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과 다산 그리고 추사와 초의선사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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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과 다산 그리고 추사와 초의선사

봄이 온다. 모진 추위가 물러가고 벌써 봄이 오고 있다. 24절기 가운데 첫 절기인 입춘을 맞으니 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입춘이 되면 농촌에서는 보리뿌리를 캐어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데 보리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한 입춘날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서 입춘 절식으로 먹는 풍속이 있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파, 겨자, 당귀의 어린 싹으로 입춘채를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는 풍속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입춘을 기념하지는 못해도 앞 산기슭 응달의 잔설을 외면한 채 봄이 벌써 문밖에 와 있다고 느낀다면, 그런 대춘의 조바심은 분명 병이라 할 만하다.

 

남도여행, 다산초당과 대둔사의 봄

대춘의 설렘은 늘 남도 여행을 꿈꾼다. 남도, 그중에서도 강진과 해남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다산 초당과 대둔사(대흥사)가 있기 때문이다. 강진의 다산 초당에는 정약용 선생의 자취가 남아 있고 대둔사에는 초의 선사의 채취가 배어 있는가 하면 초의를 다리 삼아 추사 김정희와 남종화의 거장인 소치 허련의 흔적도 초당과 백련사, 대둔사에서 엿볼 수 있다.

전남 강진군이 새로 제작한 정약용의 영정, 안경을 쓴 모습이 이채롭다.
전남 강진군이 새로 제작한 정약용의 영정, 안경을 쓴 모습이 이채롭다. ⓒ홍수원

이들은 모두 19세기 전반에 왕성한 저술, 탐구, 예술 활동을 벌인 역사적 인물이다. 연배로 따진다면 다산이 초의보다 24살이 많아 아버지뻘이고 추사와 초의는 동년배이며 소치는 초의보다 나이가 21년 아래여서 거의 아들뻘이 된다. 그럼에도 다산은 자신을 스승으로 깍듯하게 받드는 초의를 평교인양 정중하게 대한 반면, 추사는 그리 가까이 거두지 않은 듯하다. 학문은 얕지 않으나 완당(추사)의 그 오만한 성정 때문에 거리를 둔 것이 아닐까?

10여 년 전 추사를 다룬 유홍준의 <완당평전>을 읽고 다산의 속내를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한승원의 소설 <초의>를 통해 완당의 어리광을 마냥 받아주던 한 선사의 깊고 진중한 심중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소설 <초의>에서 소치는 스승의 임종을 지킨다.

처음 그림을 가르친 초의의 천거로 완당을 찾아 그림보다는 글과 글씨를 배워 서화를 이룬 소치는 두 스승 중 완당에게 더욱 극진했다. 10년 가까운 완당의 제주 유배 생활 중 완도에서 닻을 올리는 험한 뱃길을 마다하지 않고 두 차례나 건너가 몇 달씩 스승을 봉양했다. 이런 소치가 소설처럼 초의의 임종을 지켰다면 첫 스승에게도 도리를 다한 셈이다.

대둔사 일지암에서 소치를 곁에 둔 채 설해목 꺾이는 소리를 들으며 죽음을 기다리던 초의는 문득 진묵대사의 게송, 즉 부처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를 떠올린다.

“땅에 누워 산을 베고 하늘을 덮은채(天衾地席山爲枕), 구름 병풍에 달빛 등불삼아 바닷술을 마시니(月燭雲屛海作樽), 비틀비틀 대취하여 춤추는 옷자락(大醉居然仍起舞), 옷소매 거추장스러워 곤륜산에 걸어놓으리!(却嫌長袖掛崑崙)”

산을 베고 대지위에 눕는 것 까지는 모르겠으나 하늘을 덮는다니. 아무리 게송이라 하지만 인간사가 미칠 수 없는 스케일이다. 그에 비해 달과 구름, 바닷술은 그래도 사람 냄새라도 풍긴다.

초의 선사 영정.
초의 선사 영정. ⓒ홍수원

강진의 다산초당이 정약용 선생이 글을 쓰고 가르치며 거처하던 옛집을 그대로 간직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도처에 선생의 마음 씀이 배어 있다. 게다가 추사와 초의의 발자취가 남아 있고 초의의 만년 거처인 해남 대둔사 일지암이 50리 안팎에 있으며 거대한 동백 동산을 끼고 있는 백련사가 지척이다.

1808년부터 10년 동안 정약용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수많은 책을 저술한 다산초당은 다산학의 산실이다. 낡아 허물어진 초당은 1957년에 복원되었다.
1808년부터 10년 동안 정약용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수많은 책을 저술한 다산초당은 다산학의 산실이다. 낡아 허물어진 초당은 1957년에 복원되었다. ⓒ홍수원

요즘 어느 정치인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은거한다 해서 가끔씩 뉴스거리가 되는 토굴집도 다산초당과 백련사에서 가깝다. 이런 강진과 해남이다 보니 입춘 바람에 마음은 벌써 남도로 달린다. 이제 대길(大吉)과 다경(多慶)을 기원하는 입춘축(立春祝)을 써 붙여놓고 날이 풀리는 대로 어서 강진으로 내려가 초당에서 다산과 초의, 완당, 소치의 흔적을 되새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