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한대수 씨가 꿈꾸는 ‘진짜 행복의 나라’는?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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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한대수 씨가 꿈꾸는 ‘진짜 행복의 나라’는?

가수 한대수 씨가 뉴욕으로 떠난 이유?

“가수 한대수 씨를 아시나요?”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 중 열에 아홉은 필경 “무식한 사람, 별걸 다 묻네”라며 정색을 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한대수’라는 이름 석 자가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새겨 놓은 족적이 워낙 뚜렷해서이지요. 1970년대 대학을 다녔던 분들의 애창곡 리스트에는 한국 포크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로 불리는 그의 대표곡 ‘행복의 나라’가 거의 단골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짙게 깔고 부르는 이 노래의 마지막 가사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는 술자리를 끝내고 일어서는 젊은이들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후렴’이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한대수 씨가 아주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한국 생활을 접고 지난해 여름, 미국 뉴욕으로 다시 이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초로의 나이에 한국으로 돌아왔던 그가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고 가족들도 적잖이 고생을 한다는 기사를 접한 게 엊그제 같은데 고국을 또 떠난다니 놀랍고 서운한 감정이 앞섭니다.

그의 나이가 올해 68세이고, 뉴욕이 물가가 훨씬 비싸 살기 벅차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그저 소프트랜딩(soft landing)해서 빠른 시간에 다른 ‘행복’을 누리기를 빌 뿐입니다.

그런데 한대수 씨가 뉴욕으로 가기로 결심한 것 자체보다 사실 그 배경에 더 시선이 갔습니다. 그의 탈(脫)한국 배경은 하나 뿐인 늦둥이 딸 ‘양호’를 뉴욕의 공립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올해 3학년이 되는 양호는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작곡에도 재능을 보이는 등 아주 영민한 어린이랍니다.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 어린 딸이 입만 열면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한답니다.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이니 ‘칭얼 대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요.

학교에 가기 싫다는 이유 중 으뜸은 ‘공부’라고 합니다. 여기를 가도 공부, 저기를 가도 공부에 내 몰리고, 주위 친구들이 영어, 중국어 과외에다 태권도, 컴퓨터는 물론이요 온갖 예술 실기까지 배우느라 정신없이 휘둘리는 것을 보면서 양호가 너무 질려 버렸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아이들을 ‘공부 기계’로 만드는 한국 교실의 분위기가 자유분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양호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 현장에 적응하기 힘들어 한 어린 딸의 고생은 차치하더라도 언론이 전한 한대수 씨의 이주 결심 설명에는 한국의 어른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 적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마음껏 놀고 인성과 인품을 올바르게 키워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죠.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즉 엠퍼시(empathy)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공부, 외우고 또 외우는 것 밖에 안 가르쳐요.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 정치적, 종교적 이슈를 두고 토론할 줄 모르는 겁니다.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쳐야 하는데 매번 ‘1+1=2’만 외우게 하잖아요.”

편의상 필자가 그대로 옮겨 놓은 한대수 씨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읽는 분들의 생각에 따라 판단은 다르겠지만 필자가 찬성표를 던진 대목은 ‘인성, 인품,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였습니다.

풀어 말하면 한대수 씨는 오로지 경쟁으로만 내모는 한국의 교육현장을 개탄하고 이런 환경에 자신의 딸을 그대로 맡겨둘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수 한대수 씨는 한국의 교육이 아이들을 ‘공부 기계’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Ellagrin/Shutterstock
가수 한대수 씨는 한국의 교육이 아이들을 ‘공부 기계’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Ellagrin/Shutterstock

‘소프트웨어’를 강조하는 일본 교육

필자도 미국 생활을 해보지 않아 뉴욕의 공립학교 사정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일본 초등학교(일본에서는 소학교라고 부릅니다)에 아들과 딸을 두루 보내 봤고, 자식들이 적응해 나가는 과정과 학교 생활을 오랫동안 지켜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국의 교실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일본 교육의 우월성을 말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 교육이 일본을 능가하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맹목적으로 바다 건너 이웃 나라의 교육이 어쩌고 저쩌고 떠들어 봤자 저만 우스운 사람이 되고 말겁니다.

필자가 겪고 지켜본 일본 소학교 교실에는 긴장감이 없었습니다. 공부도 많이 시키지 않습니다. 글로벌 경쟁의 필수 무기인 영어, 컴퓨터 등의 교육은 한국에 많이 뒤집니다. 그러나 올바른 인성, 인품 교육을 통해 길러진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협동심이 살아 있었습니다.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약속을 지켜라’는 등의 극히 기초적이고도 기본적인 약속은 교실에서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가정에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라고 몸에 배어 있는 듯 했습니다.

학생은 선생님에게 예의를 갖추고, 선생님은 학생을 사랑으로 감싸는 장면을 저는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어린이들과 운동장에서 외발 자전거를 같이 타는 모습이 저는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학예회, 음악회 등 학교 행사는 거의 하나에서 열까지 학생 자신들의 힘으로 준비하고 치르는 모습을 쭉 지켜봤습니다. 독창, 독주 대신 합창, 합주가 울려 퍼지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열린 동경한국학교의 행사와 묘한 대조를 이뤘습니다.

오사카에서 오랫동안 주재원 생활을 한 지인은 제게 이런 말을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에 견학 오는 분들은 십중팔구 겉으로 드러난 시설, 건물 등 하드웨어적인 것에 질문을 치중하는 것 같더군요. 교육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실이 어떻고 운동장이 어떻고 하는 대화를 주로 나누더란 말입니다. 사실 일본의 감춰진 힘은 하드웨어를 다루고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즉 정신과 감성에 더 많이 있는 것 같던데요.”

 

‘공부’보다 ‘바른 인성’이 먼저

어떻습니까? 가수 한대수 씨의 이야기에서 시작한 글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는지요? 이쯤에서 본심을 털어 놓자면 저는 우리의 초등학교 교실을 지금이라도 확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정은 물론이고요. 공부와 경쟁에만 매달리도록 하고, 성적이 모든 것인 양 학생들을 기계로 만드는 이런 풍토에서라면 부모와 이웃, 회사와 나라의 내일을 생각하고 젊음을 바칠 인재들이 제대로 길러질 수 있을까요? 자신의 잘못으로 고통 받을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해하고 몸을 낮추는 사람이 얼마나 나올 수 있을까요?

극단적 이기주의가 판치고, 부모가 자식을 내다 버리는 한편에서 자식이 부모를 죽음으로 모는 패륜이 예사로 들리는 오늘의 한국을 치유하는 길은 멀지 않은데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바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나라 속담을 잘 되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초등 교육의 현장부터 바로 잡고 어린이들이 따뜻하고 올바른 심성을 간직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해 준다면 언젠가는 그 성과를 반드시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참, 오늘도 우리 초로의 중년들은 손자, 손녀 뒷바라지에 많은 시간과 땀을 쏟아야겠지요. 학원으로, 유치원으로, 태권도 도장과 컴퓨터 학원으로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데리고 가고 또 맞으러 가고 말입니다.

학교 교실이 못 미덥다면 이럴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려줄 수도 있을 겁니다.

“아가야, 공부가 전부는 아니란다. 바른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단다. 허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되새겨 초등 교육의 현장부터 바로 잡고 어린이들이 따뜻하고 올바른 심성을 간직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다. ⓒZurijeta/Shutterstock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되새겨 초등 교육의 현장부터 바로 잡고 어린이들이 따뜻하고 올바른 심성을 간직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다. ⓒZurijeta/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