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평론가 정성일, 30년 지기 강헌을 말하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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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 정성일, 30년 지기 강헌을 말하다

2016.04.21 · HEYDAY 작성

영화 평론가 정성일,강헌,우리는 친구,명리 운명을 읽다,음악 평론가 강헌,정성일,세속적 불행,명리학국내 영화계와 음악계를 대표하는 평론가, 정성일과 강헌. 이 둘은 30년 지기다. 서로의 소소한 일상까지도 공유하는 두 사람이 한자리에 마주했다. 정성일이 묻고 강헌이 답했다.


강헌과는 오래전에 만났다. 1990년의 일이다. 그 후 우리는 종종 스쳐 지나가듯이 그렇게 문득 만나곤 했다. 내가 강헌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당대에 가장 뛰어난 안목을 지난 한국 대중음악 평론가였고 동시에 <닫힌 교문을 열며>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쓴 독립영화 활동가였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그는 변신하고 있었다. 여전히 음악 평을 썼지만 강헌은 무엇보다 대중문화의 판을 바꾸고 싶어 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열정. 어디선가 마치 훔쳐 온 것만 같은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쓰러졌다는 말을 들었다.

거의 죽음 가까이 간 강헌은 한동안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그를 만난 것은 언제나처럼 문득 온 그의 전화였다. 남산에서 와인 바를 한다고 술이나 마시자고 했다. 그를 만나서 새벽 햇빛을 볼 때까지 마셨다. 그 와인 바에는 어디에도 없는 수만 장의 LP 음반이 있었다. 그 음반들은 강헌이 평생에 걸쳐 사 모은 보물들이었다. 그날 우린 와인과 음악을 실컷 즐겼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강헌은 다시 잠수를 탔다. 이번에는 명리학을 배워 나타났다.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강헌이 변신을 거듭해도 놀라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이번에는 좀 당황했다. 이 만남은 여기서 시작한다.

 

정성일 책 <명리 운명을 읽다>의 반응이 좋죠?
강헌 지난해 12월에 책이 나왔는데 관심이 없었어요. 아무래도 명리학은 혹세무민하는 거다, 그러면서 정말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거예요(웃음). 그런데 한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자 갑자기 출판사 업무 마비가 된 겁니다. 딱 들어도 강남에 있음직한 50대 여자들이 전화해서 “도사님 번호 좀 알려주세요”라고 한 거죠. 이 언니들은 내가 음악 평론가라는 건 관심도 없고, 그저 새로운 도사가 나타났으니까 약발 떨어지기 전에 자기가 먼저 봐야겠구나 하더라니까(웃음). 그게 이렇게 뜨거운 반응의 시작이었죠.



정성일 한동안 몸이 좀 불편했었는데 건강은 어떤가요?
강헌 최근에 왼쪽 갈비뼈가 부러져서 몸이 불편해요. 다른 분이었다면 약속을 미뤘겠지만 정성일 선생님과의 약속이니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웃음).

 

정성일 혀의 감각은 여전한가요?(강헌과 과거 맛집으로 꽤나 알려진 냉면집에 간 적이 있다. 냉면이 나오자 한입 맛보더니 이내 젓가락을 던져버렸다. ‘냉면집에서 냉면을 팔아야지, 국수를 팔면 어떻게 해!’ 그의 일갈이 매서웠다. 그는 자리를 박차더니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맛에 한해서 그만큼 까다로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강헌 다 쓸데없지요. 그래도 사람이 먹고 놀고 그런 재미없이 어떻게 살아요(웃음).

 

정성일 대학생 때 당시 <여성신문>에 맛집을 기고할 정도였는데 그런 감각은 본능입니까?
강헌 지금의 절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안 믿지만 제가 스무 살 때까지 미역, 돼지고기 등 못 먹는 것이 많았어요. 심지어 달걀도 못 먹었죠. 입도 짧아 몸은 삐쩍 말랐고 허리가 26인치도 안 됐어요. 근데 한순간에 맛을 알게 됐어요. 재수할 때 표충사에서 공부했는데 절에 너무 먹을 것이 없는 거야. 한 달 동안 물에 밥 말아 먹으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마침 절에 삼일기도 온 아주머니들이 밥을 해 와 같이 먹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못 먹는 미역국을 끓여 온 겁니다. 생일에도 안 먹는 미역국을 무슨 생각인지 그날 먹었어요. 너무 맛있어서 미역국만 다섯 그릇 비웠습니다.

그 미역국은 제겐 원효대사의 해골물이었어요. 미각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 맛을 탐닉한 계기죠. 대학을 서울로 와 친구들과 매일 술을 마시는데 안주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술값 아끼려고 천원짜리 김치찌개를 시키지만 계속 술만 비우는 통에 계산할 때 보면 술값은 늘 만원이 넘게 나와요. 그때 결심했죠. 이럴 바에야 난 맛있는 만원짜리 안주를 먹겠다고. 그리곤 친구들을 선동해서 맛집만 찾아다녔어요. 어느 땐 술 한 잔 마시기 위해 1시간 반 버스 타고 가서 먹을 정도였으니까요.

 

정성일 인터넷도 없던 시절인데, 정보는 어디서 얻어 찾아다녔나요?
강헌 발품이죠. 같이 간 친구들은 맛있다고 놀라지만, 저는 이미 그 집을 몇 번 가보고, 옆집에도 가보고 비교해가면서 분석한 겁니다.

 

정성일 그냥 다짜고짜 물어볼게요. 명리학이 뭔가요?
강헌 정말 제가 다짜고짜 명리학이어서(웃음). 상식 수준으로 대답하면 역사가 시작된 이후에 인간에게 제일 인기 있었던 학문이 뭐냐면 미래학. 사실 인간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이죠. 아무도 이 궁금함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요. 명리학은 이 궁금함에 대답하기 위한 수많은 도구 중에 하나죠. 음양과 오행이라는 동양철학의 우주론에 바탕을 두고 인간을 거기에 대입해 운명의 변화와 변동을 탐구하는 하나의 학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술법이기도 하죠.

 

정성일 강헌 씨는 긴 삶의 여정을 거쳐오면서 영화, 음식, 무엇보다 음악 전문가로서의 삶을 살아왔잖아요? 물론 저는 강헌 씨가 호기심 넘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웃음) 명리학은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강헌 저를 잘 아시니까(웃음). 다양한 관심을 갖고 살았고 나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죠. 죽음의 고비도 7번을 넘겼으니까요. 한마디로 제 삶을 요약하면 ‘내용 없는 명랑 만화’라고 할까요. 저는 명랑함을 참 좋아했어요. 쾌락을 사랑했고. 그래서 명랑하지 않는 사람을 참 싫어했어요. 실제로 신기하게도 제 주변에 마흔 살 되도록 죽은 사람이 없었어요. 근데 마흔세 살이 되던 해에 한 방에 쓰러지고 사실상 극적으로 살았는데 일어나마자 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1년 반 내지 2년 반밖에 못 살 것 같다’는 사형선고였어요.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됐죠.

 

정성일 막 21세기가 시작되었을 때죠?
강헌 죽음을 앞두고 처음으로 삶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보통 이럴 때 종교가 다가오고 거기서 구원을 찾는데 (잠시 생각) 그땐 걸을 수도 없어서 하루 종일 누워 있는데 24년 동안 잊고 있던 분이 생각났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 아버지가 사주 보시던 분이었어요. 내가 대학교 떨어졌을 때 친구 집에 놀러 가서 그 아버지를 우연히 처음으로 만났어요. 나를 빤히 보더니 “아들한테 얘기 많이 들었다” 하시고는 사주를 봐줬어요. 근데 열아홉 살이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야, 너는 이번에 떨어진 대학의 과는 다음 해에 그대로 가니까 스트레스 받지 마. 그리고 너는 직장 생활 안 하고 글 쓰고 살겠네. 근데 결혼은 세 번 할 거야. 마흔두 살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가 올 거야. 죽지는 않지만 굉장히 힘들 거야.” 물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죠. 그리고 다 잊어버렸어요. 그 후에 다시 뵌 적은 없어요. 생각을 했죠. 이게 도대체 뭘까? 내 생년월일시만 알고서 어떻게? 그래서 아들에게 전화해서 책방에 가서 사주 관련 책을 모두 사서 보내라고 했죠. 그래서 시작된 겁니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강헌,우리는 친구,명리 운명을 읽다,음악 평론가 강헌,정성일,세속적 불행,명리학

정성일 명리학을 통해 다른 사람의 운명을 의사가 임상 실험하듯이 보는데, 다른 사람의 운명을 볼 때 어떤 기분이 드세요?
강헌 기절할 만큼 굉장히 힘이 들죠. 상담하다가 세 번 쓰러졌어요. 아무리 주목할 만한 것이 없는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그건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고, 재현될 수 없는, 오리지널한 어떤 것이니까요. 한 사람의 삶은 굉장히 감당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운명에 흥미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제 자신, 제자들에게 말해요. 그럼 다 죽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누가 왔을 때 앞뒤 말 다 자르고 “걱정 마 남편 들어올 거야”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남편의 바람기가 고민인 여성이라면 그 사람을 도사로 생각하겠죠. “시험 암만 쳐봐야 소용없어. 넌 장사해야지” 했는데 실제로 고시 7번 떨어져서 절망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우와!” 하면서 보겠어요. 근데 그런 것은 아무 의미 없어요. 그건 영업용 테크닉이고 퍼포먼스예요.

 

정성일 세속적 불행이 오고 있는 사람에게 운명을 보는 사람은 정직하게 얘기해줘야 할까요?
강헌 네, 정직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죠.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돈이 많기를 바랍니다. 왜나면 우리가 바로 그 욕망의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돈이 많기를 바라면서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사실 신점이나 명리학의 가장 큰 폐해 중 하나는 운명 결정론입니다. 네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다 결정되어 있다. 너는 거지의 팔자를 타고났으니 거지다. 명리학의 고전을 보면 거지의 사주, 재상의 사주가 있는데, 나는 그걸 부정합니다. ‘그건 그냥 결과론일 뿐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명’은 물론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주어진 소명이라는 것이 있죠. 근데 그것을 발현시키는 것은 오로지 ‘나’, 주체입니다. 명리학이란 주어진 것을 완전연소 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것입니다. 주어진 재료를 적재적소에 쓰는 법을 알려주면 깨끗하게 살 수 있죠. 근본적으로는 라이프 카운슬링이 되어주는 것. 삶의 전략 전술을 주고 조언을 해주는 것입니다. 선택은 결국 본인 몫입니다.

 

정성일 저에게 강헌 씨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저에게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라는 책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굉장히 긴 시간 얘기했었죠. 그래서 서점에서 그 책을 발견했을 때 정말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책을 읽으면서 작별 인사라는 느낌을 살짝 받았습니다. 지금 강헌 씨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요?
강헌 내가 다시 알고 싶은 어떤 것이고, 이젠 제가 ‘어떻게 음악을 알아왔는지’ ‘어떻게 들어왔는지’가 굉장히 낯설게 되었어요.

 

정성일 낯설게 되었다고요?
강헌 네, 그래서 정말 수천 번은 족히 들었을 음악을 다시 들으면 굉장히 낯선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어쩌면 ‘아, 이제 음악과 결별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근데 낯설어지다 보니 그 진면목이 보입니다. 평론가일 때 ‘우주론에 대한 책을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반도 못 썼다면, 오히려 이런 결별의 시간이 온다고 생각하니 책을 또 쓸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올해 6월에 상권, 내년 상반기 3월에 하권 책을 낼 것 같습니다.

 

정성일 본인의 사주를 대입했을 때 과거의 일 중에 안 했으면 좋았겠다라는 것들이 있나요? 명리가 가르쳐주던가요?
강헌 굉장히 많습니다. 요즘 열심히 주장하는 것이 ‘자신이 배워서 자신이 봐라’입니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배워서 자기를 보는 것이 최고입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명리학을 중학교 수업에 넣고 싶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사유가 필요합니다. 10대들의 폭력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고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인에게 굉장히 잔인한 것입니다. 자신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설정할 때만이 타인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정성일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서 숙제는 무엇입니까?
강헌 사실 저는 도사가 되기는 어려운 사람이고 그러기엔 제가 너무 쾌락주의자예요(웃음). 그 대신 쉽고 재밌게 본질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두 번째는 사실상 오해이자 진실인 ‘혹세무민’이라는 편견에 대해 질서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명리학에 관심을 갖는다는 얘기는 어딘가 아프고 힘들다는 것이죠. 아주 행복한 사람이 명리학에 관심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명리학은 약자의 학문입니다.
정성일 아아, 그 대답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왜 강헌 씨가 명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문득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강헌은 이날 몸이 좋지 않았다. 감기 몸살에다 왼쪽 갈비뼈가 부러져서 거동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30년 지기 정성일과의 약속은 몸의 불편함보다 우선이었다.
강헌은 이날 몸이 좋지 않았다. 감기 몸살에다 왼쪽 갈비뼈가 부러져서 거동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30년 지기 정성일과의 약속은 몸의 불편함보다 우선이었다.

 

기획 이인철 정성일 사진 박충열(스튜디오 텐)

※ 이 기사는 <헤이데이> 23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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