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부안(扶安)과 삼변(三邊) 이야기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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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부안(扶安)과 삼변(三邊) 이야기

살아서는 부안에 살으리랏다

조선조 영조 때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이 쓴 <택리지(擇里志)>에는 ‘生居扶安 死居長城(생거부안 사거장성)’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살아서는 부안에서 살고 죽어서는 장성 땅에 묻힌다’는 전래에서 나온 말이다. 부안은 그만큼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택리지>에는 비슷한 표현이 한 군데 더 나온다. ‘生居鎭川 死居龍仁(생거진천 사거용인)’이다. 진천은 우리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비옥한 터전이고 용인은 예부터 명당자리가 많기로 소문난 곳이니만큼 어울리는 표현이다.

변산반도에 위치한 전북 부안은 넓은 평야지가 있어 오곡이 풍성하고 산자락 넓은 변산이 있어 임산자원이 넉넉하며 서해바다에 연해있어 해산물 또한 모자람이 없다. 부안은 이렇듯 지형지세만 좋은 것이 아니라 멋과 맛과 풍광(扶安三樂)이 어우러지고 인심과 인정이 한 움큼씩 묻어나 비로소 이름 그대로 편안함을 누리는 부안이 된다. 부안에는 ‘송도삼절(松都三絶-박연폭포, 서경덕, 황진이)’에 못지않은 ‘부안삼절’이 있다. 직소폭포와 촌은 유희경, 여류시인 매창을 일컬음이다. 이렇듯 부안은 걸출한 문인과 묵객의 본향이었으며 지금도 많은 시류 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어머니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라고 쓴 석정 신석정은 물론, 곰소만 너머 지척인 고창에는 미당 서정주가 있어 현대 서정시를 대표한다.

부안의 드넓은 평야엔 잡념의 잡초가 자라지 않는다.
부안의 드넓은 평야엔 잡념의 잡초가 자라지 않는다. ⓒ최병요

필자가 특별히 말하고 싶은 부안은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운동이 이곳 부안의 주류성을 근거지로 3년 동안이나 이어졌으나 끝내 678년의 역사를 마감한 곳이며 6.25전쟁이 53년 휴전을 하고서도 빨치산의 끈질긴 발악으로 55년에야 최후의 잔당을 소탕한 지역이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정치적 군사적으로도 길지이자 요지였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변산은 전국 제일의 관광자원

필자는 낳고 자란 부안과 변산반도를 소개하고자 이 글을 쓴다. 그러나 잠시 지나는 길에 카메라에 담은 모습을 전하는 여타의 소개 글이 아닌, 부안 땅, 변산 골 깊숙이 똬리 틀고 있는 속살을 더듬어 드러냄으로 차이를 두고자 한다. 자못 생소한 글이 될 것이다. 힘이 닿는데 까지 연작으로 기록해 나갈 것이다.

변산은 우리나라의 다른 유명한 산만큼 수려하거나 화려하거나 또 웅장하지도 않다. 그러나 변산국립공원은 전국 유명관광자원 선정 투표에서 1등에 뽑힌 곳이다. 담담하고 소박하고 다소 수줍은 듯하지만 있어야 할 곳에 산줄기가 솟아있고 맞춤한 곳에 폭포가 있으며 유장한 역사의 절터가 있고 낙조의 장관을 연출하는 석양이 있으며 기암과 동굴을 곳곳에 감추어두고 있다. 채석강과 적벽강은 외변산의 대명사처럼 사랑받고 후박나무, 호랑가시나무 등 천연기념물은 내변산 깊숙이 발길을 묶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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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월명암 낙조대에서 바라본 낙조 모습. 필자는 이때 해가 바다에 빠지는 ‘풍덩’소리가 들렸다고 항상 주장한다. ⓒ최병요

흔히 삼변(三邊)을 얘기한다. 변산의 소나무와 야생 난초, 야생 꿀을 일컬어 변송 변난 변청이라 일컫는다. 각각 독특한 모양과 쓰임새를 갖추고 있어 이름 붙여진 삼변이다. 필자는 여기에 변설(邊雪)과 변문(邊文)을 덧붙여 오변(五邊)을 주장한다. 변산의 잦은 폭설과 변산의 정기를 닮고자했던 문인들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 일변 변송의 늠름한 자태

변산에서 자라는 소나무, ‘변송’의 특징은 곧고 잔가지가 많다는 점이다. 아름드리로 자라지만 키가 다른 육송만큼 크지 않다. 해풍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는 이로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늠름하다.

변산에서 자라는 소나무, 변송은 곧고 잔가지가 많은 아름드리로 자라지만 해풍에 시달려 다른 육송만큼 크지는 않다.
변산에서 자라는 소나무, 변송은 곧고 잔가지가 많은 아름드리로 자라지만 해풍에 시달려 다른 육송만큼 크지는 않다. ⓒ최병요

변송은 재질이 단단해서 바로 켜서 목재로 사용하기에 충분하다. 오랜 시간 건조하지 않아도 뒤틀리지 않으며 송판으로 켜놓으면 굉이가 많은 탓에 무늬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또한 벌레가 구멍을 뚫지도 못해 목재로서의 수명이 길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져 목재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자들은 변송을 ‘변재(邊材)’라고 칭했다.

내변산에 있는 내소사(來蘇寺)는 1633년에 중건하며 변송목재로 짓고 일체 단청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건재하는 것을 보면 목재로서의 그 우수성을 알만하다. (내소사는 633년에 창건되었으며 당시는 소래사였으나 나중에 내소사로 개명했다. ‘이곳에 오면 소생한다’는 뜻으로 지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대웅보전은 단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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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의 대웅보전, 단청을 하지 않은 채 500년 간 웅자를 지켜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집

필자의 고택도 소나무로 지은 지 2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변송의 이러한 품새는 비단 건재로서의 유용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라보고 벗하며 부대끼고 어우러진 부안 사람의 심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짐작이다. 오래전 작고하신 어머니께서는 소나무 뿌리 밑을 깊게 파내고 그곳에 항아리를 묻어 송근주(松根酒)를 빚어내셨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송근주의 향을 머금어서일까. 부안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심지가 굳어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무엇에든 옳지 않은 일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품성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그 때문에 더러는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걸출한 문인 묵객이 끊이지 않으며 유희경, 허균 같은 먼 타지의 사람도 자주 왕래했다는 기록만 보아도 결코 변송의 품성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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