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등 터진 일본 속 한국인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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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싸움에 등 터진 일본 속 한국인

일본에 오래 체류한 경험이 있는 지인들과 최근 저녁 자리를 가졌습니다. 체류 기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 사이에 4~5년 정도씩 거주한 경험을 가진 게 공통점이었습니다. 2016년인 올해까지 몇 년의 빈 세월이 있기는 해도 일본 사정에, 그리고 일본 사회의 바닥 민심에 보통의 한국인들보다 훨씬 밝은 귀와 눈을 가졌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인사들이었습니다.

몇 잔 술이 돌자 이야기는 일본에 머물렀던 시절의 경험과 최근 일본 사정으로 화제가 집중됐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자면 누구나 자신이 오래 살았던 동네, 또는 도시를 나이 들수록 그리워하고, 아련한 추억 속의 한 조각으로 담아놓고 가끔 꺼내 보는 습관이 있듯 일본에 살다 온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회의 반일 정서를 의식한 나머지 대놓고 “그때는 이랬었지, 일본은 이런 게 좋았는데”라는 식의 넋두리를 늘어놓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대화 분위기가 자유로운 게 사실입니다. 어지간한 일본, 일본인 칭찬 이야기도 듣는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고 자리 또한 좀처럼 불편해지는 법이 없습니다. 때문에 ‘경험의 공유’라는 것이 이래서 무서운 것인가 하고 생각이 들 때도 적지 않습니다.

 

아카사카의 한국 술집을 덮친 혐한 폭탄

이날 대화의 하이라이트는 도쿄 한인밀집지역에 일어난 변화였습니다. 3월 초에 일본을 일주일간 다녀온 한 기업체 임원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아카사카(도쿄의 대표적 유흥가, 비교적 술값이 비싼 편에 속하면서 한때는 한국인이 주인이고 젊은 한국인 여성들이 10여 명씩 일하는 가게가 수백 개에 달할 때도 있었음)를 걷다 깜짝 놀랐습니다. 수년 전만 해도 밤거리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었던 한국인 여성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거예요. 중국말만 넘쳐 나고 간판들도 중국어로 표기된 것들이 아예 거리를 점령했더군요.”

최근 중국 아카사카에는 중국어로 표기된 간판이 넘쳐난다. ⓒYuri2010/Shutterstock
최근 중국 아카사카에는 중국어로 표기된 간판이 넘쳐난다. ⓒYuri2010/Shutterstock

하지만 한국인이 주인인 술집을 가까스로 하나 찾아갔다가 들은 이야기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카사카에 한국 술집의 씨가 마른 결정적 원인은 바로 은행 돈줄에 있었다는 겁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절하고 싹싹하게 맞아주던 거래은행 사람들이 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언젠가부터 슬금슬금 얼굴을 바꾸더니 만기 연장도 안 되고 신규 대출 문의에는 대꾸도 하지 않더랍니다. 자신은 거래 실적도 좋고 신용도도 높아 과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는데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주변에 있는 한국 술집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확 이해가 되더라는 겁니다. 돈줄이 마르고 자금융통에 당장 큰 지장이 생긴 상태에서 배겨낼 가게는 어디에도 없다는 거지요.

 

소리 없이 돈 줄 끊어버린 은행들

이어 앞의 사람보다 좀 더 오래 도쿄에 거주했던 이가 말을 보탰습니다. 이 분은 올해 초에 도쿄를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신흥 한인 밀집지역으로 각광받았던 신주쿠 일대가 거의 쑥대밭이 돼버려 깜짝 놀랐습니다. 한류 바람을 타고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골목마다 한국 음식과 음반을 파는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호떡 장사까지 한몫을 단단히 챙겼던 게 엊그제 일 같았는데, 한국 상점 간판이 싹 자취를 감춰 버린 겁니다. 딴 세상에 왔나 눈을 의심했을 정도였습니다. 혐한 시위가 단골로 벌어졌던 신오쿠보 역 근처의 쇼쿠안도리는 황량하기조차 하더라고요. 여기 역시 한국 상점이 떠난 자리를 중국인이 주인인 가게들이 몽땅 차지하고 앉아 영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일본 땅에 불어 닥친 혐한 바람이 죄 없는 교민들의 밥그릇을 박살 낸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정치가 과연 누구를 위해 있는 건가’하는 회의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혐한 기류가 거세지고 일본 땅이 살기 힘든 척박한 황무지로 변해 가면서 약 3만 명의 교민이 애써 닦은 기반을 포기한 채 도쿄에서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혐한 시위가 단골로 벌어졌던 신오쿠보 역 근처는 황량해졌다. ⓒTakamex/Shutterstock
혐한 시위가 단골로 벌어졌던 신오쿠보 역 근처는 황량해졌다. ⓒTakamex/Shutterstock

 

버르장머리 고치려다, 생업 기반 접어

제가 이 글을 써 내려 가는 목적은 별다른 게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외교가 삐걱대고 정치가 서로 날을 세우고 으르렁거릴 때면 어김없이 교민들에게 떨어지는 불똥의 한 단면을 알려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나라의 주권이 훼손당하고, 국익이 침해받고, 국가의 존엄성이 도전에 직면할 때라면 해외에 나가 있는 교민들의 생존권은 부차적 문제입니다.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있고, 조국이 자주국가로서 이웃 나라로부터 존경받을 때라야 교민들도 당당히 대접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빚어진 한·일 간의 불화와 갈등, 마찰은 정치 지도자와 관료들의 입과 오기에서 비롯된 소모전의 성격이 짙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의도적이건 아니건 지도자들이 던진 한마디가 이웃 나라 국민의 자존심과 양식에 상처를 내고 양국 간의 감정 대결로 치달은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습니다.

1990년대 초반 고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호언장담하고 난 얼마 후 일본에 나가 있는 한국의 유명 기업들은 세무조사라는 몽둥이로 한동안 정신없이 찜질을 당했다는 게 도쿄의 한국 주재원들 사이에서 너무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한·일 관계가 삐거덕대면 공항과 항만의 출입국 절차가 뻑뻑해지기 시작하고 세관 공무원들의 짐 검사 눈빛도 알게 모르게 날카로워진다는 게 오래 일본에 거주한 교민들의 전언입니다. 평소에는 못 본 척 눈감아 주던 불법체류자 단속도 횟수가 늘어나는가 하면 한국에서 들어오는 농산물 검역 시간도 전과 같지 않아진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 관계 삐거덕대면 불법체류 단속도 심해져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허풍인지 저도 정확히 가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입만 열면 ‘우호’에 툭하면 ‘공동운명’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이 어느 한순간에 으르렁대는 모습으로 돌변하고 서로 삿대질할 때마다 교민들의 가슴은 덜컹 내려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땅에서 생업의 터전을 마련해 놓고 있는 일본인들에 비해 바다 건너 일본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며 도전하는 한국 교민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더 많은 현실에서 이 같은 불균형을 바라보는 저로서는 못내 안타깝기만 할 뿐입니다.

일본 땅에서 일본인 친구를 사귀어 보거나 일본 기업과 거래를 트기 위해 노력해 보신 분들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진심을, 일본 기업의 신용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파고 들어갈수록 양파 속 같다거나 팔수록 땅속에서 더 큰 바위가 나오는 것 같다는 표현이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니라는 데도 공감하실 겁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저는 피땀 흘려 가꾼 생업 터전을 하루 아침에 날리고 빈손으로 귀국 길에 올랐을 교민들과 오지 않는 일본인 손님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졌을 상인들의 서글픈 사연에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두 나라 국민을 이토록 갈라놓고 고개를 돌리게 만든 혐한 바람이 증오가 일고, 정치 지도자들의 입과 얕은꾀가 원망스럽고 그들의 역사인식이 개탄스럽습니다.

한일관계 지도자의 소모적인 신경전은 일본 속 한국인을 절망에 빠트린다.  ⓒMattiaATH/Shutterstock
한일관계 지도자의 소모적인 신경전은 일본 속 한국인을 절망에 빠트린다. ⓒMattiaATH/Shutterstock

언론인생 후반부 논설위원 생활을 하는 동안 일본과 관련된 사설과 칼럼을 조금 썼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균형 감각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그래도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기에 우호적인 감정과 두 나라의 친선을 기대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렸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제 들은 것과 같은 암울한 소식들을 막상 접하고 보니 마음이 영 개운치 않습니다. 저는 이달 말이면 2년 만에 도쿄 땅을 밟으러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마침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입니다. 올해도 역시 도쿄의 벚꽃은 곳곳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 시내 전체를 꽃동네로 만들 것이 분명합니다. 봄기운과 새 생명이 가득 찬 도쿄의 거리를 거닐며 저는 기원해 보려 합니다. 제발 두 나라 정부가 이제부터라도 서로를 좀 더 존중하고, 양 국민들이 좀 더 가까운 이웃이 될 수 있도록 진심어린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