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으로 휴민트 만들기 [8090 기자수첩]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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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으로 휴민트 만들기 [8090 기자수첩]

 주간신문. Ⓒ남혜경
출입처 기자단에 속하지 않고 독자로 뛰는 주간지 기자들은 각자의 휴민트를 최대한 가동하는 취재를 한다. Ⓒ남혜경

소스를 어디서 얻느냐가 기자 능력의 바로미터

기자들에게는 정치부는 국회와 각 정당, 사회부는 검찰과 경찰, 경제부는 기업 등의 대표적인 출입처가 있다. 온라인을 포함해서 매체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아지고 정보를 얻을 채널도 다양해져 지금은 출입처 기자단의 힘이 약해졌지만 그 시절 기자단의 배타적인 카르텔은 무척 공고했고 거기를 통하지 않고는 취재 소스를 얻기가 어려웠다.

종합일간지와 경제지, 방송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기자단에 들어갈 수 없는 주간신문이나 잡지들은 보통 일간지와 방송에 보도된 뉴스를 바탕으로 심층취재를 하거나 그들이 놓치거나 관심을 주지 않는 뒷이야기들로 승부를 한다. 90년대 중반까지 일했던 <일요신문>은 사건의 내막이나 정치 비화, 일반 취재에 응하지 않는 인물 인터뷰 등으로 틈새를 파고들어 인기를 얻고 있었다. 신문 가판대에서 화려한 헤드라인으로 눈길을 끄는 타블로이드 주간신문의 효시였다고 할 수 있다. 선정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정치적 입장보다는 가판대에서 돈을 내고 집어 드는 신문을 편집방향으로 하는지라 신선한 기사가 많았고 독자들의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출입처에서 브리핑을 듣거나 보도자료를 우선으로 받는 기자단 기자들과 달리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주간신문에서는 정보 소스를 어디서 얻느냐가 기자들의 능력을 보여주는 난제였다.

노트에 필기하는 사람. ⓒRihardzz/Shutterstock
출입처에서 브리핑을 듣거나 보도자료를 우선으로 받는 기자들과 달리 주간신문은 맨땅에 헤딩하듯 소스를 얻어야 한다. ⓒRihardzz/Shutterstock

그들에게야 말로 휴민트가 가장 큰 자산인데 말이 좋아 휴민트이지, 처음 시작하는 기자에게는 맨땅에 헤딩이나 마찬가지다. 처음 주간신문으로 갔을 때, 어디서 오라는 데도 없고 알아서 보도자료를 보내주는 데도 없는데 매주 그럴 듯한 기획안을 내놓고 완성된 기사를 써내는 그들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실제 그 당시 <일요신문>에는 나중 국회나 대기업, 메이저 언론사 등으로 스카우트된 유능한 기자들이 많았다.

 

고참 경찰출입 기자와 일선 형사들로 시작한 나의 휴민트

그들의 휴민트는, 지연과 학연 등을 총 동원하여 일선 형사나 검사, 국회의원 보좌관, 기업의 홍보라인 등을 잇는 기본 네트워크 외에도 거액의 회비를 내고 여의도 증권가 정보모임에 나가는가 하면 비선의 정보원을 두기도 했다. 어떤 동료 기자는 자신의 취재원 중 한 명이라며 조폭 똘마니들을 불러내는 자리에 나를 데리고 나가주기도 하였다.

이런 휴민트의 가동은 퇴근 후 술자리가 보통이어서 그들처럼 놀기가 어려운 데다 학연과 지연에서도 별로 건질 게 없던 내가 택한 방법은 그냥 ‘맨땅에 헤딩’ 그대로의 정공법이었다. 일단 1차 자료에 접근이 어려워 사회팀을 맡고 있던 나는, 일간지 사회부 출입기자들을 취재원으로 삼는 방법을 택했다. 어찌어찌 안면을 트게 된 검찰과 경찰 출입기자 두 명에게 보도자료를 받거나 그들의 취재에서 나온 자료 부스러기와 기자 개인의 분석을 얻었다. 그들에게는 경쟁지가 아니었으니 대수롭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크게 도움 되는 소스였다.

그 다음 단계로는 담당 형사나 검사를 찾아가는 순서다. 경찰 출입기자들도 수습 때 형사 다루기부터 배운다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형사들은 기자들에게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들은 대외비는 아닌 수준에서 사건 주변의 이야기를 풀어주는데 그 정보가 주간지로서는 귀한 소스일 경우가 많았다. 검사를 찾아갔던 몇몇 기억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다.

형사의 수첩은 정보의 보고이다. 여러 번 형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사건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수첩을 펴놓고 뒤적거리며 이야기를 해주는데 깨알같이 빽빽이 적힌 그것들만 잘 파내도 특종은 나오겠다 싶은 순간이 많았다. 형사 수첩에서 우연히 눈에 띈 정보로 제법 큰 대어를 낚은 경우가 1992년 한 청년이 수혈로 에이즈 감염에 걸렸다가 자살한 사건이었다. 수혈로 감염된 첫 사례인데다 자살로 이어졌기 때문에 연일 보도가 되면서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 청년과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당 형사가 토로하면서 수첩을 펼쳤는데 거기에 ‘일기장’ 이라는 단어가 확 내 시선을 끌었다. 그 일기장을 구할 수 있다면 죽음에 이르게 된 그 청년의 고통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사 수첩에서 훔쳐본 ‘일기장특종 되다

유가족을 상대하는 취재가 가장 어렵다. 큰 불행을 당한 이들을 상대로 뭘 물어보고 알아낸다는 것이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양심에 거리낄 때가 많다. 수유리 어딘가로 기억되는데 그 집을 찾고도 쉽게 문을 두드리지 못해 사흘째 그 골목을 배회하던 날 형이라는 분이 대문을 열고 나왔다. 며칠째 골목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봤는데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메모지에 메모를 적는 모습. ⓒDitty_about_summer/Shutterstock
형사 수첩을 본 후 그 일기장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Ditty_about_summer/Shutterstock

그래서 그 청년의 방으로 들어가서 일기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몇 년 전의 수혈로 에이즈 판정을 받고 죽음을 선택하기까지의 괴로운 심경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써놓은 글이었다. 그 형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내 마음은 빨리 이 일기장 복사본을 들고 들어가서 오늘 중으로 기사를 넘겨야 마감을 맞출 수 있다는 초조함뿐이었다. 기자란 몰인정한 직업이다. 그 일기장 복사본을 가져가서 들이밀자, 촉이 빠른 편집부장은 유언 같은 일기장을 청년의 글씨가 그대로 보이게끔 해서 몇 페이지에 걸쳐 전재했다. 특종은 아니었지만 요즘 현장 말로 단독기사는 되었다.

그 후에도 몇몇 형사들과의 친분을 아주 잘 써먹었고, 슬슬 ‘짬밥’이 늘어나면서 나의 휴민트도 여러 분야로 넓어져 갔으며 아무런 인맥이 없는 배경이라도 전화 몇 통을 부지런히 돌리면 어디선가 선이 닿는 취재망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도 어떤 일이든 쉽게 덤비는 스타일인데 아마 그 시절에 배운 맨땅에 헤딩하기 실력이 아닐까?

*휴민트(HUMINT)란 사람(Human)과 정보(Intelligence)를 합성한 말로, 사람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뜻한다. _ 출처 Daum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