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이생 삼생을 살아라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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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이생 삼생을 살아라

2016.04.27 · HEYDAY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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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여자가 대학 가는 것은 특혜였다. 특혜에 상응하는 차원에서 나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졸업 전에 시험을 봐서 신문사 수습기자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결혼하자고 졸라대는 남자를 따라 결혼을 했고, 아이 셋을 열심히 키워내는 것으로 50세, 더 정확히 말해서 49세까지 누구누구의 엄마로만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아이가 한꺼번에 훅 가버렸다. 결혼하고, 군대 가고, 유학 가고…. 오직 자식들 키우는 일에 매진한 내 삶의 축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살아야 하나? 앞으로 남아 있을 20여 년간, 나는 뭘 위하여, 뭘 하고 살아야 한단 말이냐.”

당시 나는 사람은 70대쯤 되면 죽기에 알맞은 나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20여 년만 살 걱정을 했다. 그러나 나는 현재 79세다. 앞으로도 창창히 목숨을 이어갈 거 같은 진한 조짐을 그때는 차마 생각도 못했었다.

그러나 예상 밖의 일들이 일어났다. 나이 50세에 뜻밖에 책을 내게 되면서 작가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계획에 없던 일이거니와 나는 애초부터 인생 계획표를 정하고 그 계획대로 살 만큼 바른 사람이 못 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후로 4권이나 책을 더 내게 되었다. 예상 밖의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5권의 저술과 방송, 강의를 하자니, 자연스레 책의 주제인 노년과 죽음에 천착하게 되었다. 글래드웰의 1만 시간 법칙이 있는 줄도 모른 채 노년 전문가, 죽음 전문가란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과분하기 이를 데 없는 타이틀이다.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100세 시대에 맞춰 아이만 키우던 일생을 거쳐 작가로서 이생을 살고 있는 셈이 되었다.

일찍이 사람의 일생을 일생이라고 하는 것은 틀렸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대만 사람으로 일본에서 활동한 경제인인데 일생으로 부족해 이생, 삼생까지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인즉 100세 인생은 일생만 살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니 2모작, 3모작 인생을 살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가족 관계도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변할 거라고 말했다. 100세를 사는 동안 ‘검은 머리 파뿌리는’커녕 결혼을 몇 번이나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식들도 여러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친아버지 친어머니, 새아버지 새어머니, 더 나아가 지금 아버지 어머니… 이런 식이다.

나에게 은퇴를 모르냐고 종주먹을 하던 내 친구는 일생을 훌륭히 잘 살았다. 그런데 세상은 변했다. 일생에 걸쳐 한 일이 충만하니, 이제부터 일은 관두고 편안히 놀기만 하라고 해도 될 텐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 놀고만 있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는 일 없이 이생, 삼생을 보내다가는 100세 시대 후반이 무료하고 공허하다. 인간은 일을 통해 사회와의 접속이 생기고, 삶의 보람이 생기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한 현상 중 하나는 젊어서 공부도 잘하고 충만하게 잘 살던 사람들이 의외로 이생, 삼생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자만심에 차 있어서인지 새로운 지식이나 세상 변화에 눈이 멀어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현대 지식 수명은 얼마나 짧은가. 주기적으로 세포가 죽고 새 세포가 돋아나듯 하는 게 현대의 지식 세계다. 알파고가 인간의 뇌를 대신하려고 드는 신천지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미국 대학의 교수로 있는 내 친척은 모국인 한국을 좋아하면서도 국내 대학의 초빙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그러고는 ‘메마른 사회’라는 미국에서 건조한 교수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은 좋은 조건에 사람을 초청해놓고도 65~70세면 가차 없이 버리기(은퇴) 때문에 그게 싫어서 한국에 못 오겠단다. 비록 메마른 사회이지만 그 나라는 자기가 일하기 싫거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까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란다. 여기서 일생, 이생, 삼생을 사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럼 언제 진짜 은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나는 내가 글을 쓸 수 없고, 세상 이치를 알아먹을 수 없는 ‘그때’를 나의 은퇴 시기로 정했다. 현재 나는 글 쓰는 속도나 생각의 깊이가 6, 7년 전보다 대략 2배쯤 느려졌다. 은퇴가 임박함을 느낀다. 이런 사정으로 올해까지 혹은 내년까지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내게 언니가 명쾌한 답을 내려주었다.

“은퇴 시기란 네가 정하기 전에 사용자 측에서 통고할 것이다. 네가 생각하고 정할 문제가 아니다.”

맞는 말이다. 현재 글을 기고하는 잡지사와 신문사 등에서 통고가 올 즈음이 두 번째 인생을 마감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히딩크 말처럼 다행히 나는 아직도 ‘still hungry(여전히 애정을 갖는)’한 곳이 있다. 바로 내 집에 쌓여 있는 고전음악 CD다. 다닐 수 있다면, 그 많은 공연이나 관람 순례도 하고 싶다. 내 감성과 영혼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다. 어쩜, 이게 나의 삼생이 되지 않을까? 그다음은 아마 내가 25년째 천착하고 있는 좋은 죽음을 실천해야 할 때가 아닐까. 그 실천을 위해 신의 은총을 기원해야겠다.

글을 쓴 고광애는 쉰 살부터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해 79세인 현재 관련 책을 다섯 권이나 낸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최근 를 출간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죽음을 연구하고 준비하는 ‘메멘토 모리 독서회’에서 24년간 활동해왔다. 그 영향으로 그녀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한다는 사전의료의향서 확인증을 늘 지갑에 넣고 다닌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고 막내아들은 영화  으로 유명한 임상수 감독이다. 지난해 남편이었던 영화평론가 임영 씨와 사별했다.
글을 쓴 고광애는 쉰 살부터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해 79세인 현재 관련 책을 다섯 권이나 낸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최근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를 출간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죽음을 연구하고 준비하는 ‘메멘토 모리 독서회’에서 24년간 활동해왔다. 그 영향으로 그녀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한다는 사전의료의향서 확인증을 늘 지갑에 넣고 다닌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고 막내아들은 영화 <하녀> <돈의 맛>으로 유명한 임상수 감독이다. 지난해 남편이었던 영화평론가 임영 씨와 사별했다.

 

기획 장혜정 고광애 사진 셔터스톡
※ 이 기사는 <헤이데이> 23호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