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의 ‘시’자도 싫다는 며느리에게 [너스레 통통]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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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의 ‘시’자도 싫다는 며느리에게 [너스레 통통]

‘설’ 잘 쇠셨는지요.

모처럼의 명절에 혹시 고부(姑婦)간의 기 싸움 눈치 싸움에 새치가 더 늘어나진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며느리들은 ‘시’금치를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시금치에는 ‘시’댁과 같은 ‘시’자가 들어 있잖아요. 반면 나이든 시어머니들은 ‘며’루치(멸치의 경상도, 경기 지방 사투리)를 보기도 싫어합니다. ‘며’느리의 ‘며’자가 들어 있으니까요.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이어오지 않았나 싶은 이 같은 갈등이 존재하는 한 고부간의 진정한 대화나 소통은 다 헛소리에 지나지 않겠지요. 진정 방법이 없을까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건널 수 없는 강일까?

잠깐 삼천포로 빠져보겠습니다. 결혼식 주례사에 가끔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시어머니는 새로 맞이하는 며느리를 ‘딸 같이’ 생각하고 대해주라 합니다. 딸은 아니지만 딸처럼, 딸 비슷하게, 수학적 공식으로 표시하면 ‘며느리≒딸’로 대하라는 것이지요.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혹자는 며느리를 딸 같이가 아니라 ‘며느리=딸’로 대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같은 차원에서 사위는 아들이 되겠지요. 또 며느리에게 말합니다. 시어머니는 친정엄마로 생각하고 살갑게 대하면서 모시라고 말입니다.

어찌 보면 지당한 말이라 할 수도 있지만, 글쎄요 그것이 보통사람으로서 또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의구심이 듭니다. 딸이 아닌데 딸 같이 대해주라, 친정엄마가 아닌데 친정엄마처럼이 가당키나 할까 생각도 듭니다.

결국 이런 이야기는 속마음은 그렇게 될 수 없는데도 겉으로는 그런 ‘~것처럼’ 하라는 어찌 보면 가면을 쓰라고 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지요. 위선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진심이 흐르고 사랑이 배어 있는 말이 오갈 수 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며느리가 시금치는 죽어도 안 먹겠다는데 시어머니는 며루치를 맛있게 먹겠습니까?  아니지요. 그건 착각이지요.

며느리만 시가가 부담스러울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요즘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시어머니도 며느리가 그만큼 부담스럽고 힘듭니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더 할 수도 있습니다. 며루치가 보기 싫을 정도로 말입니다.

서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면 고부간의 아름다운 소통도 가능하다. ⓒaffendi shahidan/Shutterstock
서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면 고부간의 아름다운 소통도 가능하다. ⓒaffendi shahidan/Shutterstock

고부간 아름다운 소통, 가능하다

그렇다면 방법이 뭘까요. 시금치와 며루치를 진짜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그래서 서로가 정겨운 마음과 살가운 정이 뚝뚝 흐르는 대화가 이뤄질 수 없을까요.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면 됩니다.

며느리는 딸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며느리’입니다. 자기 아들의 아내인 며느리입니다. 손자, 손녀의 어미입니다. 장래 시어머니가 될 며느리로서의 입장과 위치를 존중해주는 동시에 마음을 이해해 주고 받아주면 됩니다.

‘억지 딸’로 생각하거나 만들려고 하다 보니 쓸데없는 갈등이 생기고 서로가 미워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며느리도 마찬가지지요. 시가의 장래 안방 주인이 될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현재의 며느리인 자신입니다. 무조건 싫어하거나 미워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시어머니’를 받아 들이고 이해하고 존중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은 자신을 존중하는 일이고 나아가 존경받게 되는 길입니다. 욕먹는 시가의 장래 시어머니가 될 것인지, 좋은 시집의 존경받는 시어머니가 될 것인지는 오롯이 자신이 하기 나름입니다.

어떻습니까? 말이 되지요.

그럼 지금부터 그렇게 해 봅시다. 고부간의 아름다운 소통을 위해! 그리고 정이 뚝뚝 흐르는 가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