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한 장과 도보로 떠나는 서울 전통시장 봄나들이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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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한 장과 도보로 떠나는 서울 전통시장 봄나들이

경동시장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봄

봄소식, 봄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겨울 파커를 걸쳐야 외출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점심나절에는 셔츠 바람으로 다녀도 그다지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눈에 띄게 가벼워졌고요. 뼈만 남은 듯 앙상했던 가로수 가지에서도 푸른 잎이 ‘톡’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았다”는 말을 그저 문학 작품에서나 쓰는 ‘뻥’ 수준의 표현이려니 생각했는데 봄은 어느새 땅 밑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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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만개한 걸 알리는 벚꽃. ⓒAygul Sarvarova/Shutterstock

봄의 전령으로 우리는 흔히 남녘에서 올라오는 꽃소식을 첫 손가락에 꼽습니다. 산수유, 매화에서부터 시작해 개나리, 진달래, 벚꽃에 이르기까지 산과 들을 화려하게 수놓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언제 절정의 미를 뽐낼 것인가 또한 늘 매스컴의 주요 뉴스로 각광을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조금 색다른 각도에서 봄의 시그널과 내음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자연의 변화와 달리 서울 한복판의 시장에서 만나는 봄 세상으로 여러분들을 안내할까 합니다. 약재와 농산물, 채소 등으로 유명한 경동시장입니다.

서울 동북부지역 뿐 아니라 전역을 통틀어 규모와 취급품목에서 최대를 자랑하는 경동시장의 이름을 모르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50대 이상의 중년이나 서울 강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이라면 특히 더 그럴 것입니다. 1960년대부터 자리잡기 시작해 청량리, 용두동, 제기동 일대의 약 3만 평 부지에 펼쳐진 규모도 규모려니와 빽빽이 들어선 수천 개의 점포와 들고 나는 물동량, 그리고 모여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는 이들을 우선 압도합니다. 각종 식료품과 일상용품을 ‘땡처리’ 한다는 속칭 깡통 시장도 이 일대 한 구석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거래되는 꿀과 인삼의 4분의 3, 한약재의 3분의 2 이상이 이곳을 거쳐 간다는데 설명이 미치면 “어마어마한 곳이구나” 라는 생각에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국 팔도의 봄을 한 곳에 모으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동시장을 아주 우습게 봤습니다. 더럽고, 칙칙하고, 무질서와 바가지가 판치는 엉터리 복마전 정도로 봤습니다. 상인들에게도 믿음이 안 갔고, 취급하는 물건, 약재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그곳을 다녀왔다고 하면 “왜 마트 같이 편하고 믿을 수 있는 곳을 놔두고 엉뚱한데서 장을 보느냐”고 눈을 흘겼습니다. 제 머리에 박힌 경동시장의 선입견과 불신은 이럴 정도로 크고 높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경동시장에 시선이 꽂힌 건 불과 2년 여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봄이 살며시 우리 곁으로 다가온 이맘 때 쯤이었습니다. 아내를 따라 나선 경동시장 나들이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딘 것 같은 신선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배낭을 둘러메고 들어선 시장 안 좁은 골목길은 대지가 선사한 봄의 생명이 양 옆으로 넘쳐 나 있었습니다. 하동에서 올라왔다는 참나물, 울릉도에서 건너온 명이나물, 상주에서 자랐다는 오이와 고추, 그리고 진주산 햇 부추와 안동산 연근 및 우엉, 예천의 마, 강원도 산 취나물 등등. 이름을 다 외우기도 벅찬 전국 각지의 특산물이 저마다 봄소식을 가득 머금고 손님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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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시장에는 전국에서 모인 채소와 과일로 가득하다. ⓒNarit Jindajamorn/Shutterstock

골목길을 빠져 나와 과일 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통로로 들어서니 여기에도 봄이 사뿐히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대저토마토(일명 짭짤이)가 이제 막 부산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며 올망졸망 좌판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딸기, 참외는 물론이요, 오렌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가 좁디좁은 통로를 꽉 메우고 있나 싶었더니 사과, 배, 감 등 겨울 추위를 견뎌낸 늦가을 수확 과일들은 뒷전에서 퇴장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팔딱팔딱, 펄떡펄떡 경동시장의 봄

그랬습니다. 에너지가 느껴지고 맥박이 팔딱팔딱 뛰는 것 같았으며 사람 냄새가 전해져 왔습니다. 내게는 먼 나라 사람, 딴 세상으로 느껴졌던 시장 사람들과 시장 통이 익숙한 저의 일상으로 다가와 있었습니다. 부모를 따라 대물림으로 장사의 길에 나선 것 같은 20대 청년과 여성들의 목소리에는 내일의 희망 또한 듬뿍 담겨 있었습니다.

굳이 약재를 사러가지 않더라도 이날 이후 경동시장 장보기는 제가 일상에서 누리는 즐거움 중 거의 맨 윗부분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수천 개의 상점이 빽빽이 들어찬 시장 통로를 걸으며 저는 구석구석 쌓여있는 각종 농산물과 채소, 과일, 그리고 수산물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 맛보고,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청년 상인들의 패기 가득찬 시원한 목소리에서 펄떡대는 삶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주름 가득 패인 노점상들의 얼굴과 손놀림에서는 어려움과 맞서 싸운 용기와 인내를 배우고 또 제 가슴 속으로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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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면 주름 가득 패인 상인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Takashi Images/Shutterstock

단언컨대 저만이 간직하고, 남몰래 키워 온 즐거움입니다. 우리가 봄을 맞이하고, 봄의 은총과 하나 되는 방법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꽃 소식을 따라 먼 길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 하나요, 자연 속에 빠져들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맡기는 것 또한 그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자신의 호주머니 사정에 맞춰 즐기고 맞이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경동시장에서 봄을 맞고 친구가 되고 같이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나름의 이러한 봄나들이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오래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한번 쯤 들러 보지 않으시렵니까? 대중교통 요금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걸어가면 건강에 더욱 좋습니다.

만 원짜리 한 장만 손에 있어도 눈요기 실컷 하며 제법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먼저 봄기운을 만날 수 있고 새 생명들이 전하는 에너지를 듬뿍 받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더 큰 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래저래 경동시장은 꽃띠 중년들의 봄나들이 코스로 ‘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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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꽃띠 중년들의 봄나들이 코스로 ‘딱’이다. ⓒqingqing/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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