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부안(扶安)과 삼변(三邊), 변청(邊淸)의 밀어(蜜語)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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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부안(扶安)과 삼변(三邊), 변청(邊淸)의 밀어(蜜語)

‘홀딱벗고 새’가 남쪽으로 가면

꼭 이맘 때 서울의 남한산성을 오르면 정겨운 새소리 하나를 듣게 된다. 이곳을 자주 찾는 사람은 대부분 아는 새소리다. 그것은 ‘홀딱 벗고 새’의 울음소리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들을수록 정겹다. ‘홀딱 벗고 새’라는 이름은 그처럼 들은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고 정식이름은 ‘검은등 뻐꾸기’다. 우리나라에서 봄을 지내고 떠나가는 철새다. 미주에서는 ‘인디언 뻐꾸기’로 알려져 있다.

이 ‘검은등 뻐꾸기’는 남한산성에서 ‘홀딱 벗고’라고 울지만 남쪽 변산으로 내려가면 ‘찔록도 보배요’라고 운다. 그러니까 남한산성 뻐꾸기가 4음절인 서울말로 ‘홀딱 벗고’라고 운다면 변산의 뻐꾸기는 6음절로 된 ‘찔록도 보배요’라고 우는 것이다. 억양과 음정도 다르다. 남한산성에서는 ‘쏠쏠라미’이고 변산에서는 ‘쏠쏠미 미쏠미’다. ‘찔록’은 찔레(꽃)의 연한 새순을 일컫는 말로 춘궁기의 좋은 군것질 감이었다.

그런데 뻐꾸기만 지방색 언어로 우는 것이 아니다. 곤충들도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른 소리를 낸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벼슬살이를 위해 서울로 떠난 아들의 향수병을 달래주고자 고향의 귀뚜라미를 조롱에 담아 서울로 보내줬던 것이다. 귀에 익은 고향의 소리는 세월이 지나도 항상 귓가에 맴돈다.

 

흉내 내기 어려운 부안의 토속어

부안의 말씨나 말투는 ‘찔록도 보배요’처럼 좀 특이한 면이 있다. 이웃한 정읍과 김제 지역에서 통용되는 몇 마디의 토속어는 이 지역이 어문과 노랫가락에 얼마나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길’을 ‘질’, ‘댁’을 ‘떡’, ‘흉허물’을 ‘숭허물’이라고 하는 구개음화가 타 지역보다 훨씬 발전된 것은 그렇다 치고 ‘김제’를 ‘짐게’, ‘저기’를 ‘처그’라고 바꾸어 표현하는 말 습관은 그 연원이 궁금하기만 하다. 더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띰어’와 ‘띰게’다.

‘띰어’는 무거운 물체를 ‘함께 들어라’라는 뜻이고 ‘띰게’는 ‘함께 들자’는 뜻이다. 그래서 ‘띰고 가지 뭐’라고 하면 ‘함께 들고 가면 돼’라는 뜻이 함축되어있다. 이보다 더더욱 재미있는 발음도 있다. ‘여우’나 ‘무(우)’를 ‘여시’, ‘무시’로 표현하는 것은 남쪽 지역의 일반화된 언어습관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여우’를 ‘여시’라고 하지도 않고 ‘이’와 ‘의’의 중간음을 사용한 ‘?시’라고 표현한다. 현행 자모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발음이다. 제주에서 ‘닭’을 ‘독’과 닥‘의 중간 음으로 부르는 것과 흡사하다.

삼변인 변청(邊淸)의 ‘청’은 벌꿀을 일컫는 말이다. 변산에서는 꿀이라는 말보다 청이라는 말을 더 즐겨 쓴다. 물론 목청이나 석청 등 자연산 토종꿀을 말함이다. 외래종인 양봉(洋蜂)의 꿀은 청이라 하지 않고 그냥 꿀이라 부른다.

깊은 산,바위틈, 숨겨져 있는 석청
깊은 산의 바위틈에 숨겨져 있는 석청. Ⓒ최병요

 

변청은 더불어 사는 지혜의 산물

변산에서 나는 자연산 청은 맛과 향, 약효 면에서 탁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예부터 목청이나 석청을 직업적으로 채취하거나 판매하지 않았다. 간혹 눈에 띄거나 약용으로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욕심내어 채취하지 않았다. 혹독한 겨울을 나야 하는 꿀벌을 어렵게 하지 않는다는 마음에서였다.

다만 초여름에 이들이 분봉할 때 거두어다가 집을 지어주고 보호해준 대가로 겨울을 지나 개화시기가 다가오기 전에 필요한 양만큼만 얻어냈던 것이다.

토종 꿀벌은 기후가 알맞아 밀원이 풍부할 것으로 예상되면 여왕봉이 약 1천여 마리의 일벌을 이끌고 새집을 찾아 나선다. 이때 이끌고 나가는 일벌은 예전부터 자기에게 시중들던 기존의 벌이고 그동안 열심히 양육해 태어난 새 벌과 새 여왕벌에게 집과 저장해놓은 꿀을 고스란히 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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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천 마리의 벌이 양팔을 맞잡고 엉겨 붙어 있다. 중심에는 여왕벌이 있으며 정찰임무를 띈 일벌이 깃들만한 터를 찾아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최병요

대부대를 이루어 집을 나선 벌떼가 손쉽게 새로운 터전을 구하지 못하면 우선 여왕벌이 큰 몸집을 지탱하지 못해 아무데나 눌러앉게 되고 일벌들은 여왕벌을 지키느라 촘촘히 둘러싸는데 이때 빗자루와 망태를 들고 다가가 살살 빗질하면 망태기 속으로 옮겨 앉는다. 그리곤 미리 마련해놓은 집에 가두어 두고 여왕봉이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의 출입구를 만들어주면 눌러앉아 꿀벌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

벌통은 외부의 침입자를 막고 더위와 추위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만든다. 예전엔 보통 큰 나무를 2자 정도로 자른 다음 가운데 구멍을 파서 평평한 돌 위에 세워놓고 본봉하는 벌이 집 주위로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운이 좋으면 한 해에 서너 통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욕심내지 않았다.

토종 꿀벌은 가꾸기가 쉽지 않다. 말벌 등 외적의 칩임을 잘 막아주어야 하고 밀원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꿀 모으기가 쉽지 않아 장철에는 설탕물 등 대용식을 적절하게 공급해주어야 한다. 벌통은 보통 툇마루 기둥 옆에 세워서 사람의 눈에 잘 띄게 하는데 1천 여 마리가 수시로 들락거리면서도 이유 없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변청은 자연의 일부, 남획은 삼변의 뜻에 어긋나

벌은 원래 색맹이다. 그래서 꽃가루의 향기를 쫓아가서 꽃의 씨방까지 내려가 꿀을 양껏 머금어 나오는데 이때 저도 모르게 꽃의 수분을 도와주어 꿀 값을 치르게 된다. 벌은 화려한 꽃일수록 꿀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듯하다. 모란, 목련처럼 꽃송이가 큰 것을 무시하고 산속이나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보잘 것 없는 꽃으로 모여든다. 싸리꽃이나 밤꽃처럼 사람 눈으로 보면 별 볼일 없는 꽃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옛 선비가 뜰에 가꾸던 매화나 목단(모란)은 기품이 있기는 하지만 벌에게는 관심 밖이다. 그런데 살구나무나 복숭아, 밤나무 등을 울안에 심지 않았던 이유는 딴 데 있다. 우리나라 꽃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한 꽃은 산자락에 핀 살구꽃이다. 2등이 능소화, 3등이 박태기나무 꽃이다.

봄에 피는 박태기나무 꽃, 형제의 우의, ‘믿음’의 꽃, 선조들이 즐겨 심은 꽃
봄에 피는 박태기나무 꽃은 형제의 우의를 돈독히 한다는 ‘믿음’의 꽃으로 선조들이 즐겨 심었다. Ⓒ최병요

살구꽃이나 복숭아꽃은 그 화려함에 견줄만한 꽃이 없지만 이를 울안에 심지 않았던 것은 지나가는 사람이 꽃가지를 꺾고 싶어 울안의 아녀자를 자꾸 기웃거리는 것을 저어해서였다. 또한 감나무, 배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은행나무를 울안에 심어 가꾸면서도 유독 밤나무만은 뒷동산 멀찍이 심었던 것은 밤꽃의 향기가 남성의 정액 냄새와 닮아서였던 것이다.

변청은 변산면 격포리 적벽강 부근과 중계리 월명암의 골짜기, 상서면 통정리 골짜기 등에서 많이 생산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고 그곳이 외진 골짜기여서 밀 채취자가 많다는 얘기일 뿐이다. 변청은 부안 변산의 자랑거리이자 특산물로서 자연의 일부다. 외지인의 수요에 응하느라 남획을 서슴지 않는 것은 삼변의 뜻에도 어긋나는 일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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