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뼈아픈 흔적과 슈바이처를 찾아 떠난 아프리카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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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뼈아픈 흔적과 슈바이처를 찾아 떠난 아프리카

아프리카에는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 유럽과 미국 등으로 팔리던 뼈아픈 흔적들이 남아있다. 이런 슬픈 역사를 가진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 1  아프리카는 검은 대륙이었다

1982년 3월 취재팀이 거리를 지난다. 아이들이 뒤 따른다. 눈이 마주치면 우리를 놀리는 몸동작을 한다.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가리키며 작고 옆으로 째졌다고 표현한다. 그 아이들 눈엔 다 검은데 왜 너희들만 피부색이 다르냐고 묻는 듯하다. 그렇다. 우리 취재팀만이 피부색깔이 달랐다. 아이들은 아마도 처음 보는 사람들, 이상한 사람들로 신기했으리라 생각했다. 필자가 한국 전쟁 때 외국인을 처음 봤을 때처럼.

 

# 2  아프리카에서 한국 시청자를 울린 ‘뿌리’를 찾으러 가다

드라마 ‘뿌리’는 작가의 7대조 할아버지가 1767년 아프리카의 감비아에서 노예로 잡혀 미국으로 팔려온 후 온갖 박해를 견디며 살아온 이야기를 소설로 발표(1976년)했고 이 소설을 TV용 12부작 미니 시리즈로 제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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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노예의 삶을 다룬 드라마 <뿌리>의 한 장면. ©황성규

1977년 2월, 미국 ABC 방송은 파격적인 편성을 한다. 12부작 미니시리즈를 8일 만에 12시간분량을 연속으로 방송하는 특별 편성을 한 것이다. 이렇게 미니시리즈 ‘뿌리’가 방송된 후 미국인들은 TV 앞에서 한동안 떠날 줄을 몰랐다. 미국인들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미국 전체가 ‘뿌리’에 미쳤다. 콘서트가 취소되고 식당에는 손님이 없었다. 술집은 문을 닫거나 스포츠 대신 이 드라마를 방송했다. 9개의 에미상을 받았다. 퓰리처상도 받았다.

한국에서도 ‘뿌리’ 미니시리즈가 한국어로 더빙되어 방송되었다. 흑인도 아닌 우리는 왜 그렇게 감명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이런 궁금증에 취재팀은 드라마 주인공 쿤타킨테가 1750년 태어난 서아프리카의 감비아에 만딩고 족이 살고 있는 주푸레 마을을 찾아 그 현장을 취재하기로 했다.

세네갈에 도착한 후, 제일 먼저 ‘뿌리’의 뿌리를 찾는 취재를 시작했다. 먼저 감비아는 세네갈 안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다. 세네갈 다카에서 육로로 반줄까지 가서 쿤타킨테의 고향 주푸레 마을까지 가는 오지탐험 일정이다. 4륜구동 차량 지프 2대와 통역 그리고 무장 안내원까지 동행이다. 이른 새벽,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하여 점심때가 지나 주푸레 마을에 도착 했다.

주인공 쿤타킨테는 이 마을에서 4남 중 막내로 1750년에 태어났다. 그가 16살이 되던 해 나무를 구하러 마을 인근 숲에 갔다가 노예사냥꾼이 던진 그물에 잡히고 말았다. 이 마을의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다. 마을을 스케치하고 가족이라 자칭하는 이들을 인터뷰하고 그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계속 차를 달려 한밤중에 다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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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아는 세네갈 안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다. ©황성규

 

# 3  세네갈에는 노예 섬이 있었다

사냥꾼에 잡힌 쿤타킨테는 세네갈의 노리라는 섬 감옥에 갇힌다. 이 감옥에서 다른 곳에서 잡혀온 많은 이들과 분류되어 매매가 되어 미국 땅으로 긴 항해를 시작한다. 그 흔적들을 구석구석 촬영했다.

그 쿤타킨테가 미국에 도착하여 살아 온 이야기가 7대손인 알렉스 헤일리가 10년 넘게 추적하여 사실적인 다큐소설로 발표한 것이다. 이 섬을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방문하여 아픈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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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섬으로 알려진 세네갈의 노리섬. ©황성규
2013년 6월, 세네갈 노예(교역) 섬,미국 오바마 대통령
2013년 6월, 세네갈 노예(교역) 섬에 참관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 ©황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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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집(감옥)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 ©황성규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단어 ‘슈바이처’. 우리는 아프리카 가봉에서 희생하며 살았던 슈바이처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봉은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나라다. 봉고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세 번씩이나 방문 했기 때문이다.

 

# 4  랑바레네, 슈바이처 병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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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바레네에 위치한 슈바이처 병원. ©황성규

우리에게 친숙한 가봉 공화국 대통령 실은 취재팀에게 대통령 전용기를 내주었다. 소형 전용기는 병원 바로 옆 비행장까지 우리를 실어다 주고 대기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사회 활동가인 아내와 함께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후에 가봉 공화국)의 오고우에 강변의 랑바레네에 1914년 정착, 의료 봉사활동을 시작한다. 그가 없는 현장을 취재팀은 구석구석 촬영을 한다. 곳곳에 그의 흔적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왜 아프리카를 택한 것인가? 그 첫 번째 원인은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많은 죄 그 죄를 속죄하고자 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또 문명이 인간을 비인간화 시키는 것을 거부하는 의미도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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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왜 아프리카를 택한 것인가? 그 첫 번째 원인은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많은 죄 그 죄를 속죄하고자 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황성규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독일에서 1875년 1월 14일 출생하여 프랑스로 국적을 바꾸었으며 1899년에 철학박사를, 1900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1905년 아프리카를 다녀온 선교사로부터 아프리카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의사라는 말을 듣고 의학 공부를 시작해 1913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 다음해 아프리카로 간 것이다.

그 후, 박사는 제1차 세계대전에 휩싸여 포로수용소 생활 후 다시 1924년 랑바레네로 돌아가 의료 봉사 활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1965년 9월 4일 자신이 세운 랑바레네의 한 병실에서 52년간의 봉사활동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