼 3중의 회랑을 만난다. 그 회랑 벽에는 크메르왕조의 역사가 돋을새김 그림으로 잘 나타나 있다. 크메르 신인 비슈누의 와상, 아프사라스(하늘의 무희)의 압살라 춤, 자야바르만 군대의 개선모습, 앙코르와트의 건설장면, 일곱 개의 머리가 달린 나가상 등의 부조를 통해 크메르문화의 찬란했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다.

비슈누 와상_re
힌두교 절대신인 비뉴누 와상. ⓒ문인수
압살라의 여인_re
압살라춤을 추는 여인. ⓒ문인수
개선장군_re
개선장군. ⓒ문인수
앙코르와트 건설 모습을 표현한 돋을새김 그림. ⓒ문인수

시엠립 일대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런 사원이 40여 개나 더 있다. 앙코르와트를 처음으로 세계에 알린 앙리무어는 “선과 색채 그리고 돋을새김이 잘 어울리는 중세 건축물의 백미”라고 감탄하면서 “온갖 장애와 난관을 극복하고 건조된 이 건축물의 위대성은 미켈란젤로의 예술성과도 같다”고 평했다.

하지만 약소국으로 전락한 캄보디아가 스스로 창조한 문명을 지킬 힘이 없었기에 그 문명은 정글의 은둔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상처 깊었던 내전과 베트남의 침공으로 찬란한 문화유적은 크게 훼손됐다.

앙코르와트, 그 찬란한 영화의 뒤안길엔 하나같이 머리가 잘려진 석상들만이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 도륙질 당한 앙코르돔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차라리 정글의 은둔자로 남았다면 어땠을까? 비밀의 숫자, 889년 크메르왕조 탄생, 1432년 크메르왕조 멸망, 1863년 앙리무어의 앙코르 사원 발견, 1992년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연대기는 앙코르 문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다.



전성기뉴스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지난 2015년 9월 첫 문을 열었던 <전성기뉴스>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보다 가까이에서 소통하기위해 SNS 채널을 개설, 50+를 위한 유익한 콘텐츠를 지속 제공합니다.

전성기뉴스는 2017년 12월까지 운영되며, 기존 콘텐츠는 라이나전성기재단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콘텐츠 보러가기

그동안 <전성기뉴스>를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SNS 채널에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