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스레 통통] 소통의 기본은 믿음입니다 – 전성기뉴스
콘텐츠 바로가기

top

[너스레 통통] 소통의 기본은 믿음입니다

서울 강남 8학군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오래하고 퇴직한 친구가 들려준 1990년대 이야기입니다. 1학년 첫 번째 중간고사였답니다. 어느 학생이 커닝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답안지를 빼앗겼지요. 그리고 채점을 했는데 이게 전교에서 4등을 한 겁니다. 그래서 담임 입장에서 학부모를 불렀다지요. 학생의 모친이 왔습니다.

“댁의 학생이 커닝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교 4등이 나왔습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주의를 주려고 학부모님을 뵙자고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아무튼 말썽이 생겼다니 미안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우리 아들은 결코 커닝할 학생이 아닙니다. 모든 학부모가 대부분 그렇게 말한다며 웃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들을 믿습니다. 나중에 잘잘못이 밝혀지겠지만 아무튼 누를 끼친 점은 죄송하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커닝과 관련된 어떤 단어와도 우리 애가 연관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너무나 당당한 학생 어머니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느냐며 하신 말씀이 자신을 부끄럽게 하고 선생으로서의 생각을 다시 하게끔 했다는 얘깁니다.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만에 하나 커닝을 했다고 칩시다. 커닝으로 전교 4등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공부가 뒤떨어진 학생에게 만점짜리 답안지를 주고 그대로 베껴 쓰기를 하라고 해도 그런 성적이 안 나온다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선생님은 지금껏 커닝 한 번 안 해보셨습니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 아이가 ‘만에 하나’ 커닝을 했다고 치더라도 그것 하나로 학생을 지레 나쁜 놈으로 몰아가면 선생님으로서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힐책성 질문이었답니다. 얘기를 듣고 나니 등골이 뻣뻣해지더랍니다.

 

소통하는 믿음, 믿고하는 소통

다음에 확인했더니 그 어머니 말씀이 맞았습니다. 옆의 학생이 커닝하겠다고 하도 졸라 대자 “알았다, 실컷 봐라” 하면서 자기 답안지를 옆 학생 시험지 옆으로 밀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시험 감독관이 잘못 본 결과 생긴 일이었다지요.

다음 날 학생에게 전날 어머니가 학교 다녀갔다는 얘기를 해줬답니다. 학생 또한 태평스레 말하더랍니다.

“우리 어머니 저를 완전 믿어요. 저도 물론 우리 어머니를 믿고요. 지난번 커닝 문제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약속대로 앞으로 그런 문제 생길 일이 없을 테니까요.”

어떤 가족이기에 그렇게까지 서로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이 있을까.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도대체 무엇이 자리하기에 그럴 수 있을까 부러웠고 선생으로서 자괴감까지 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어머니는 당시엔 극히 드문 박사학위 소지자로 아주 개방된 교육관을 지녔더라고 하네요. 그 학생은 반장을 몇 차례 지냈고 누구나 가장 원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에서도 제몫을 다하는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했다는군요.

얘기의 핵심은 그 학생 가족간의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것인데 결론은 가족 간의 끊임없는 대화, 곧 소통에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집에서는 말 못하는 ‘금기’사항이 없답니다. 할머니부터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누구나 의견을 터놓고 얘기하고 때로는 시끄럽게 싸우기까지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더라는 얘깁니다.

글쎄요. 믿음이 앞서야 소통이 이뤄지는지 아니면 소통이 이뤄져야 믿음이 생기는지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믿고 소통하고, 소통하고 믿으면 되지 않을까요.

믿어야 통합니다. 통해야 믿게 되지요. 그러기위해서는 상대방과 대화하고 공유하며 공감하는 시간이 많아야겠지요. 관계는 노력해야 돈독해지고 더 아름답게 유지되니까요. ⓒFreeBirdPhotos/Shutterstock
믿어야 통합니다. 통해야 믿게 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대화하고 공유하며 공감하는 시간이 많아야겠지요. 관계는 노력해야 돈독해지고 더 아름답게 유지되니까요. ⓒFreeBirdPhotos/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