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에서 서울을 여행하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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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서 서울을 여행하다

2016.01.22 · HEYDAY 작성

소설은 지어낸 얘기지만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에피소드는 결국 부정할 수 없는 시대상으로 정리됩니다. 일상적으로 접했던 흔하디흔한 서울이 작가의 눈을 거쳐 어떻게 ‘특별한 활자’가 되었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틀린 그림 찾기처럼 사진과 글을 대조해가며 바뀐 것, 여전한 것을 따져보셔도 재미있을 겁니다.

 


 

1 이혜경의 <저녁이 깊다>

문학과지성사, 2014

1995년 <길 위의 집> 이후 출간한 이혜경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주인공 기주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소설은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던 1960년대 초등학교의 풍경부터 장발 단속, 불심 검문 등이 이뤄졌던 1980년대를 지나 삼풍백화점 붕괴, IMF 등의 사건이 일어났던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죠.

“콘크리트 기둥이 위압적인 세운상가 고층에 빨래가 나부끼는 장면도 기주를 사로잡았다. 안내양의 눈총을 받아가며 뒤늦게 내린 기주는 무작정 그 건물로 향했다. 찻소리 끊이지 않고 매연 투성이인 중심가의 상가 위쪽에서 누군가가 밥을 해 먹고 몸을 뉘고 빨래를 하며 살아간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거기엔 D시에서 보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기름에 볶은 듯 윤기 흐르는 불개미 더미엔 ‘양기회복’이라고 쓰인 팻말이 꽂혀 있었다.

이 나라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외국 여배우의, 몸매에 비해 너무 커서 그 자체로 다른 생명임을 주장하는 듯한 유방이 드러난 사진 패널들도 있었고, 염료로 그린 눈에 안질을 앓는 듯 희부연 눈으로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고무인형이 섬뜩했으며, 태엽을 감으면 감긴 만큼 도르르 굴러가다 멎는 장난감 행상도 있었다.” _ 이혜경의 <저녁이 깊다> 中

현재의 세운상가
현재의 세운상가.
과거의 세운상가
과거의 세운상가.
개관식 당시의 세운상가
개관식 당시의 세운상가.

비하인드 스토리

1968년 완공된 세운상가는 1층에서 4층은 전자상가, 5층부터는 주거 공간으로 이루어진 국내 최초의 주상 복합건물이었습니다. 연예인, 고위 공직자, 대학교수 등이 앞다퉈 입주했을 정도였고,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상가를 겸해 물건을 사러 온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죠.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이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이라’는 뜻으로 세운(世運)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쇠락을 맞은 상가는 철거 사업이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구사일생, 목숨을 건져 요즘은 전시나 축제가 열리기도 하고 젊은 작가들이 작업실 삼아 모여드는 등 ‘살아날 기미’가 보인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현재 상가며 아파트 모두 실제 영업보다 창고로 이용하는 비율이 더 높지만 거주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고요, 지게로 물건을 나르거나 매점 커피를 배달하는 ‘요즘 보기 드문 광경’도 펼쳐집니다. 영화 <피에타>의 배경으로 세운상가를 택한 김기덕 감독은 “한국의 기계산업과 전자산업의 수많은 새로운 모델이 개발된 곳”이라며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곧 철거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워 영화에 담아두고 싶었다”는 말로 이곳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창고로 쓰이는 세운상가 내부
대부분 창고로 쓰이는 세운상가 내부.

세운상가5

 

2 신경숙의 <바이올렛>

문학동네, 2001
문학동네, 2001

신경숙의 네 번째 장편소설로 어린 시절 부모와 친구에게 버림 받은 여자, 오산이가 서울로 올라와 광화문의 한 화원에 취직한다는 설정입니다. 광화문이라는 번화하고 복잡한 도심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순탄치 않는 삶이 그려지죠. 바이올렛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녀가 심었던 식물이 바이올렛, 즉 제비꽃이기도 하고 ‘보라’라는 색깔을 가리키기도 하며, 수줍은 연인(바이올렛 촬영을 위해 화원을 찾았던 사진작가와 사랑에 빠짐)을 은유하는 한편, 폭력(violence)이란 단어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벤자민, 고무나무, 관음죽 등이 화원 앞 보도까지 진열되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막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걷다가도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는 커다란 화분들 속의 푸른 나무나 물통 속에 담겨 있는 석준이나 아이리스, 보랏빛 도라지 꽃들 앞에서 아, 탄식하며 걸음을 멈춘다. 세종문화회관의 주차장과 옆 벽을 마주하고 있는 이 거리에서 잠시 불현듯 만나지는 이 화원은 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자동차 소리를 잊게 해주는 장소이다.

생선초밥이나 계란말이가 두 개씩 담겨 회전되고 있는 초밥집과 빵집 파리바게뜨, 탁자가 겨우 세 개 놓인 김밥을 말아 파는 분식집과 솥 밥집, 24시간 편의점과 외국어 학원, 문구점, 사진집만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와 건물 틈새의 서점, 새로 문을 연 지중해 풍의 스파게티집들 사이에 놓여있는 화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이름을 붙인 카페가 크고 작은 상점들 속에 숨어 있는 이 복잡한 거리에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화원은 다소 이색스럽고 낭만적으로까지 보인다.” _ 신경숙의 <바이올렛> 中

바이올렛1

비하인드 스토리

소설에서 화원은 상처 많은 그녀에게 치유와 위안을 안겨주는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화원이 광화문에 실제 존재하는 방림화원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인데요, 소설 묘사 그대로 세종문화회관의 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키 큰 화환과 풍성한 꽃들이 길가를 가득 메워 아슬아슬 차도를 넘나들며 걸었던 기억이 여전한데, 1년 전 화원이 인근으로 이전하면서 현재는 텅 비어 있는 상황입니다.

직접 화원 사장님과 접촉해 소설 <바이올렛>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는데요, 많은 손님들이 ‘이 집이 소설 속 그 집 맞냐’는 질문을 해오는 통에 직접 책을 읽어봤다는 사장님은 표지에 인쇄된 신경숙의 사진을 보고서야 이 손님이 작가였구나 깨달았다고 합니다. “글쎄 한두 번 (신경숙 작가가) 오셨어요. 내가 작가다, 이 화원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다 이런 얘기는 전혀 없었지만읽어보니까 신기하더라고요.” 사장님은 소설 속 오산이처럼 지금 화원에도 플로리스트 아가씨가 있다며 웃었습니다.

화원뿐 아니라 파리바게트, 뽐도도로 스파게티, 삼전 초밥, 난 스튜디오, 봄 여름 가을 겨울 카페 등 소설에 등장했던 가게 모두 실존하는 곳들인데요, 현재 파리바게트는 배스킨라빈스로 업종이 바뀐 상태입니다. 혹시나 작가의 단골집이 아닐까 싶어 초밥집에 찾아갔으나 사장님은 잘 모르겠다는 반응입니다. 문득 ‘손님’으로 가게에 앉아 조용히 소설을 구상했을 신경숙 작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3 노희준의 <넘버>

민음사, 2012
민음사, 2012

연쇄살인범 이야기 <킬러리스트>로 제2회 문예중앙소설상을 수상했던 노희준 작가의 장편소설로, 치밀한 스토리와 생생한 묘사가 압권입니다. 기억을 이식당한 채 시체 청소부가 된 증권 브로커 김대현과 타인의 기억을 조종하는 살인 호스트의 싸움이 긴장감 있게 펼쳐지는데요, 소설은 코엑스몰로 쇼핑을 간 김대현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코엑스몰이었다. (중략) 한동안 그는 주차장 입구에 기둥의 일종으로 박혀 있었다. 앞에는 5천여 대를 동시 수용할 수 있다는 서울에서 가장 큰 지하 주차 공간이무심하게 펼쳐져 있었다. (중략) 마감을 앞둔 식품 매장은 금요일의 증권거래소를 방불케 했다. 입구의 반찬 코너에서부터 그는 허둥거렸다. (중략) 전 조리 코너에는 세계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스테이크가 십수 가지 였다. 소시지와 샐러드 종류는 셀 수도 없었다. 몇 분 만에 스시와 캘리포니아롤의 바다를 건너 아시아와 유럽 내륙을 횡단하는 동안 그의 머리와 손은 뒤바뀌어 있었다.” _  노희준의 <넘버> 中

현대백화점 식품관
현대백화점 식품관.
코엑스몰 지하 주차장
코엑스몰 지하 주차장.

비하인드 스토리

코엑스몰과 인근의 현대백화점이 묘사된 부분입니다. 소설에서는 코엑스몰 주차장에 5천여 대의 차량이 주차할 수 있다고 했지만 담당 업체가 밝힌 주차 가능 규모는 2천6백여 대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추측건대 인근 현대백화점이나 도심공항터미널의 주차장까지 합한 규모가 아닐까 싶네요. 작가는 독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코엑스몰 주차장에다 차를 주차해놓고 위치를 잃어버려 한 시간 반 동안 찾아 다닌 경험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아마도 이런 개인적인 경험이 소설 배경에 영향을 줬겠죠. 요즘 명품관보다 더 사람이 붐빈다는 백화점 식품관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습니다.

실제로 지방의 한 백화점에서 낸 통계에 따르면 폐점하기 2시간 전부터 이른바 식품관 ‘떨이 상품’이 마구 팔려나가는데 이때 매출이 하루 매출의 30~40%가량을 차지할 정도라고 합니다. 음식 종류는 또 얼마나 다양한가요. 한식, 일식, 중식은 기본, 인도, 멕시코, 독일, 프랑스 등 그야말로 ‘미식의 세계지도’가 펼쳐지죠. 도시의 일상을 예리하게 포착한 ‘작가의 시각’이 빛나는 순간입니다.

 

4 박완서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창비, 1998년
창비, 1998

박완서 작가가 ‘늙어도 사는 재미는 여전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쓴 단편집으로, 황혼 연애, 투병, 사돈과의 관계 등 노년의 화두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 단편 중 하나인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는 친정엄마의 투병 생활과 그에 얽힌 나와 오빠,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롯데월드 지하광장은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넓고 휘황하고 시끌시끌했다. 마침 성탄절을 앞둔 연말이었다. 브래지어나 팬티를 세일하는 임시매장을 슈퍼마켓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해놓고 젊은 여자들을 불러모으고 있는가 하면, (중략) 여기저기 앉을 자리도 많이 마련돼 있는데도 슈퍼로 통하는 계단에까지 사람들이 앉아서 통행에 지장을 줄 만큼 광장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 만나 잡담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우두커니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 같기도 한 사람들 사이로 뭐가 그렇게 바쁜지 신경질적으로 종종걸음을 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급류를 이루고 있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의 혼잡 속에서도 아버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_ 박완서의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中

잠실 롯데백화점 지하광장
잠실 롯데백화점 지하광장.

비하인드 스토리

1988년 개점한 잠실 롯데백화점은 2호선과 8호선이 교차하는 잠실역과 이어져 약속 장소로 제격입니다. 특히 ‘지하광장 분수대 앞’은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되기 전, 모든 만남의 시작점 같은 곳이었죠. 시간은 흘러 흘러 2015년 연말. 지하광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분수대는 작동하지 않았지만 그 앞으로 소설 속 묘사 그대로 속옷 임시매장이 눈에 띄기도 했고 코트며 패딩을 잔뜩 진열해놓고 손님을 끌어모으는 백화점 직원들도 보였습니다. 식품관 앞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점만 빼면 소설의 배경인 1998년도의 풍경과 별반 다를 게 없죠.

 

5 성석제의 <단 한 번의 연애>

휴먼앤북스, 2012
휴먼앤북스, 2012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성석제 작가의 연애소설로, 포항 구룡포의 어촌 마을에서 태어난 이세길이 어린 소년에서 청년, 중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습니다. 그에게서 유일무이한 사랑은 바로 ‘고래잡이의 딸’ 박민현인데요, 흔들림 없이 한 여자를 바라보는 이세길의 지고지순함에 조용히 감동하게 되는 잔잔한 작품입니다. 데모와 미팅으로 대변되는 1980년대 대학생들의 삶도 엿볼 수 있습니다.

“서울역 앞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수십만 명은 모인 듯했다. 광장 가운데쯤에서 누군가 연설을 하고 있었으나 잘 들리지 않았다. 계엄령을 철폐하고 독재를 타도하자, 군부의 쿠테타가 임박했다. 우리의 의지와 역량을 보여 줌으로써 그런 기도를 분쇄해야 한다는 요지의 이야기라고 했다. 이윽고 군중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종로와 을지로 등으로 행진을 하기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대학별로 이름을 적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중략) 공중에 떠 있던 국립대학의 깃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깃발을 따라 행진은 서울역 동쪽 방향으로 향했다. 도로 위의 차들은 거의 멈춰 있다시피 했다. 깃발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대열이 길어지면서 가늘어졌다. 길이 좁아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경찰이 어딘가 매복하고 있을 것 같았다.” _ 성석제의 <단 한 번의 연애> 中

현재의 서울역 광장
현재의 서울역 광장.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비하인드 스토리

1925년 일제에 의해 완공된 서울역은 처음엔 경성역사로, 이후 남대문역, 경성역 등으로 수차례 명칭이 바뀌다 1946년 광복 1주년을 맞아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으로 파괴된 적도 있었으나 지금껏 묵묵히 서울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는데요. 소설에 언급된 내용을 짐작해보면 이날은 아마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계엄령을 철폐하라며 대학생, 시민 등 10만여 명이 서울역으로 모인 1980년 5월 15일의 상황일 겁니다. 그 후로 3일 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벌어졌죠. 이렇듯 서울역 광장은 예전부터 ‘시민 목소리의 발원지’ 노릇을 했습니다.

민주노총의 쌍용차 해결 범국민대회가 열린 곳도, 좌편향 한국사 교과서 바로세우기 국민대회가 열린 곳도 모두 서울역이죠. 여기서 문득 궁금해지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왜 광화문이나 시청, 서울역 등 특정 장소에서만 집회가 열릴까요? 이는 집회나 시위는 대사관을 비롯한 외국 공관이나 학교 주위에서 열 수 없고, 상인들의 영업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식의 법률 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러 사항을 고려하면 ‘집회 장소’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기획 장혜정 사진 조항석(스튜디오 텐), 위키미디어
※ 이 기사는 <헤이데이> 20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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