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라진 성찰의 쉼터 ‘개인산방’과 신영복 선생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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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라진 성찰의 쉼터 ‘개인산방’과 신영복 선생

삶과 가치를 탐구하는 성찰의 쉼터  ‘개인산방’

지난 1월 중순. 신영복 선생의 부음을 듣고 문득 떠오른 것이 지금은 사라진 ‘성찰의 쉼터’ 개인산방이었다. 선생은 2003년 가을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에 있는 이 산방에 더불어숲학교를 세우고 봄과 가을 두 차례 대자연과 함께 하는 인문의 장터를 열었다.

이 장터에선 자연과 문명, 인간의 삶과 가치를 탐구하는 사색의 시간이 펼쳐지는가 하면 별빛이 넘치고 시와 음악이 흘렀다. 산과 내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란 의미의 동천(洞天)에 걸맞는 장터였다. 그러나 나는 불행하게도 이 동천에 자리잡은 개인산방을 구경하지도, 더불어숲학교에 참여해보지도 못했다. 과문한 탓으로 3년여 전까지 개인산방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하게 이 산방을 알게 되었다. 그즈음 경춘 고속도로가 동홍천까지 연장되면서 양평 집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 나들목을 벗어나 내촌면을 거쳐 인제군 상남면으로 들어서는데 한 시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시 면소재지인 상남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린천을 거슬러 개인산방이 있던 곳까지 가는데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당초 개인산방을 찾아 나선 길이 아니고 내린천을 그대로 거스르며 홍천 내면으로 들어가 살둔, 월둔을 거쳐 오대산 명개계곡으로 가서 상원사 방향으로 서너 시간 걸을 생각이었다. 이 계곡을 따라 열린 임도형 산길은 오대산 두루봉과 상왕봉 사이의 고개를 넘어 상원사까지 16km 정도 이어지는 모양인데, 보통 걸음으로 6시간쯤 걸린다고 하니 느긋한 트레킹 코스로는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갑자기 날씨가 고약해지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광원리 쪽으로 다시 되돌아 나오면서 군데군데 경관이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살피기로 했다.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그런 멋진 경관중 하나가 바로 개인산방 주변이었다. 홍천 율전리에서 인제 미산리로 들어선 뒤 얼마 안 되는 거리에 자리잡은 이 산방은 ‘미산동천(美山洞天)’이란 글자를 새겨넣은 자연석을 안내판처럼 도로변 초입에 세워놓고 있었다. 차를 도로변에 세워놓고 다리 위에서 내린천이 크게 굽이쳐 흐르는 계곡을 살펴보니 과연 그 이름대로 ‘동천’이라 할만 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곧바로 이어지는 산방의 입구에는 잘 다듬은 큼지막한 표석이 버티고 있고 그 바위에는 ‘개인산방(開仁山房)’이란 당호가 새겨져 있었다. 주변에 해발 1,341m의 개인산이 있는 줄 몰랐던 터라 ‘개인’의 의미와 ‘산방’의 성격을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맹견을 주의하라는 경고도 그렇거니와 이 정도의 다리에다, 드넓고 크게 굽이치는 내린천의 거센 물살을 막기 위해 쌓아놓은 석축의 규모로 미뤄볼 때 어느 외지인이 큰 돈 들여 주변을 가꾸고 지은 별장이려니 하는 생각이 들어 불쑥 들어가기가 민망스러웠다.

개인산방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암석과 내린천의 거센 물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란 의미의 ‘동천’은 바로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이다. ⓒ홍수원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열고 ‘개인산방’을 두드려보니, 적잖은 소개글이 나왔다. 새가 아니면 건널 수 없어 비조불통(飛鳥不通)이란 계곡명이 붙었고, 해서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케이블카 식의 삭도에 의지해 계류를 넘었으며, 미산 신남휴 선생이 힘겹게 가꾼 이 산방에서 신영복 선생과 신경림 선생이 여러 해 동안 더불어숲학교를 운용했고 그 때문에 동천 속 계류와 바람, 바위, 별빛이 가득 서린 문화장터와 인문 페스티벌이 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03년 가을부터 더불어숲학교를 통해 산방을 개방했다면 보도나 풍문을 통해 꽤 알려졌을 법 한데 그때까지 10년 가까이 그런 소식을 모르고 있었으니 내 자신이 어지간히 귀가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뒤늦게나마 개인산방을 살펴보겠다는 생각으로 일주일 뒤 내린천의 비경인 미산계곡을 다시 찾았다.

 

참 나를 찾아 떠난 나그네들의 쉼터

사실 개인산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주변 경관보다는 산방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이끌어주는 글귀 때문이었다. 산방을 소개하는 첫머리는 이렇게 열린다.

‘이곳은 묵언과 자연의 소리를 사랑하는 이, 내면의 참 나를 찾아 길 떠난 나그네들의 쉼터입니다.’  ‘머무시는 동안 고요한 성찰과 깊은 선정(禪定)에 드시기 바랍니다’ 라고 권유한 이 글귀는 다시 이렇게 부드럽고 은근한 말로 뒷마무리를 당부한다.

‘떠날 때는 흔적 없이 떠나주시기 바라며 뒤에 당도하는 이들을 위해 머무시는 동안 덜어낸 만큼 채워놓고 가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가슴에 가장 따뜻하게 닿는 것은 ‘마음이 일어나면 언제고 자유롭게 오고 가십시오’라는 말씀이다. 이런 권유와 당부를 전하는 산방 주인은 주인(主人)이 아닌, 주인(住人)이었다. 산방을 일구고 가꾼 주인 미산거사(美山居士)의 겸양이 돋보였다.

묵언과 성찰의 쉼터인 개인산방의 지향을 방문객에게 조용히 전하는 글귀. 신영복선생의 글씨체인 것으로 미뤄보아 그 내용도 신영복 선생이 지은 듯하다. ‘마음이 일어나면 언제고 자유롭게 오고 가십시오’라는 글귀가 따뜻하다. ⓒ홍수원

그러나 자유롭게 오고 가라는 산방의 개방이 과연, 참 나를 찾는 고요한 성찰과 선정으로 이어질까 하는 공연한 걱정이 앞섰다. 인터넷에 이 산방을 소개해준 많은 포스팅에도 예상처럼 이 쉼터까지 지고 온 도회지의 온갖 번잡이 넘치고 있었다. 너도나도 카메라로 담아낸 수많은 경관 사진이 그렇고 희뿌연 연기를 피어 올리는 고기 불판 모습도 여느 계곡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딜 가나, 시도 때도 없이 너도나도 꺼내드는 카메라는 이제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시류가 되어버린 것인가. 휴대전화 하나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경치 좋은 계곡에서는 번개탄이나 숯불을 피우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일상에 매몰되어 있다면 고요한 성찰이나 참 나를 찾아 나선 나그네의 마음가짐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셈이다. 이런 이들에겐 개인산방이 오히려 푸근한 쉼터가 되지 못할 것 같다.

 

이제는 사라진 성찰의 쉼터

이런 걱정과 기대를 함께 품고 일주일 뒤 다시 찾은 개인산방은 문이 닫혀 있었다. 한 해전에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관리인처럼 보이는 중년이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지고는 더 이상 응대를 하지 않았다. 산방 안쪽에는 차량 두어 대가 주차해 있고 무슨 공사가 한창 진행되는 듯 했다. 미산거사는 간데없고, 구경 한번 못한 개인산방은 본디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 이래저래 서운한 하루였다.

그래도 오랜 세월 힘겹게 가꾼 산방을 문화공간과 쉼터로 내어놓고도 主人이 아닌 住人으로 자처한 미산거사의 그 넉넉함과 겸허함을 널리 전하고 또 자연과 문명에 대한 성찰을 더불어숲학교에서 펼친 신영복선생의 그 끊임없는 탐구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