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얇은 어머니 때문에 걱정이에요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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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얇은 어머니 때문에 걱정이에요

2016.04.14 · HEYDAY 작성

남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귀 얇은 어머니는 주관이 없는 걸까? 귀를 잘 기울이는 걸까?


Q. 귀 얇은 어머니 때문에 걱정이에요

“누가 그러는데….” 우리 어머니 말씀의 첫마디입니다. 어머니는 남이 지나가는 말로 한 말도 곧이곧대로 듣는 분이세요.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이야 어머니 천성이니 바꿀 순 없겠지만 문제는 ‘이거 하면 좋다더라’ ‘저거 하면 좋다더라’ 하면서 자식 교육, 장보기 등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려주며 따라 하라고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는 맞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하면 무척 섭섭해하십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낭비도 많습니다.

특히 “어떤 물건이 좋다더라” 하는 말을 들으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필요도 없는 물건을 이것저것 사다 나르는 통에 자식들이 가슴을 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인 제 집에서 같이 지내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 보기도 민망합니다. “좋다는데 너희는 왜 안 쓰나”며 강요까지 하시니 그 잔소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귀 얇은 어머니를 위한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A. ‘귀가 얇다’고 몰아가선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타인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상담하면서 비슷한 사례를 자주 본다. 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리면 쓸데없는 물건만 잔뜩 사 온다고 아들은 하소연하지만, 어머니는 상품 자체보다 가게 주인과 세상 사는 이야기, 자식 이야기, 이웃 이야기를 하며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것을 일상의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었다.

어머니가 남의 말을 잘 믿고, 때로는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을 쉽게 사는 것의 뒤편에는 윈슬로 호머의 작품 <스냅 더 휩(Snap the Whip)>과 같은 이미지가 있다. ‘귀가 얇다’는 사람이 타인의 말과 그 속에 담긴 스토리에 흠뻑 젖는 데에는 즐거운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는 셈이다. 마치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발장구 치며 들판을 뛰어가는 모습 같다고나 할까?

“남의 말을 쉽게 믿지 마세요. 그 말에 속아서 쓸데없이 물건 사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마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말은 어머니에겐 위협과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 Carl Spitzweg 'The bookworm'
© Carl Spitzweg ‘The bookworm’

반박보다는 공감이 먼저

아무리 젊어도 사람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면 그 사람은 노인이다. 나이가 들어도 호기심이 여전히 왕성하다면, 청춘이다. 사연에 나오는 어머니도 청춘으로 보인다. 귀가 얇다고 했지만, 그건 바꾸어 말하면 호기심이 강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마치 카를 슈피츠베크(Carl Spitzweg)의 작품 <The bookworm(독서광)> 속 남자처럼 말이다.

작품 속 남자의 손에, 그리고 팔과 다리 사이에 책을 끼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귀담아듣는 것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해서 감언이설에 속아 피해 입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을 터. 그림 속의 남자가 다리 사이에 끼고 있던 책이 떨어지지 않을까, 혹시 사다리에서 넘어지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해 보이는 것처럼, 어머니의 행동도 가족에게는 큰 걱정일 것이다. 어디선가 듣고 온 이야기를 어머니가 철석같이 믿고 있다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그것을 바꾸어놓기란 쉽지 않다.

이성적 논리만 가지고 어머니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덤벼들면 “이게 다 너희 좋으라고 한 건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며 서운해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옳다고 믿는 것, 그 자체를 공격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지키려고 방어적이 된다. 그리고 오히려 “너희가 잘 몰라서 그렇다. 내 말이 맞으니 무조건 따라라”며 반발하고 자신의 믿음에 더 매달린다. 이것을 심리적 역반응이라고 한다.

술을 즐기는 사람에게 술 끊으라고 강요하면 술 생각이 더 커지는 것과 같은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하는 것이다. 방법은 어머니가 밖에서 좋다고 듣고 온 것과 비교해볼 수 있는, 다른 정보를 알려주어야 한다.

“어머니,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가 속은 거예요”라며 얼굴 붉히고 반박하지 말고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네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좋은 방법도 알려드릴게요”라며 넌지시 새로운 정보를 들려주자. 왜 그것이 좋은지 되도록이면 생생하게 말해주면 더 좋다.

믿음을 흔드는 것은 크고 강한 목소리가 아니라, 오감을 자극하는 생생한 스토리이니까. 그렇게 하면 어머니가 믿고 있는 것과 새로운 정보가 어머니의 내면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기존의 믿음 체계가 흔들리게 된다. 이런 식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러면 어머니가 밖에서 솔깃한 이야기를 듣더라도 ‘우리 아들이라면 이것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하며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어머니도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 처방전    <발코니에서(On the Balcony)>

피터 블레이크의 이 작품을 보자. 푸른 잔디가 깔린 공원 벤치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사람들 주위로 그림과 담뱃갑, 잡지, 포장지 등등 다양한 상품이 벤치와 잔디에 진열된 듯 펼쳐져 있다. 원래 이 작품은 1950년대 급부상한 서구의 소비문화를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조금 비틀어서 보면 다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림 속에 재현된 오브제들처럼, 형형색색의 다양한 제품과 그것에 담긴 이야기가 풍부해지면 사람은 단 한 가지 상품이나 정보에만 집착하지 않게 된다. 가령 A라는 제품, B라는 교육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C도 있고 D도 있고 E도 있다고, 세상에 대한 다양한 인식을 갖게 되면 한 가지 것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한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도 않게 된다. 어떤 사람이 어머니의 환심을 사려고 솔깃한 이야기를 해도, 그것보다 나은 것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어머니가 인식하고 있다면 맹목적으로 매달리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 Peter Blake 'On the Balcony'
© Peter Blake ‘On the Balcony’

 

기획 이인철 사진 김병수(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부교수)
※ 이 기사는 <헤이데이> 23호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