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로 귀결된 다이애너 애실의 충만한 삶 – 전성기뉴스
콘텐츠 바로가기

top

미니멀 라이프로 귀결된 다이애너 애실의 충만한 삶

다이애너 애실(Diana Athill)은 영국의 소설가이자 회고록 작가, 출판사 편집자로 올해 나이 98세, 내년 말이면 만 100세가 되는 장수 여성이다. 이 할머니를 알게 된 것은 몇 해 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실린 기사를 통해서였다. BBC가 80대에 접어든 나이에도 3권의 회고록을 연속으로 펴낸 애실의 왕성한 열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2010년 방영했던 내용을 소개한 기사였다. 그때 애실의 나이는 93세였다.

올해 98세의 영국 소설가이자 회고록 작가 겸 출판사 편집자인 다이애너 애실의 최근 모습.
올해 98세의 영국 소설가이자 회고록 작가 겸 출판사 편집자인 다이애너 애실의 최근 모습. ⓒ홍수원

거리낌 없이 털어 놓은 삶의 궤적

애실은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BBC에서 일하다 종전이 된 후 출판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친구인 안드레 도이치의 출판일을 거들다가 그의 이름을 딴 안드레도이치출판사를 만들어 이사 겸 편집자로 1993년까지 일했다. 애실은 문학전문 출판사인 안드레도이치에서 75세의 나이에 정년퇴직하기까지 무려 반세기 가까이 편집자로 근무하면서 필립 로스, 노먼 메일러, 존 업다이크, 시몬드 드 보봐르, 브라이언 무어, V. S. 나이폴, 잭 케루악, 마가렛 애드우드 같은 20세기 문단 거장들의 작품을 다듬어 출간했다.

이런 애실에게 눈길이 쏠렸던 이유는 그의 독특한 삶과 그런 삶의 궤적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은 회고록 출판 때문이었다. 15세부터 10여 년 동안 짝사랑 비슷하게 사랑을 키워온 상대가 영국 공군조종사로 한국전에 출정하면서 다른 연인이 있다며 관계를 청산하자고 통보한 뒤 그 여인과 결혼했으나 결국 한국전에서 전사하면서 이중의 깊은 상처를 받았던 일, 그 이후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많은 남성과 사랑을 나눴지만 끝내 결혼을 하지 않은 점, 70대에 접어들면서 섹스 파트너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보고 자신이 늙었음을 실감했다는 고백은 그의 근엄한 표정과 어울리지는 않아도 속내를 밝히는 그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BBC는 애실이 80대 이후에 출간한 3권의 회고록에 주목했지만 애실은 그 이전에도 말콤 X의 사촌이자 미국 블랙파워 운동의 지도자였던 하킴 자말과의 관계를 다룬 <Make Believe> 등 3권의 자서전과 회고록을 펴냈다. 그러나 BBC 다큐멘터리가 집중적으로 다룬 3권의 회고록은 83세 때인 2000년에 출간된 <Stet>와 유년시절을 회고해 2002년에 출간한 <Yesterday Morning>, 그리고 2008년에 출간해 주목을 끌었던 <Somewhere Towards the End>였다. 이중 <Stet>와 <Somewhere Towards the End>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었다.

 

나이 듦에 대한 관조

<Stet>는 애실이 75세에 50년 가까이 일했던 출판사 편집자 일에서 정년퇴직하고 7년 뒤 자신의 오랜 편집 경험과 수많은 일화를 담담하게 회고한 내용으로 2006년 <그대로 두기>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되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회고록은 <Somewhere Towards the End>였다. 이 회고록은 지난 1월 <어떻게 늙을까>라는 제목에, ‘전설적인 편집자 다이애너 애실이 전하는 노년의 꿀팁’이란 부제를 붙여 출간했다. 애실은 91세의 고령에 이 회고록을 펴내면서 노년을 어떻게 보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를 살피고 나이 듦에 대한 잔잔한 관조를 보인다.

 ⓒ뮤진트리
지난 1월 <어떻게 늙을까>로 번역되어 발간 된 다이애너 애실의 회고록. ⓒ뮤진트리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이 책을 접하면서 ‘죽음은 삶의 단절이 아닌, 삶의 일부로서 사람이 한평생 겪은 일중에서 가장 극적인 체험(dramatic event)’이라고 규정한 내용을 인상 깊게 받아들였다. 한마디로 죽음도 삶의 일부이자 그 연장이라는 의미로 느껴지는데 최근 제정된 ‘존엄사법’의 입법 취지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삶 아니면 죽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나 통념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겐 이런 규정이 선뜻 가슴에 닿지 않을 법 하다.

이 회고록의 원제인 <Somewhere Towards the End>도 나에게는 인상 깊게 느껴졌다. 통속적으로 표현하자면 ‘인생 종착역’이 멀지 않았고 지금 그 삶의 끝자락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남은 삶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위치가 바로 ‘somewhere’다. 수많은 노년이 초조와 불안, 회한과 체념 속에 가족이나 사회, 절대적 존재에 의탁하며 살아갈 터인데, 이런 이들에게 노년의 큰 고통을 작은 기쁨으로 덮고 아직 남아있는 희미한 의욕으로 애써 충만한 삶을 만들어내려는 애실의 안간힘은 적잖은 위로가 될 수 있다.

 

최소한으로 채워지는 충만한 삶

애실은 <어떻게 늙을까>를 출간한 그 다음해 ‘노인의 집(old people’s home)’으로 거처를 옮긴다. ‘노인의 집’이란 양로원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껴 스스로 붙인 명칭이다. 런던 북부에 있는 이 양로원은 동료 한사람이 먼저 들어가 여러 가지 장점을 들며 그에게 권유하는 통에 한차례 가보기는 했지만 그런 곳에 들어가면 90 평생 동안 일궈낸 폭넓은 활동 반경과 충만한 삶이 6평 남짓 되는 원룸 형태의 공간으로 한없이 쪼그라들 것 같아 외면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독감에 걸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탈진한 상태에서 이틀을 시달리다 가까운 친구 한사람이 이틀 동안 전화조차 없는 그의 동정이 궁금해 집으로 찾아갔다가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는 애실을 발견해 병원으로 옮긴 일이 있었다.

그 이후 ‘노인의 집’에 대한 애실의 인식이 바뀌었다. 평생 독신으로 산 애실로서는 곁에서 자신을 돌봐줄 가족이 없으니, 이런 양로원에서라도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문제는 1,000여 권의 장서와 옷가지, 장신구 등 온갖 살림살이를 거의 다 내버리고 원룸 생활에 알맞게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이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웰다운(Well-down) 시대의 심플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를 애실은 바로 7년 전에 ‘최소한으로 살기’의 고통을 강요당한 것이다. 비스킷을 담아놓던 은은한 색깔의 자그마한 접시 하나도 오랜 세월 손때 묻힌 정 때문에 선뜻 버리지 못하는 애실에게 1,000여권의 장서를 80여권만 남겨놓고 모두 버리거나 남에게 줘야 하는 일은 고통 그 자체였다.

결국 조카를 불러 한권씩 들어올릴 때마다 “내버려”나 “둬”로 선택을 하는 작업을 두 차례 되풀이한 끝에 간신히 가져갈 책을 고를 수 있었다. 이처럼 집착을 억누르고 고통 끝에 최소한으로 소유물과 살림을 줄이고 시작한 ‘노인의 집’ 생활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우선 일상생활과 연관된 온갖 소소한 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장 보러 다닐 일도, 전기료 납부나 빨래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버리고 난 이후의 해방감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적게 지녀 더 큰 충족감을 얻은 것이다. 이런 애실을 보면 80대의 나이에도 쉼 없는 활동으로 충만한 삶을 이어가고 온갖 집착을 끊고 많이 버림으로써 최소한의 수요에 의존하며 단순한 삶을 영위하는 전형을 보는 듯 부럽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100세를 넘기고도 여전히 꼿꼿하고 근엄한 다이애너 애실을 보고 싶다.

다이애너 애실의 삶은 집착과 소유를 버림으로써 더 큰 해방감과 충만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전형을 보여준다. (Less is more.)
다이애너 애실의 삶은 집착과 소유를 버림으로써 더 큰 해방감과 충만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전형을 보여준다. Less is more!  ⓒ Jacek Dudzinski/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