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야기] 25 도심 속 오아시스, 브라이언트파크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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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이야기] 25 도심 속 오아시스, 브라이언트파크

1만 평이 넘는 브라이언트 파크. ⓒ곽용석
1만 평이 넘는 브라이언트파크. ⓒ곽용석

유명 스트리트 사이에 위치한 브라이언트파크

맨해튼의 최고 최대 공원은 역시 당연 센트럴파크라는 것에 누구도 토를 못 단다. 그러나 아주 효율적이고 실용적이며 땅 한 뙤기도 금쪽같이 활용하는 공원은 브라이언트파크(Bryant Park)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위치가 좋다. 5번가와 6번가 사이에 있는 데다가 42번가에 걸쳐 있는데, 이 거리는 그야말로 모든 유명한 건물과 회사와 공공기관이 놓여 있는 곳이다. 공원은 뉴욕 공공도서관과 함께 짝을 이뤄 펼쳐져 있다. 뉴욕 공공도서관이 동전의 앞면이면, 브라이언트파크는 그 뒷면이다.

브라이언트 파크의 최대 강점은 좋은 위치, 손쉬운 접근성에 있다. ⓒPaul Matthew Photography/Shutterstock
브라이언트파크의 최대 강점은 좋은 위치, 손쉬운 접근성에 있다. ⓒPaul Matthew Photography/Shutterstock

위치가 좋다 보니 뉴요커나 관광객들이 접근하기 편리하다. 42번가 양쪽 한 블록에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있다. 또한 뉴욕 구내 지하철은 10개 이상의 노선이 있다. 한두 블록, 대략 200m 정도 내에 걸어서 접근하기가 가능하다.

움직이지 못하는 부동산과 건물은 첫째 선호 기준이 위치다. 미국 대선 후보이자 최대 부동산 재벌 주인인 도널드 트럼프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 이 위치개념이다. 그의 개발 프로젝트 건물과 빌딩들은 위치에 기반을 두고 철저히 진행한다. 당연 개발만 하면 돈방석이다. 이제는 그가 개발하면 오히려 번화가가 될 정도가 되었다.

 

친근한 매력은 기본, 다양한 이벤트로 가득찬 곳

이 공원의 강력한 유인 요소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친근하다는 점이다. 오래된 수령의 나무가 우거져 있는데다가 벤치가 많다. 맨해튼 내 다른 공원도 유사하지만 벤치가 이곳보다 많은 곳을 찾기 어렵다. 유니언스퀘어나 워싱턴스퀘어 그리고 메디슨스퀘어도 아마 대중적 접근성과 안락성은 여기만 못하다. 워싱턴스퀘어는 펜스 철책이 둘려져 있고 유니언스퀘어는 전체적으로 턱이 있어 경계를 구분해 놓았다.

쉬지 않고는 못 가는 브라이언트 파크 벤치들. ⓒ곽용석
쉬지 않고는 못 가는 브라이언트파크 벤치들. ⓒ곽용석

브라이언트파크가 다른 공원들과 차별화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패션쇼다. 봄과 가을에 걸쳐 수차례 신상품을 발표하는 패션 트렌드 쇼를 펼친다. 유명 영화배우나 연기자와 패션계의 거장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일반인들이 이들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적지 않다.

바로 밑에 있는 5번가와 10번가 사이, 34번가와 40번가 사이가 ‘의류 공장 지구(Garment District)’. 이곳에 가면 의류 원단과 단추, 액세서리 등 제조 공장이 있다. 의류를 만드는 디자이너와 제품 업자들이 모여서 패션, 의류 단지를 이루고 있다. 현재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이 의류 단지 옆 브라이언트 공원의 공터를 빌려 의류 발표회를 갖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패션 트렌드 쇼의 탄생이다. 이 쇼는 봄, 여름, 가을에 열리고, 그 사이사이엔 각종 다양한 이벤트들이 펼쳐진다.

연중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는 브라이언트 파크. ⓒPri Ma/Shutterstock
연중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는 브라이언트파크. ⓒPri Ma/Shutterstock

뉴욕의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이 되면 아이스링크를 오픈한다. 잔디 공원 위에 아이스링크를 세트로 설치해 겨우내 연인들에게 환상적인 데이트 장소를 제공한다. 이 정도면 공원이라기보다 다분히 비즈니스 시설 같은 느낌이다. 워낙 유명한 공원이니 뭔들 실패하겠냐하는 생각 속에 장삿속이라는 비판은 잘 들리지 않는다.

겨울이면 개장하는 브라이언트 파크의 아이스링크. ⓒLittleny/Shutterstock
겨울이면 개장하는 브라이언트파크의 아이스링크. ⓒLittleny/Shutterstock

먼 옛날 숲이고 공터였던 브라이언트파크 변천사

원래 이곳은 공터라고 해야겠다. 언제를 원래로 기준 삼느냐에 달려 있지만, 1600년대에는 그냥 숲이었다. 인디언들이 살았던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면 수달과 비버가 살았고, 가끔 인디언들이 브로드웨이 길 옆을 지나가는 정도의 어둠침침한 늪이고 숲이었다.

1770년대 조지 워싱턴의 독립전쟁 당시엔 군부대의 야영장이었고, 1820년대에는 서민들의 공동묘지였다. 이후 1847년에 현재 뉴욕 공공도서관 자리에 상수도 보급 저수지를 만들면서 그 옆에 있던 이곳이 일반에 공개되었고, 그렇게 공원이 탄생했다. 당시 저수지의 담을 높게 만들었는데, 공원과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산책길로서 뉴욕 시민들의 인기 장소가 되었다.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어두운 늪이고 숲이었던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질 않는다. 지금은 너무나 밝고 포근한 뉴요커들의 쉼터가 되었다. ⓒCristinaMuraca/Shutterstock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어두운 늪이고 숲이었던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질 않는다. 지금은 너무나 밝고 포근한 뉴요커들의 쉼터가 되었다. ⓒCristinaMuraca/Shutterstock

1853년에는 수정궁이라는 전시장을 이곳에 건축하여 <세계산업만국만람회>를 열었다. 그러나 5년 후 그 멋지게 만들어 놓은 건축물이 15분 만에 홀라당 전소해 버려 공터가 되었다.

이후 남북전쟁 당시엔 군대 주둔지가 되었다가 1884년에서야 브라이언트파크라는 이름으로 다시 재탄생한다. 공원 이름은 브라이언트(William Cullen Bryant)라는 1800년대 후반에 실존했던 인물 이름과 같다. 그는 시인이자 변호사였고, <뉴욕이브닝포스트>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했으며, 링컨과 같은 노예해방주의자이다. 링컨도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다. 그의 공로를 기려 공원 이름을 브라이언트파크로 하였다.

 

단순하고 작은 변화를 통해 뉴요커들의 쉼터로 거듭나다

1930년대 이 공원은 재정비를 통해 거듭난다. 잔디가 관리되고 외곽에 펜스를 쳐놓아 시내와 공원을 구분하였다. 공원에 들어오면 시내의 번잡을 없애 주면서 평온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게 실수였다. 펜스가 쳐지자 몰려든 건 창녀와 거지들, 마약이었다. 점차 검은 그림자의 소굴로 변하기 시작하자 시 당국은 공원 출입을 일정 시간 금지시키고 더 높게 철책 담장을 쳤다. 공원으로서의 기능은 줄어가고 악마의 소굴로 점점 더 악화되어, 급기야 1970년대에 들어서는 두 차례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1980년대 뉴욕시는 고심 끝에 펜스를 없앤다. 당시 이 일을 담당했던 유명 건축가 윌리엄 와이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로운 이 공원은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완전히 정반대의 역할을 한다.

잔가지 없이 홀쭉하게 올라간 나무와 수많은 벤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는 공원이 되었다. ⓒAndrew F. Kazmierski/Shutterstock
잔가지 없이 홀쭉하게 올라간 나무와 수많은 벤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는 공원이 되었다. ⓒAndrew F. Kazmierski/Shutterstock

그의 말대로 새로운 바람이 일었다. 가장자리 관목과 철책을 없애고 시내와 경계를 없애는 탁 트인 공원으로 재개장했다. 시내의 흐름과 물결 그리고 시선들이 바로 연결되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곤 그 자리에 잔가지 없이 홀쭉하게 올라간 나무와 수많은 벤치를 갖다 놓았다. 바꾼 것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결과 마약과 창녀 그리고 홈리스 없는, 뉴요커와 관광객으로 가득 찬 쉼터로 바뀌었다. 거의 100년만의 과정인 셈이다. 단순하지만 혁명적이다. 물론 뉴욕의 치안 성과와 도시 개발 바람에 영향을 받은 점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선선한 날씨에 이곳에 앉아 진한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간단치 않은 과정의 결과임에 감사해야 한다. 비록 추운 겨울 차디찬 빌딩 사이 골바람에 호흡이 순간 정지하더라도, 지나가는 지친 영혼들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값어치를 느낀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