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터가 풍경이 된 마을, 이탈리아 친퀘테레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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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터가 풍경이 된 마을, 이탈리아 친퀘테레

나이의 무게를 느끼면 해외여행 패턴이 집중과 선택으로 바뀐다. 예전엔 여행 일정에 한 나라, 한 곳이라도 더 끼워 넣으려 했지만 결국 허욕이고 과시욕일 뿐이다. 바쁜 일정에 쫒기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된다. 여행도 가슴 떨릴 때 해야지 다리가 떨리기 시작하면 어렵다.

여장을 풀고 꾸리는 것도 힘들고 장거리 이동도 고역이다. 유적지에서 역사를 더듬는 것도 기억이 가물거린다. 지난해 동유럽여행 때 프라하를 떠나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비행기가 엔진 고장으로 모스크바공항에 불시착한 경험의 영향으로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도 불안하다. 시차적응과 피로회복도 예전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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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발밑에 거느리고 언덕 위에 층층이 들어선 형형색색의 집들은 동화 속 풍경처럼 아름답다. 이탈리아 북서부 라 스페치아 지방,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 중 한 곳인 리오마조레 마을. Ⓒ이규섭

이탈리아 친퀘테레의 동화 같은 다섯마을

30여 년 만에 다시 떠나는 유럽 여행은 이탈리아에 집중했다. 영원한 도시 로마와 폼페이는 두 번째 방문이지만 패션의 도시 밀라노,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물의 도시 베니스는 처음이다. 특히 북서부 라 스페치아 지방의 친퀘테레(Cinque Terre)는 여행의 여백을 누릴 수 있는 관광코스다. ‘친퀘테레’는 이탈리아어로 ‘다섯 개의 땅’. 해안가 다섯 곳 절벽 마을로 삶터가 곧 풍경이다.

라 스페치아 역에서 출발하는 2층 열차에 올랐다. 관광 비수기라 관광객 보다 현지인들이 많다. 주민 네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담소하는 모습이 평화롭다. 차창에 기대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도 느긋하다. 덩치 큰 개와 함께 탄 주민의 덩치도 만만찮고 덩치만큼 여유 넘치는 표정이다.

친퀘테레는 리오마조레, 마나롤라, 코니글리아, 베르나차, 몬테로소 알 마레 등 다섯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각기 다른 매력을 품은 해안 절벽마을이지만 파스텔 톤의 집과 미로처럼 좁은 골목, 동화 같은 포구는 서로 닮았다. 아름다운 마을과 절벽 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국내외 관광객이 해마다 늘고 있다.

당일치기 친퀘테레 카드를 이용해다섯 마을을 순회하는 완행열차를 타고 아무 데서나 내려 돌아볼 수 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거리는 짧게는 4㎞, 길어야 4㎞. 기차로는 2분에서 5분 거리, 도보로는 20분에서 2시간이면 거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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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터가 풍경이 된 해안가 절벽 마을 친퀘테레의 리오마조레역과 철길. Ⓒ이규섭

형형색색 펼쳐지는 아름다운 삶의 풍경

첫 번째 마을 리오마조레에서 내렸다. 짙푸른 바다와 아청빛 하늘이 맞닿은 지중해를 발밑에 거느리고 언덕 위에 층층이 들어선 형형색색의 집들은 동화 속 풍경처럼 아름답다. 한낮의 햇살은 은비늘로 부서지고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색깔도 푸르다.

마을의 중심지 콜롬보엔 비냐이오로 광장이 있고 반대쪽인 북쪽으로 올라가면 마을로 연결된다. 산비탈 길을 따라 쉬엄쉬엄 마을을 돌아본다. 아기자기한 좁은 골목마다 레스토랑과 앙증맞은 가게도 보인다. 비탈길 좁은 골목이니 차가 다닐 수 없다. 자동차의 메케한 매연과 소란한 경적이 없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포구로 발길을 돌린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들어선 집들이 아찔하지만 선명한 색깔이 안정감을 준다. 외벽을 다양한 색깔로 칠하는 건 바다로 나가 오랜 기간 고기잡이를 하다 돌아와 자기의 집을 쉽게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중해의 해풍과 뜨거운 햇살을 먹고 자란 이곳 포도로 빚은 와인은 친퀘테레와 샤케트라 두 종류. 많은 문인들이 이곳 포도주를 ‘달의 와인’이라 칭송했다기에 포구의 와인 바를 노크했더니 문이 닫혔다. 관광 성수기를 앞두고 리모델링 중이다. 선박 수리와 집 도색 등 관광객 맞이 채비가 한창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지중해를 발끝에 거느린 마을은 낯설지만 고향의 토담처럼 정겹다. 스쳐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한 계절 아무 생각 없이 머물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