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프로야구, 응답하라 – 야구의 기억과 흔적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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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프로야구, 응답하라 – 야구의 기억과 흔적

올해로 한국 프로야구가 35주년을 맞이한다. 원년 당시 6개 구단으로 출발해 10구단으로 참가 팀이 늘어났다. 느슨해질 수 있는 35살쯤 초심으로 돌아가 앞으로 올 50주년을 다잡아 보고자 1982년 프로야구를 불러내 본다. 응답해, 원년 프로야구야!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렸다. ⓒ이호근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렸다. ⓒ이호근

 

한국 프로야구의 서막이 열리다

1982년 3월 27일 한국 프로야구가 첫발을 내디뎠다. 이용일 KBO(Korea Baseball Organization, 한국야구위원회) 초대 사무총장의 개회 선언과 서종철 KBO 총재의 개회사로 막을 올린 개막식은 OB 베어스의 윤동균 선수의 선서로 화려한 막이 올랐다. 개막식 전에 열린, MBC가 4000여만원을 들여 제작한 그라운드 쇼는 서울 동대문야구장을 가득 메운 3만여 관중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오프닝 쇼였다. 오후 2시 30분 전두환 대통령의 시구로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프로야구 첫 경기가 전·후기 240경기의 페넌트 레이스(pennant race)에 돌입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의 열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관광 상품으로 인기가 있었는데, ‘스포니치’ 여행사가 한화로 21만원 상당의 2박 3일 야구 투어의 상품을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 나갔다고 한다. 이 날 동대문야구장을 찾은 일본 관광객은 1200여 명이나 됐다.

원년 프로구단은 OB 베어스(이하 OB), 삼성 라이온즈(이하 삼성), MBC 청룡(이하 MBC), 해태 타이거즈(이하 해태), 롯데 자이언츠(이하 롯데), 삼미 슈퍼스타즈(이하 삼미) 등으로 6개 구단이다.

정규 시즌 1위는 80경기에 56승 24패(승률 0.700)로 OB가 차지했고, 전·후기 우승팀이 맞붙는 한국시리즈(7전 4승제)에서도 OB(전기 우승)가 삼성(후기 우승)을 상대로 4승 1패 1무로 이겨 프로야구의 첫 통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원년 우승한 OB 베어스의 김유동 선수가 MVP로 결정, 동료들로부터 환호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원년 우승한 OB 베어스의 김유동 선수가 MVP로 결정, 동료들로부터 환호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원년 프로야구의 역사적인 기록들

1982년 프로야구 주요 기록 중 첫 기록을 살펴보면, 한국 프로야구의 1호 안타는 MBC와의 경기에서 1회 초 좌전 2루타를 친 삼성 이만수 선수다. 그는 5회 초 1점 홈런을 쳐 첫 홈런 타자이자, 첫 타점을 올린 선수가 됐다. 반면 삼성 천보성 선수는 프로야구 첫 타석, 첫 아웃되는 선수로 남았다. 홈런 부문에서는 MBC 이종도 선수가 삼성 이선희 투수를 상대로 친 첫 만루 홈런은 프로야구 최초의 끝내기 홈런으로 기록됐다. MBC 백인천 선수는 아직도 경신되지 않고 있는 4할 1푼 2리의 시즌 타율(80경기)을 보유하고 있다.

당시 프로야구 개막전 입장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호근
당시 프로야구 개막전 입장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호근

투수 부문에서는 첫 승리 투수로 유종겸(MBC) 선수가, 첫 패전 투수는 이선희(삼성) 선수가 됐다. 뭐니 뭐니 해도 원년 투수하면 불사조 박철순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프로야구 첫 10승, 첫 20승 투수, 그리고 그가 세운 22연승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이다.

그럼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세운 최고의 기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원년 투수는 당연 박철순(OB)을 꼽는다. 최다 승리 투수(24승 4패), 최우수 평균 자책(1.84) 기록을 세우며 불사조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최다 탈삼진(141개)은 노상수(롯데)가 해냈고 최우수 구원(19SP)과 최다 세이브(11세이브)는 아쉽게도 얼마 전 작고하신 황규봉(삼성) 선수가 기록했다.

타자 부문에서는 당연 백인천(MBC) 선수를 당해 낼 자가 없었다. 최고 수위타자(0.412) 자리와 최다 안타(103개), 최다 득점(55점), 최고 장타율(0.740), 최고 출루율(0.502) 모두를 차지했다. 작년 NC 다이노스의 에릭 테임즈 선수를 떠올리게 된다. 최다 홈런(22개)은 해태의 김봉연 선수가 쳤고 최다 타점(69점)은 김성한(해태) 선수가 얻었다. 가장 빠른 도루왕(53개)은 김일권(해태) 선수가 기록했다.

무엇보다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 캐나다, 멕시코, 일본에 이어 5번째로 프로야구를 출범시킨 국가로 스포츠 역사에 기록되었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일정이 담긴 팸플릿. ⓒ이호근
1982년 프로야구 개막일정이 담긴 팸플릿. ⓒ이호근

 

1982년 당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잠시 세상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그 해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데, 12시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집밖을 나가지 못하게 했던 통행금지가 해제됐다. 부산에선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시내의 거리가 연기로 가득 찼다. 1982년 세계 10대 스포츠 뉴스 5위를 차지한 권투 선수 김득구 사망 사건이 선정되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프로권투 경기가 15회에서 12회로 줄었다.

또한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ET>가 상영된 해이기도 하며, KBS 1TV에서 방영된 <미래소년 코난>을 기억하는 386세대들이 많을 것이다. 나라 밖에서는 포클랜드 전쟁(남대서양의 소도인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둘러싼 영국·아르헨티나 간의 영토 분쟁)이 일어났고, 소련의 전 KGB 국장 출신인 유리 안드로포브(Yuri Andropov)가 당서기에 올랐다. 일본 소니사에서 최초의 상용 콤팩트 CD플레이어를 출시했으며,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이 히트를 쳤다.

 

다시 야구! 초심을 다지기 위한 되새김

다시 프로야구를 보자. 1982년 원년 정규시즌 MVP는 OB의 박철순, 올스타전 MVP는 롯데의 김용희, 한국시리즈 MVP는 OB의 김유동 선수가 받았다.

1982년 원년 골든글러브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투수 포수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 외야수 외야수 외야수 지명타자
황태환 김용운 김용달 차영화 김용희 오대석 김성관 양승관 김준환

 

그러나 수상자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982년 골든글러브 수상 기준은 얼마나 실책을 적게 하는가를 나타내는 수치인 ‘수비율’로만 따져서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선정했다.

관중 현황을 6개 구단 별로 집계해 보면 아래와 같다. (단위 명)

OB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MBC 청룡 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삼미 슈퍼스타즈 합계
163,822 330,467 298,051 261,182 264,295 120,951 1,438,768

 

1982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는 연예인들이 최초로 시구자로 나섰는데 1차전(부산)에서 던진 탤런트 이경진 씨가 프로야구 최초의 연예인 시구자로 기록을 남겼다. 2차전(광주)에선 정애리 씨, 3차전(서울)에서는 영화배우 정윤희 씨가 던졌다.

프로야구 원년 6개 구단의 선수단 명단이 들어 있는 페넌트들. ⓒ이호근
프로야구 원년 6개 구단의 선수단 명단이 들어 있는 페넌트들. ⓒ이호근

원년의 프로야구는 많은 사람들이 삼성 라이온즈를 가장 강팀, 가장 뛰어난 전력을 갖춘 팀이라 예측했지만 우승컵은 OB 베어스에게 돌아갔다. 프로야구는 장기 레이스다. 지금 구단별로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1년의 농사에 대비하고 있다. 호사가들의 예측도 중요하지만 선수 개개인은 물론 팀의 전력 강화로 예측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야구 역사를 남겨 보는 일이 1982년 원년 프로야구의 초심을 다시 다져 보기 위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응답하라, 1982년 프로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