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뿌리와 높이 뻗은 가지의 만남, 을 읽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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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뿌리와 높이 뻗은 가지의 만남, <천년의 만남>을 읽다

2016.03.30 · 안훈(전 여성동아 기자) 작성

‘도선비결’ ‘동학’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고 있었던가! 전택원 박사의 저서 <천년의 만남>을 읽기 전에 나는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동학에 대해서도 교과서에서 공부했던 정도의 지식이 전부였다.

전라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농민 운동, 전봉준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조 말기에 일어났던 반봉건, 반외세를 내걸고 맞서 싸운 민중항쟁, 그리고 그것은 왜군(일본군)의 개입으로 참패로 막을 내린 항쟁.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그만큼 무지하다는 것도 부끄럽고 결단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史實)이라는 점에서 더욱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랄까, 아무튼 그런 심사였다. 그런데 전택원 박사 역시 처음부터 목적의식을 갖고 이 책을 써나간 것은 아니었고, 도선비결에 끌리어 깊이 파고 들다 보니까 긴 시간에 걸쳐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묘미는 바로 그 점에 있다.

대체 도선비결은 무엇이며 또한 동학과는 어떤 연관으로 이어진 것인가. 그리고 도선비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 알기위해 먼저 도선(道詵)이 누구인가를 알아보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예언한 도선비결

도선(827~898)은 통일신라 말기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가 72세로 입적한 898년은 궁예가 신라의 30여 개 성을 빼앗아 송악에 도읍을 정한 때였다. 그러니까 신라 말기와 후삼국 시대를 거치며 난세가 이어졌던 시기였다. 15세에 출가하여 23세엔 선승(禪僧)으로서 경지에 이른 구족계를 받았고 전국을 답파했다.

도선은 36세 북한산 자락에 도선사를 지은 다음 전라남도 옥룡사에 주석하면서 전국에 그의 명성이 알려졌고 선암, 운암, 용암, 황룡사, 성불사 등 손꼽히는 여러 절을 창건, 수많은 후학을 지도했다. 고려 건국의 정신적 지주로 태조 왕건을 돕고 고려 인종 때 국사(國師)로 추증, 원효, 의상과 함께 최고의 고승으로 추앙을 받았다. 이러한 도선이 원효나 의상에 비해 지명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은 그의 도선비결이 조선왕조의 멸망을 담고 있는데서 배척당한 결과로 전택원 박사는 보고 있다.

그러면 도선비결은 대체 무엇이며 그 내용은 어떤 것일까?

먼저 도선이란 그의 도호를 풀어 보면 길 도(道), 모일 선(詵), 혹은 많을 선. 도는 진리를, 선은 서로 우러러 모시는 뜻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린 모습을 뜻한다고 보며 그것이 바로 그가 그리는 미래의 세상일 것이라고 했다.

“글자 그대로 새기면 선은 말씀 언(言) 변에 앞 선(先)입니다. 진리를 미리 말씀한다는 뜻입니다. 한반도의 명운과 관련된 예언 가운데 도선이 남긴 자취는 크게 세 번쯤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려의 개국에 앞서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며 그 진운을 열어준 것, 두 번째는 조선왕조 건국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한반도의 운명을 예언한 것입니다.”

271자의 예언,수운의 동학, 한반도운세
271자의 예언에는 수운의 동학과 그 진운, 수운 이후 격랑하는 한반도의 운세가 시기까지 표명되며 예시되고 있다. ⓒ안훈

도선비결은 모두 271자(漢字)로 되어 있는데 그것도 도선이 직접 써서 남긴 것이 아니고 구전(口傳)되던 것을 훗날 조선 민족구전 채집 때에야 제대로 쓰여 규장각에 소장된 것이라고 했다. 이 도선비결에는 ‘사람이 하늘’이라고 한 수운(水雲) 최제우를 중심으로 동학이 일어나고 동학의 진운 그리고 임진년(1592)의 임진왜란과 병자년(1636)의 병자호란(壬辰, 島夷蠢國, 可依松栢. 丙子, 北胡滿, 山不利水不利, 利於弓弓)을 예언하고 있으며(이것은 이미 역사로 드러나 모두 알고 있지만 예언을 던진 도선으로 볼 때는 왜란이나 호란은 600년 뒤 미래의 일이 아닌가!) 예언을 실현하는 주인공 수운의 죽음(1863년 관에 체포되어 다음 해 4월 순도)도 예언(至于戊申, 野有無將之卒, 城有孤立之主)했는데 수운으로부터 동학의 역사가 시작된다.

수운이 체포되기 4개월 전 모기를 장군으로 의인화한 ‘흥비가(興比歌)’를 지었다. 이 가사(歌辭)에 해월이 등장, 해월은 1861년 수운이 동학을 열자 그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는다. 수운과는 세 살 차이로 수운이 순도한 뒤에 민란, 동학운동을 주도한다. 훗날 이를 포함한 동학의 초기역사(도원기서, 道源記書)를 세세히 적은 사람이 강수(姜洙)다.

수운은 해월에게 도통을 전수한다. 그가 순도한 뒤 동학도들의 중심에 선 해월은 1862년부터 불길처럼 일어난 민란을 주도한다.

흙 한 소쿠리(그것이 무극의 도라 일컬으며 자기 몫의 삶이라 받아들이는 수명,受命) 그리하여 진리에 목숨을 바친다는 해월.

군자가 환난에 처하면 환난대로 함이 그 도요, 곤궁에 처하면 곤궁대로 함이 그 도니 우리들이 큰 환난을 지내고, 큰 화를 겪은 오늘이라, 마땅히 다시 새로운 도로써 천리의 변화에 순응할 따름이니라.
 수운과 해월은 이 길에서 통하고 범연히 환난을 맞아 소용돌이치는 민란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한다.

 

도선비결의 마지막, 남북통일

한반도의 19세기, 1801년, 신유사옥(辛酉邪獄, 서학교도 박해)으로 시작된 조선왕조는 동서 문명이 뒤섞이면서 뿌리째 흔들리고 진주, 익산, 개령, 함평을 비롯한 충청, 전라, 경상 등 민란은 전도로 퍼진다. 이어서 불어 닥친 한말 풍운으로 명성황후의 시해(藏于金壺), 그 다음이 우리가 아는 대로 1910년 국권을 빼앗긴 일 아닌가.

도선비결은 조선왕조의 이러한 몰락과 역사의 유유한 흐름을 극도의 절제된 표현으로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지나간 일이다. 그래서 역사다. 그렇다면 도선비결의 마지막은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인묘에 남북이 전쟁을 벌이고 두 나라로 쪼개져 대립한다. 이승만을 붙들어 주고 나머지 가시는 베어낸다. 나라의 틀이 갖추어진다. 남북은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어 비로소 안정된다(其當寅卯, 南北. 始形鼎峙. 扶李刈棘. 國器甫定. 一國, 是安).

도선의 예언의 시간은 드디어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남북이 분단된 지금 하나의 나라가 되어 안정된다(一國 是安)하니 통일의 시간도 멀지 않은 것 아닌가. 군사를 서쪽 변방에서 일으키니 하늘과 사람이 함께 기뻐한다. 세 이웃나라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돕는다. 한반도는 무극 대도의 진리 세계가 열린다. 유불선이 하나가 되어 진리의 문명이 자리를 잡는다(起兵西塞, 天子嘉乃. 三隣助安. 鷄龍山. 三子尊安). 도선비결은 이렇게 마친다.

 

<천년의 만남>은 예언서가 아닌 철학책이다

도선비결을 중심으로 얘기하다 보니까 이 책에 나오는 수운과 해월의 가사(歌辭)들을 소개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인데 수운의 용담유사, 불연기연(不然其然), 몽중노소문답가 등 그들은 절묘한 시가(詩歌), 혹은 시의(時議)를 드러내는 예언들을 내놓고 있다.

“무릇 예언은 구극의 진리를 던지는 것이며 당대에는 믿기 어려운 것이지만 던지는 쪽에서는 이미 선지(先知)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진리란 무엇인가로 풀어야 하는 것인데 도선비결은 동학과 수운, 한반도의 국운과 격랑을 예언하고 남북의 하나 됨을 예언하고 있지요.”

전택원 박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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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만남> 책 표지 사진. ⓒ안훈

무극대도(無極大道)의 길, 동학, 너도 가고 나도 가는, 그래서 한도 없이 큰길이지만, 그것은 신분제를 기초로 한 봉건제를 벗어나 근대사회로 진입하려는 피나는 몸부림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도선국사(827~898)와 해월(1827~1898)은 바로 천년을 격하여 생존하였다는 것. 그리고 도선사에서 외길로 이어진 봉황각(鳳凰閣)이 바로 천년의 세월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271자의 도선비결이 <천년의 만남> 이전에는 풀이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동학의 내용을 모르면 풀이가 안 되고 또 주역을 모르면 풀어지지 않는 대목이 있다고 했다. 이 책을 쓰는데 그가 그처럼 긴 시간이 걸렸던 것은 수없는 시행착오와 좌절을 거쳤기 때문인데 그는 이 책 안에서도 ‘역사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회의하고, ‘사람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사는가’ 등 본질적 접근을 수없이 시도한다. 즉 근본적으로 이 책은 철학에 근저를 둔 것이다.

이 글 모두에 나는 그가 철학박사인데 대단한 사람이라 했다. 박사에 대해서 말인데 공학박사인 나의 오라버니를 빼놓고는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그가 철학박사임을 앞세운 것은 그의 책 속에 숨은 그의 노고를, 18년이라는 시간이 왜 걸렸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언어 표현의 뛰어난 점도 함께 보아두어야 할 대목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