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부안(扶安)과 삼변(三邊), 변란(邊蘭)의 무심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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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부안(扶安)과 삼변(三邊), 변란(邊蘭)의 무심

제1변 변송(邊松)을 얘기하면서 무심코 지나쳐버린 부분이 있다. 그건 소나무 숲의 울음소리다. 자연의 소리에도 삼절(三絶)이 있다. 필자가 주장하는 자연의 소리 삼절은 그 첫째가 소나무 숲의 바람소리요, 둘째가 대나무밭에 쏟아지는 싸락눈 소리, 셋째가 한가한 어촌에서 듣는 겨울밤바다의 파도소리다.

 직소폭포, 용소(龍沼),기우제,부안군청사진전
직소폭포(진서면 원암리 내소사 뒤편 소재). 용소(龍沼)라 불리는 웅덩이 밑에는 용이 살고 있다는 전설에 따라 예전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부안군청 사진공모전 작품

겨울 밤바다의 파도, 밀물의 숨소리

겨울의 어촌은 예나지나 한가롭다. 섣달 밤이 길지만 일찌감치 뜨뜻한 구들에 몸을 누이면 금세 잠에 취한다. 그러다 장지문을 할퀴는 듯한 파도소리에 단잠을 깬다. ‘쏴~와 철석 차그락, 휘이 스르르 차그락 쏴~와 철석 차그락!’ 중천에 뜬 달을 따라온 밀물의 숨소리다.

멀리 갔다가 다시 가까이 다가오는 파도소리는 나그네의 덧없는 인생회한을 부추기에 충분하다. 수십 년 전 채석강으로 유명한 격포 옆의 모항에서 밤새 들었던 파도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변산에도 대나무가 많이 자란다. 한참 남쪽의 담양이나 하동이 주산지이지만 변산의 대나무는 그리 굵지 않아도 재질이 단단해 쓸모가 참 많았다. 처마 밑에 가로로 걸어놓고 가을에 거둔 마늘이며 시래기 등을 나란히 매달아놓으면 너끈히 월동한다. 곶감 말리기에도 그만이다. 쪽을 우려낸 물감으로 색들인 세마포를 널어두는 것도 이 대나무다.

문사-선비상징-대나무병풍
부안의 문사들은 선비의 상징인 대나무를 집안 울 뒤에 병풍처럼 가꾸었다. Ⓒ최병요

대나무는 마르면서 더욱 단단해진다. 쉬이 썩지도 않아 곧은 대나무는 2~30년 씩 간직해두고 사용한다. 이 대나무가 산자락 밑, 울 뒤에 숲을 이루어 사시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는데 초겨울 해질녘 싸락눈이 바람과 함께 댓잎에 떨어지는 소리-‘차르르 슥, 차르르 슥, 차차르르 스스륵’-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듣는 듯하다. 그리고 건너 마을의 외진 방에서 밤늦게까지 글을 읽는 마음 둔 소년의 헛헛한 등짝이 생각나 스산해진다.

변산 자연의 소리 그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소나무 숲의 울음소리다. 혹 소나무 숲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처음엔 ‘우~우~’하는 소리로 들린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다리노라면 ‘휘잉~ 옹옹~’으로 바뀌고 마침내 ‘쉬이~ 쉬이~ 허엉~허엉~’으로 들려온다. 영혼을 휘감는 듯한 느낌인데 오래도록 귓가에 맴도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 뿌리를 내렸으니 이곳에서 자랄 뿐

그 바람소리, 아니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자란 탓일까. 변산의 춘란은 한이 깊은 모습이다. 그래서 무심한 모습이다. 특별히 아름답다거나 멋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보기 어렵다는 호반이나 중투(잎줄기의 색깔)는 어림도 없고 그저 밋밋하게 잎줄기를 길게 뻗은 채 양지바른 곳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변산춘란-자생춘란
양지바른 쪽 소나무 그늘에만 자생하는 변산 춘란은 투박하지만 정이 듬뿍 배어있는 모습이다. Ⓒ최병요

변란은 꽃도 향기도 그리 화사하지 않다. 이곳에 뿌리를 내렸으니 이곳에서 자란다는 식이다. 잎줄기가 곧고 길며 단단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봄볕이 따사롭게 들면 흰색과 황색과 자색이 뒤범벅된 꽃을 피우는데 꽃대도 짧고 진한 향기도 없지만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른 지역의 춘란은 채취해 도심에서 길러도 제법 모양새를 유지하지만 변란은 변산의 해풍을 떠나면 자태가 흐트러진다. 필자가 수삼 년 전 선영을 찾았다가 바로 묘소 옆에서 흐드러진 것 중, 서너 촉을 강제로 뽑아 서울에 가지고 와서 가꾸었으나 해가 두어 번 바뀌자 늠름하고 올곧던 잎줄기가 그 기세를 꺾고 흐트러졌다.

서울에서난키우기
서울로 이주한 다음 다소 완상가치를 잃었지만 그 기백은 여전하다. Ⓒ최병요

초라해진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고사가 생각났다. 회수(淮水) 남쪽에서는 귤이 열리던 나무가 회수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는 고사다. 인간이든 동식물이든 생명체가 있는 것은 환경의 지배를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남쪽 변산에서는 그렇게 꼿꼿하던 난이 서울에 와서는 뒤틀리고 꼬부라져서 서울 사람의 야박한 인심을 말해주듯 변해버렸다.

변란은 바닷가 양지바른 언덕의 소나무 숲이면 흐드러지게 자랐지만 지금은 무지한 채취꾼들의 남획으로 점차 모습을 감추어가고 있다. 변란이 또 꽃을 피울 시기가 다가왔다. 먼 고향 예전의 자태가 그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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