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야기] 24 영화 과 렉싱턴 애비뉴 52번가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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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이야기] 24 영화 <7년만의 외출>과 렉싱턴 애비뉴 52번가

렉싱턴 52번가 지하철 환풍구. 이곳은 다른 환풍구와 똑같이 아무 표지석도 없이 평범하다. ⓒ곽용석
렉싱턴 52번가 지하철 통풍구. 이곳은 다른 통풍구와 똑같이 아무 표지석도 없이 평범하다. ⓒ곽용석

마릴린 먼로와 렉싱턴(Lexington av.) 52번가 590번지 지하철 통풍구. 1955년 개봉한 마릴린 먼로의 <7년만의 외출>을 촬영한 장소.

뉴욕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는 적지 않다. 그중 최근에 네이버가 최고의 평점을 매긴 영화들로는 <나홀로 집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비긴 어게인> <어거스트 러쉬> <세렌디피티>등이 올라 있다. 젊은 층이 뽑은 영화라서 몇몇 제목은 좀 낯설다. 좀 연도를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 장년층 세대들에게 낯익은 영화를 고르라면 <스파이더 맨> < 킹콩> 그리고 <7년만의 외출>이 생각난다.

그중 <7년만의 외출>은 마릴린 먼로가 출연한 영화로 유명해졌다. 영화의 스토리는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했지만, 마릴린 먼로가 나온 점에서 많은 점수를 따고 들어갔다. 영화의 내용보다는 제목이 우선 그럴싸해 중년층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영화는 뉴욕의 한 아파트에 사는 여성과 중년 남자가 사랑의 선을 그어 놓고 넘을까 말까 마음속으로만 고민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멋쩍은 영화이기도 하다. 설정은 뉴욕의 아파트지만 막상 시가지를 배경으로 한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시가지를 촬영한 곳은 한 곳뿐이다. 그곳이 렉싱턴가 52번지 지하철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통풍구다. 전철이 지나갈 때 나오는 바람으로 인해 마릴린 먼로의 긴 치마가 훌러덩 올라간 사진 한 장으로 더 유명한 영화. 정작 이 통풍구 촬영은 생각보다 사진 앵글이나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영화 의 주요 명장면, 마릴린 먼로와 남자 주인공 톰 이웰. ⓒ곽용석
영화 <7년만의 외출>의 명장면. 마릴린 먼로와 남자 주인공 톰 이웰. ⓒ곽용석

1954년 9, 렉싱턴 애비뉴와 52번가가 만나는 교차로의 코너에 있는 지하철 환풍구에 당시 최고의 여배우이자 인기 절정이었던 마릴린 먼로가 하늘거리는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자정을 넘긴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촬영장에는 수천 명의 구경꾼이 몰려왔고 이를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만 100여 명에 달했다.

 

그 유명한 통풍구 장면에 얽힌 이야기들​

당시 컴퓨터 그래픽이나 영화적 장치는 물론 전혀 없었다. 실제 통풍구의 바람만으로 촬영을 진행할 수밖에 없던 것. 적절한 바람과 치마가 올라가는 정도를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수많은 구경꾼들이 그녀의 치마가 올라갈 때마다 여기저기서 환호와 휘파람을 날려댔기에 촬영장을 통제하기도 여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새벽 1시에 시작된 촬영은 14번의 테이크(Take, 중간에 끊지 않고 촬영한 하나의 연속적인 화면 단위를 지칭하는 영화 용어)를 거치면서 3시간 넘게 지속됐다. 처음에 약 2000여 명이었던 구경꾼들은 소문이 퍼지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촬영이 끝나갈 새벽 4시 무렵에는 5000명의 구름 관중이 이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봤다고 한다.

녹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구경꾼들이 내는 소리가 그대로 녹음되었고 3시간에 걸친 14번의 테이크에도 불구하고 연출진은 제대로 된 장면을 잡아내지 못했다. 결국 편집 과정에서 아쉬움을 나타낸 감독의 요청으로 영화에 사용된 실제 장면은 1년이나 지난 어느 날 캘리포니아의 다른 실내 세트장에서 재촬영했다. 촉박한 개봉일자 때문에 뉴욕에서 촬영된 컷이 예고편과 포스터에 사용되기는 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 전설적인 장면은 뉴욕이 아닌 캘리포니아에서 재촬영된 장면이다.

마릴린 먼로 출연작의 여러 의상을 담당했던 윌리엄 트래빌라가 디자인한 이 화이트 드레스는 당시에는 우스운 디자인(Silly White Dress)으로 취급받았던 의상이었다. 마릴린 먼로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드레스는 당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여배우 데비 레이놀즈가 1971200달러를 주고 사들였다. 데비는 은퇴 후 자신의 영화 의상과 고전 영화의 소품을 모아 박물관을 만들려고 했지만 늘어나는 빚으로 결국 파산 직전까지 이르자, 마릴린의 화이트 드레스를 포함한 자신의 소장품들을 2011년에 경매로 내놓는다. 200달러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던 이 드레스는 460만 달러, 우리 돈으로 50억원 넘는 가격에 팔린다.

1955년에 개봉한 영화는 흥행은 그다지 생각보다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꾸준하게 사람들의 관심 속에 지금도 아련한 옛 추억을 간직하고픈 팬들을 유지하고 있는 롱테일(Long Tail) 필름이다.

지하철 통풍구가 있는 주변 건물과 도로. 구름같이 몰려든 구경꾼들은 촬영 당시 이곳쯤에서 마릴린 먼로의 촬영 장면을 보면서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곽용석
지하철 통풍구가 있는 주변 건물과 도로. 구름같이 몰려든 구경꾼들은 촬영 당시 이곳쯤에서 마릴린 먼로의 촬영 장면을 보면서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곽용석

63년이 지난 오늘 이 렉싱턴 자리는 아무 흔적도 없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사라지고, 고정되어 있는 것만 남아 있다. 통풍구 쇠창살 발판은 그간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과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주변엔 아무 표지석도 없다. 맨해튼의 거의 모든 도로가 일방통행이다. 인생처럼 한 번 가면 이쪽 길로 다시 들어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