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시험을 치르던 경복궁 후원, 청와대가 되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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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험을 치르던 경복궁 후원, 청와대가 되다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이었던 청와대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비서실, 경호실, 영빈관, 춘추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라고 일컫는 곳이다. 이 터는 본래 고려왕조 때의 이궁(離宮)으로 건립된 곳인데, 조선 태조 때에 경복궁의 궁궐 후원(뒤뜰)으로 정하고 왕의 친경(親耕) 장소로 활용하였다.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청와대는 조선 태조 때 경복궁의 후원으로 정하고 왕의 친경 장소로 활용한 장소이다. ⓒVincent St. Thomas/Shutterstock

⟪동국여지승람⟫에 이런 글이 있다‘고려 15대 숙종 때 천재지변이 계속되고 혹심한 가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해졌다. 그래서 임금이 천도할 생각을 하고 한양 삼각산 승가사에 이르러 새로운 도읍터를 물색하라고 명했다. 윤관 등이 살펴보고 돌아와 아뢰기를 삼각산 면악 남쪽의 산 모양과 물의 형세가 옛 글에 부합하니 북쪽에 앉혀 남쪽을 향해 궁궐을 지으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 남경 궁궐의 본전인 연흥전을 지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하여 경복궁을 지음으로써 이곳이 바로 경복궁의 뒤뜰이 된 것이다. 그리고 광복 후에 경무대가 들어서고 다시 청와대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조실록⟫3년 9월 기록에 경복궁 터를 잡은 내력이 나온다.‘대궐 터를 살펴본 권중화 등은 고려 숙종 때 본 대궐 터인 연흥전은 장소가 너무 협소하고 남쪽에 보다 너른 터가 있으니 북악산을 주산으로,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건물을 짓는다면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은 대궐이 바로 경복궁이다. 이 터에 대궐을 짓기까지 2년간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리고 고려에서 천도 예정지로 삼았던 연흥전은 후원으로 삼았다. 그런데 연흥전의 서현정, 취로정, 관저정, 충순당 등 여러 전각들이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지고 말았다.

조선왕조 초기에 왕자 책정을 둘러싸고 왕자의 난이 일어난 뒤 태조가 함흥으로 낙향하고 정종이 등극했으나 곧이어 태종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의 일이다. 태종은 용좌에 앉은 뒤에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운 김덕생을 경호원으로 옆에 두었다.

김덕생은 2월 말 후원으로 갔다가 늦겨울인데 복숭아가 싱그럽게 열린 것을 보고 상서로운 일이라며 이를 따서 태종에게 바쳤다. 그런 연유로 해서 후원을 상림원이라고 불렀다.

 

명궁 김덕생의 사호사건(射虎事件)

태종은 김덕생을 대동하고 어느 날 후원으로 산책을 나가 숲속을 거닐다가 잠시 쉬고 있는데 호랑이가 태종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태종이 혼비백산할 즈음 김덕생이 날쌔게 화살을 겨눠 호랑이를 명중시키고 태종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벗어난 태종은 김덕생이 왕자의 난 때에 이어 이번에도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태종은 김덕생을 은인이 아니라 공포의 인물로 여기게 되었다. 상황이 아무리 위기라 해도 지엄하신 임금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는 것은 대역죄라는 것 때문이었다.

결국 김덕생은 임금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는 죄명으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 죄명은 명사수인 그가 임금을 시해하고 왕의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김덕생은 고려 말 무과에 급제한 후 이방원의 신임을 받았던 무장이다.

그 당시는 북악산, 인왕산 등지에서 한양 호랑이가 수시로 경복궁을 비롯해 광화문 앞이나 안국동 네거리 등 여러 곳에 수시로 나타나곤 하였다. 그래서 독립문에서 넘어가는 무악재나 경복궁에서 안국동으로 넘어가는 송현 고개, 장충단 등지에는 호랑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흔한 일이었다.

태종이 후원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호랑이를 만나자 김덕생이 화살을 겨눠 호랑이를 명중시켰다. ⓒVincent St. Thomas/Shutterstock
태종이 후원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호랑이를 만나자 김덕생이 화살을 겨눠 호랑이를 명중시켰다. ⓒVincent St. Thomas/Shutterstock

과거시험을 치르던 경복궁 후원, 청와대가 되다

경복궁 후원으로 된 연흥전에서는 과거시험 문과와 무과의 대과 알성 시험장소로 활용되었다. 조선왕조에서 벼슬을 한 문-무신 관리들 대부분이 이 광장에서 마음을 졸여가며 시험을 본 것이다.

그 역사적인 자리에 청와대를 짓기 위해 정지 작업을 하던 중에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글이 새겨진 암각 글자가 발굴되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다만 언제 누가 이 글을 새겨 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경복궁을 중건할 때 주변에서 모두 반대하는 것을 무릅쓰고 강행한 대원군이 써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었다. 그런 추측은 대원군이 경회루 주춧돌 아래에 왕궁을 세운다면 나라의 국운이 무궁할 것이라는 ‘왕궁조영 국조무궁(王宮造營國祚無窮)’이라고 쓴 옥로 잔을 묻어 우연히 출토된 것처럼 연극을 꾸몄던 데서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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