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의 역작 을 쓴 전택원을 만나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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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의 역작 <천년의 만남>을 쓴 전택원을 만나다

2016.03.04 · 안훈(전 여성동아 기자) 작성

전택원. 그는 철학박사이다. 그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가 철학박사여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 대단한 사람이기에 철학박사인 것이다.

대단하다는 말이 어떤 이를 말하는 데 사뭇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왜, 어떻게 혹은 무엇이 등 구체성이 없기 때문에 미흡한 언어다. 그런데 그럼 왜 그런 표현이 튀어나왔는가 하면 내 부족한 언어 능력의 문제다. 무엇이건 너무 엄청나서 표현이 어려울 때 나는 그 말을 쓰게 된다.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주역을, 박사 공부에선 심학(心學)을 했다. 심학이란 어떤 공부인가. 일반인에게는 심학이란 말조차 생경하게 들릴 수 있다.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아마도 철학이니 그런 분야가 있겠거니 그런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18년이 걸려서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천년의 만남>이다. 책 한 권을 쓰는 데 18년이 걸렸다는 데 왠지 경외심이 들었다.

어떤 책인가.

 책 표지 사진. ⓒ안훈
<천년의 만남> 책 표지 사진. ⓒ안훈

요즘 같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더구나 글줄도 모르는 이들이 툭하면 뚝딱뚝딱 책이랍시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쏟아 내놓는 세상에서, 어떤 책이기에 18년을 골몰해서 쓴 것인가.

그것이 <천년의 만남>이다. 46배판 512면의 만만찮은 양감의 책이다. 이 책은 순한 우리말로 쓴 철학서이다. 내 생각이다. 순한 우리말이라니, 반하여 사나운 혹은 조악한 우리말도 있다는 말인가. 글쎄다.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되는 이 책을 보면 위의 표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남으로써 생명과 죽음을 두 주먹으로 거머쥡니다. 오죽한 생명이며 죽음입니까. 그 지극함을 누가 대신하겠습니까. 단 한 사람, 나입니다.

마음은 나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이어지는지. 내 마음이면서 내가 모르는 그 마음에 하늘이 있습니다. 하늘과 마음이 하나인 곳에 사람이 목숨으로 자리합니다.

그는 어린 날과 청년 시절의 생생한 경험을 돌아보며 삶과 죽음을 진실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성찰한다.

 

백 년을 못 사는 인간, 천 년 속에 살다

Q. 전직이 언론인, 철학 교수를 하셨는데 퇴직 후 글을 쓰셨군요. 지난 경력을, 책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요.

네, J 신문사에 있었는데 1980년 5공 때, 언론 통폐합으로 강제 해직이 됐죠. 그리고 6.29 선언 후 다시 복직이 되는데 그것이 1989년입니다. 해직이 되었던 9년 동안 전공을 다시 공부했지요. 석사와 박사입니다. 복직된 1989년에 북경특파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북한 어린이들의 참상을 알았습니다. 남과 북의 문제가 비중 있게 느껴졌어요. 그 사이 1992년엔 한중 수교가 이루어졌죠. 그런데 다시 1990년대 중반 명퇴 바람이 불어 언론사와는 이혼을 했습니다.

Q. 전 박사님께서도 이 나라 정치 판도에 따른 언론인 수난의 역사를 고스란히 겪으셨군요. 그다음 책을 쓰셨는데 동기가 있지 싶은데요.

그렇습니다. 살면서 나는 누구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즉 근원을 찾아가 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근원을 찾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저는 그로부터 생소했던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를 알게 되고 그의 예언 속에 동학(東學)을 연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 수운의 뜻을 세상에 펼치는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을 만남으로써 분단 70년의 남과 북의 문제도 관심 있게 떠올라 파고들었습니다. 그것이 <천년의 만남>이지요.

Q. <천년의 만남>이라는 제목엔 무슨 철학적 의미가 있는 듯싶은데요. 어떤 뜻입니까?

네, 여러 가지가 함축되어 있지요. 사람의 일생은 백 년을 넘을 수 없는데 무슨 천 년이냐 하겠지만 사람이기에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지요. 도선과 최제우 그리고 해월 최시형의 만남도 천년의 연결입니다.

 

한 점 이슬에 담긴 세상

<도선비결>이라는, 혹은 동학이라는 역사 속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혹은 방대한 사실(史實)을 새로운 해석, 새로운 시각으로 그는 조명하고 있다.

초로인생(草露人生, 풀잎에 맺힌 이슬 같은 인생). 그는 <천년의 만남> 1부 ‘나는 누구인가’에서 인간, 그리고 인간살이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사람의 운명을 이슬에 비유하는 것은 이 지상에서 머무는 시간이 덧없다는 뜻도 있지만, 사람의 무한한 정신세계를 그 투명함에 견준 것이기도 합니다. 무한과 유한이 이슬방울 하나에 같이 있는 것입니다.

젊은 날 우연히 목격한 ‘한 점 이슬에 담긴 세상’ 그는 거기서 생명과 그 근원에 대해 의문을 풀어가고 ‘지난 시간의 지층 속에서 나 자신을 만남’으로써 유한한 존재인 사람이 유한을 넘어서는 것, 바로 영원의 만남이 가능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을 얘기한다.

그는 대학원에서 주역에 대해 집중적인 공부를 하였다. 주나라의 역(易)이 바로 주역이며 대략 그 역사는 3000년으로 잡고 있다. 주역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주역의 이해가 없이는 <도선비결>을 풀 수 없을 뿐 아니라 동서 두 문명의 비교 작업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은 근원을 해석하는 상징적인 부호의 체계이기 때문에 주역에 대한 기초개념 없이는 그것들의 유장한 역사와 해석이 어렵다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는 전택원과 안훈. ⓒ안훈
대화를 나누는 전택원과 안훈. ⓒ안훈

그는 ‘나는 누구인가’에 이어 2부에서는 동서 문명의 만남을 비교 해석하고 있다. 이 책의 전반부는 이 두 제제를 풀어 가는데, 심오한 철학서임에도 뛰어나게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가 그 어느 문학서적보다 우월하여 완벽한 공감을 느끼게 한다.

이로부터 그는 본격적인 ‘도선비결’과 ‘동학’에 대한 탐구로 들어선다. 이는 다음 회에 다시 살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