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국보, 법천사지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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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국보,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리고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다지만 기온과 날씨는 여전히 변덕스럽다. 겨울철 기승을 부리던 대륙성 고기압이 약해지는 대신 이동성 고기압과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면서 꽃샘추위와 따뜻한 봄 날씨가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런들 봄기운을 막을 수는 없다. 적막한 산골에 사는 탓인지, 앞산에 잔설이 남아 있음에도 초봄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운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다.

 

원주 가는 길에 발견한 국가 보물

기온이 영상 10도를 웃돌던 어느 날, 성급한 봄철 나들이로 강원도 인제 쪽 내린천으로 가볼까 아니면 원주의 토지문화관을 찾아볼까 하다가 문화관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원주에는 시내에 박경리 문학공원이 있고 흥업면 매지리에는 박경리 토지문화관이 있다. 모두 17년 전쯤에 완공된 원주의 귀한 문화시설이다.

나는 이중 박경리 선생이 자신의 대표작 <토지>에 걸맞게 만년을 흙과 더불어 살면서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공간에 세운 토지문화관에 더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지도를 펼쳐놓고 내가 사는 양평에서 고속도로나 국도 대신에 한적한 지방도를 따라 원주로 가는 코스를 살피다가 붉은 글씨로 표시된 법천사지와 지광국사현묘탑비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법천사 절터보다 탑비에 더 관심이 쏠린 것은 지도에 국보 59호라고 붉은 글씨로 표기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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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59호인 지광국사현묘탑비. 세운지 천년 가까운 장구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탑비의 명문은 아직도 선명하다. 왕사나 국사 같은 고승이 돌아가시면 업적을 기리는 탑비와 함께 탑을 만들어 유골을 봉안하는데 국보 101호인 지광국사현묘탑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나중에 반환되었으나 본래의 절터로 돌아오지 못하고 현재 경복궁내 국립고궁박물관 공터에 보존되어 있다. ©홍수원

양평에서 여주를 지나 남한강을 건너 원주로 들어가는 코스를 잡다보면 부론면 법천리의 법천사지와 흥업면 매지리의 토지문화관은 같은 방향이었는데 국보인 지광국사 탑비를 보겠다는 욕심에 토지문화관 방문을 다음으로 미뤘다. 여주 점동면에서 원주시 부론면으로 넘어가려면 칼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충북 충주시 앙성면의 북단을 가로질러 남한강을 건너야 하니, 2~3km 남짓 되는 거리를 가는데 경기와 충북, 강원의 3개도를 넘나드는 셈이다. 강을 건너면 곧바로 면소재지인 부론인데 이곳에서 법천사지까지는 얼마 안 되는 거리였다.

 

국보 제59호,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절터는 한눈에 보기에도 대단한 규모였다. 2005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466호로 지정된 이 절터의 면적은 2만여 평에 이르니, 그 규모만으로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크게 융성한 대가람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안내판을 보니, 사적지로 지정된 이후 곧바로 착수된 발굴 조사 작업이 10년째 계속되고 있다고 하니, 절터의 장대한 규모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이런 크기의 법천사라면 절의 땅을 갈고 그에 의지해 사는 사하촌(寺下村)의 규모는 또 얼마나 컸을까? 현재의 법천리 일대가 그대로 사하촌이 아니었을까?

발굴지의 전체적인 모습은 조그만 구릉지대를 에워싼 형상이다. 길을 따라 올라가보니 거대한 탑비가 한눈에 들어온다. 비석을 떠받치고 있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도 보기 드물게 크다. 길이와 폭이 각각 3m와 2m는 족히 될 것 같다. 귀두는 쭉 뽑은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있는데다, 부리부리한 눈에, 입을 딱 벌리고 있어 자못 위협적이지만 이빨이 고르고 가지런해 보여 무섭다기보다는 그로테스크한 인상이다. 비석 상단에는 증시지광국사현묘지탑비명(贈諡智光國師玄妙之塔碑銘)이라 적혀있고 그 위에는 옛 군왕의 가마 지붕과 비슷한 형태의 비머리(螭首)가 씌워져 있다.

 

지광국사탑비에 나타난 고려의 용화세계

안내판 설명으로는 고려 초기인 문종 22년, 서기 1085년에 세운 탑비였다. 왕의 스승인 왕사와 온 나라의 스승인 국사를 거친 불교계의 큰 어른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고승이 돌아가시면 탑을 세워 그 안에 유골을 모시고 그 탑 앞에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탑비를 세워 그 공을 오래도록 전한다. 국보 101호인 지광국사현묘탑은 현재 경복궁에 보존되고 있고 이곳에는 탑비만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탑비를 세운 해가 1085년이라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931년 전이다. 그런데 천년 가까운 장구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탑비의 명문은 아직도 선명하다. 더구나 비석 양옆의 돋을새김의 용 조각은 마치 최근에 새겨놓은 듯, 섬세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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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비 양옆에는 여의주를 다투는 두 마리 용의 힘찬 꿈틀거림이 돋을새김으로 섬세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되어 보는 이의 찬탄을 자아낸다. ©홍수원

안내판에는 비석의 재질이 점판암이라고 적혀 있는데 점판암이라면 구들장으로 많이 쓰인 돌이 아닌가. 점판암은 석물 문화재의 주재료인 화강암에 비하면 꽤 무른 편이어서 아름다운 문양을 정교하게 새기기에는 좋지만 돌이 갈라지거나 터지기 쉬워 오래 보존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 탑비는 빗돌 아랫부분이 약간 떨어져나간 외에는 말짱하다. 그 대신 아로새김이 쉬운 그 무른 특성이 한껏 발휘되어 여의주를 다투는 두 마리 용의 힘찬 꿈틀거림이 비석 양옆에 생생하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찬탄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무르다는데도 어떻게 아름답기 그지없는 양각의 문양들이 천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내며 이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찬연할 수 있을까!

 

찬란한 석조 문화의 깊은 울림

비석 양옆뿐만 아니라 ‘증시지광국사현묘지탑비명’을 에워싸고 있는 상단의 그림과 문양 또한 정교하고 눈부시기 그지없다. 그 속에는 용화수와 수미산, 향로를 받쳐 든 비천(飛天)처럼 불교와 연관된 상징은 물론, 세발 까마귀와 달토끼, 구름 같은 도교적 상징의 문양도 엿볼 수 있다. 원주시립박물관이 펴낸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는 그런 상징과 문양의 어우러짐을 신과 우주의 이야기로 풀이한다. 즉 도교적 상징과 미륵보살이 살고 있다는 도솔천의 아름다움이 결합된 이 그림에는 예로부터 이어져온 우주와 자연에 대한 옛사람들의 생각과 종교적 원망(願望)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광국사현묘탑비는 이름 그대로 그 자체의 현묘함과 후세의 이런 아름다운 풀이에 힘입어 우리 석조 문화재의 울림과 느낌을 한층 깊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