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록펠러 VS 자선의 록펠러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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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록펠러 VS 자선의 록펠러

록펠러 센터 5번가 쇼핑 센터. ⓒ곽용석
록펠러 센터 5번가 쇼핑 센터. ⓒ곽용석

맨해튼 중심부에 위치한 ‘록펠러 센터’

록펠러 센터는 맨해튼 심장부인 5번가와 6번가 사이 허리 토막인 48~51번 스트리트를 차지하고 있다. 약 3만 평의 자리에 19개의 고층 빌딩이 들어서 있다. 맨해튼 한복판에 하나의 빌딩을 세우기도 힘든데, 이렇게 비싼 땅에 거대한 빌딩 숲을 한 기업이 세운 것이다. 우리로 치면 광화문, 종로 입구 사이 정도에 어느 대기업이 63빌딩 같은 50~60층 건물 20개를 건축한 셈인데, 상상해 보자. 어떤 느낌일까. 서울시도 아니고 강남구보다 조금 넓은 맨해튼 지역 내에서라면 더욱 놀랄 만한 이야기다. 매년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에 전 세계 수만 명의 관광객들로 가득차고, 지하 가든에는 아이스링크장을 개방해 전 세계 연인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는 록펠러 센터 플라자는 익히 잘 알려진 명소다. 5번가를 끼고 있는 이 플라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상가 임대료를 차지하고 있는 고급 상점가와 바로 맞닿아 있다. 이야기거리를 찾아 내려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 소재를 가지고 있는 빌딩이다. 일반 시민에게 공개 방송을 하고 있는 라디오시티홀도 그중 하나다.

이 복합단지가 완성된 것은 1939년이다. 1930년에 시작된 사업은 10년 만인 1939년에야 완성된다. 이미 록펠러가 죽은 지 2년이 지난 후다. 본인이 이용하거나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순수한 자선, 베품의 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센터 건립이 시작된 시점은 그의 나이 90세가 된 이후였다.

록펠러 센터 메인 건물과 가든 입구 전경.  ⓒ곽용석
록펠러 센터 메인 건물과 가든 입구 전경. ⓒ곽용석

 

거부 록펠러, 자선사업에 뛰어든 이유?

록펠러는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근면 성실로 삶의 기본 토대를 다졌다. 10대 후반부터 작은 회사 경리 사원으로 일했다. 철저하고 빈틈 없는 일 처리와 절약 정신으로 일찍이 사업의 기본 토대를 완벽하게 갖추어 갔다. 미국 중부 클리블랜드에서 육류와 곡류 창고를 갖춘 소위 유통 회사를 차려 큰돈을 번 록펠러는 친구의 권유로 석유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고 ‘석유’라는 액체가 전 세계를 강타할 재료라는 걸 예상한다. 미래를 보는 혜안이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젊은 시절인 1870~1880년대 폭발적인 석유 수요로 회사는 어마어마하게 커갔다. 그는 석유와 관련된 제반 산업에 하나씩 하나씩 파고 들어갔다. 그 결과, 원유 생산 시설을 갖춘 대기업으로 바로 성장했으며, 경쟁사들을 무자비하게 사들여 회사를 없애거나 합병시켜 버리는 등 비정한 비즈니스 세계의 단면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겨 놓는다. 이후에는 철도 회사의 횡포로 석유 제품의 수급에 영향이 오자, 철도 회사까지 흡수해 버린다. 유통망 전체를 자신의 휘하에 두게 된다.

결국 석유라는 하나의 제품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 거머쥐게 된다. 채취, 가공, 유통 전 과정이 그의 손 아래에 놓이게 된다. 경쟁사도 없다. 완전 독점 공급과 유통이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달이차면 다시 기울듯 국가가 결국 나서서 손을 댔다. 1911년 그룹 해체를 요구한 것이다. 소위 반트러스트법 위반이라는 규제안을 통과시켜, 록펠러 그룹을 산산이 조각내어 수십 개의 작은 회사로 분할해 버린다. 록펠러는 그러한 분위기를 일찍이 감지했다. 그는 돈에서 이미 손을 떼었다. 그룹 해체가 되기 훨씬 전이다.

나이가 60에 이른 1890년대 그는 다른 생각을 실천한다. 바로 ‘자선사업’이다. 젊은 시절 셀 수 없는 돈이 생기면서 밤새 그가 고민한 것은 바로 그 돈을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가였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60살이 되면 사업에서 손을 떼고 돈을 잘 쓰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록펠러 센터는 ‘도시 속의 도시'로 문화 복합 공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곽용석
록펠러 센터는 ‘도시 속의 도시’로 문화 복합 공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곽용석

 

록펠러 센터에 깃든 록펠러 부자의 정신

59세가 되는 해에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그는 미련 없이 자선 사업에 몰두한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40여 년에 이른다. 반면 돈을 버는 데 투여된 시간은 40년이 채 안 된다. 자선 사업으로 보낸 기간이 더 길다. ‘비정한 록펠러’의 이미지와 ‘자선 사업가로서의 록펠러’의 이미지가 혼란스럽거나 겹치는 부분을 고민한다면(물리적인 시간으로 단순하게 보아도) 후자가 그의 이미지에 더욱 걸맞다. 록펠러의 자선 사업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바로 ‘록펠러 센터’다. 아버지 록펠러의 자선 사업을 이어 받은 아들 ‘록렐러 2세’가 건립을 진두지휘했지만, 아버지가 해 온 자선 사업의 피가 흐른 결과다.

록펠러 센터는 ‘도시 속의 도시’로 문화 복합 공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0여 개 상점과 6000석이 넘는 라디오시티홀, 7개가 넘는 NBC 방송 스튜디오, 채널 가든, 로어 플라자 등 다채로운 문화 공간을 구성해 놓은 것이다.

90세를 넘긴 말년의 록펠러는 오전 시간에 카드 놀이와 주식 투자, 골프 라운딩을 주로 한다. 노인 록펠러의 하루 일과다. 그가 죽기 전 가장 원했던 소망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100세까지 사는 것이고, 하나는 100세까지 골프를 치는 것이다. 미국 최대 거부가 바라는 것은 다름 아닌 거동하다 넘어지지 않고 매일 골프 9홀만이라도 돌았으면 하는 것이다. 록펠러 센터 가든의 구름과 같은 인파 속에 그의 흐릿한 얼굴 이미지가 떠오른다. 100세까지 살지 못한 원한의 실루엣이 록펠러 센터 위로 넘실거리는 것 같다.

록펠러 센터 업무 abc동.  ⓒ곽용석
록펠러 센터 업무 abc동. ⓒ곽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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