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월 마을 사람들의 ‘오유지족’의 삶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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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월 마을 사람들의 ‘오유지족’의 삶

도월 마을 초입.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도월 마을. 마을 표석과 마을기인 태극기가 휘날린다. ⓒ도월 마을 이석희
꽃으로 가득한 도월 마을
집집마다 예쁜 정원석을 심고 그 틈에 진달래를 심어 봄이면 온통 꽃동네가 된다. ⓒ도월 마을 이석희

자연 벗 삼아 살아가는 도월 마을 사람들

도월(桃月) 마을. 서울 강남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진암 4리 백족산 기슭에 있다. 장호원에서 충주로 가는 길에서 백족산 정상 쪽으로 뻗은 오르막길 중턱에 도월 마을 표석이 나타난다. 뒤로는 해발 200m의 백족산 날개가 좌우로 감싸고 있다. 마치 삼태기 속에 들어앉은 것 같다 해서 ‘삼태골’이라 부른다.

마을 뒤편에는 백족산(白足山)이, 마을 앞에는 장호원 감곡 벌판이, 그리고 벌판 가운데로는 남한강 지류인 청미천(淸渼川)이 흘러 땅이 비옥하다. 그 벌판 너머 오갑산(梧甲山)이 백족산을 마주보며 안산(案山)으로 버티고 있다. 임오군란 때 민비가 피해왔던 집 자리에 지었다는 매괴 성당이 정면으로 보인다. 민비가 임금님 계신 궁궐을 향해 문안 배례를 했다는 국망봉(國望峰)도 오른쪽으로 아스라이 보인다. 특히 봄이면 마을 앞 도화원의 복숭아꽃이 만발해 마치 무릉도원에 온 듯 착각에 빠진다.

도월 마을에 핀 복숭아꽃.
백족산 기슭 도월 마을 앞에 요즘 복숭아꽃이 만발해 마치 도화원경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도월 마을 이석희

이 마을에는 마을 어른인 이석희 씨를 비롯해 17가구가 형제처럼 오순도순 살고 있다. 대중 가요 작곡가도 있고, 건축가도 있고, 의사도 있다. 이처럼 이질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불협화음이나 갈등 따윈 없다. 이 씨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KBS의 청와대 출입 기자를 했고, 그 후 정치부장과 보도국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지낸 언론인이다. 8·15 경축식 때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현장에서 목격했던 장본인이다. 이 씨는 젊었을 때 귀공자 타입의 동안(童顔)이었지만, 지금은 구레나룻과 턱수염을 단정하게 길렀다. 마치 도인(道人) 같은 모습이다. 도월 마을이란 이름도 이 씨가 지었다. 수염을 기른 모습이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를 연상케 한다.

도월 마을 표석
武陵桃源 耕雲釣月(무릉도원 경운조월). 무릉도원에서 구름을 갈고 달을 낚는다는 도월 마을 표석. ⓒ문인수
도월 마을 이름을 지은 이석희 씨
마을 이름을 지은 석문가의 주인 이석희 씨. ⓒ문인수

‘桃月 마을?’

마을 이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도연명의 ‘武陵桃源(무릉도원)’에서 ‘桃(도)’를, 이백의 시구(詩句)인 ‘耕雲釣月(경운조월)’에서 ‘月(월)’자를 딴 것이라 했다. ‘구름을 갈고 달을 낚듯’ 자연을 벗 삼아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별천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정년 퇴직을 하고도 무슨 욕심이 그리 많은지, 관계나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여느 언론인과는 사뭇 달랐다. 필자 역시 언론인 출신으로 혹여 누가 불러주지나 않을까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도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석문가의 택호
오로지 만족함을 알고 살라는 뜻의 吾唯知足(오유지족)의 합성어와 석문가 택호. ⓒ문인수
호자각
호자각의 색다른 택호. ⓒ문인수

도월 마을,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오유지족(吾唯知足)’이란 무엇인가?

‘오유지족’은 번뇌, 번민, 망상의 원천인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고 주어진 여건 속에서 만족스럽게 살자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다. 이 씨는 오유지족의 합성어 밑에 택호를 부여한 문패를 마을의 집 대문마다 달아주었다. 택호는 그 집안의 부부 함자의 첫 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晳文家(석문가), 泰恩家(태은가), 韶愛家(소애가), 金蘭家(금란가), 鎬子閣(호자각), 英明家(영명가).

晳文家(석문가)는 이석희 씨의 택호(宅號)다. 이 씨와 부인의 함자 첫 글자를 조합해 만든 것이다. 옆집에는 인기 가요 ‘둥지’, ‘님의 향기’를 작곡한 차태일 씨와 조은송 부부의 泰恩家(태은가), 그리고 방장(坊長) 이종소 씨 부부의 韶愛家(소애가)가 있다. 또 옆집인 金蘭家(금란가), 鎬子閣(호자각), 英明家(영명가) 등도 모두 이 씨가 지은 택호다. 서로 울타리를 트고 형제처럼 지낸다.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이 딴 세상처럼 느껴진다. 마을이 생긴 지 8년, 마을 사람들은 이석희 씨가 돌에 새겨 넣은 ‘도월에 살다’라는 글처럼 서로 돕고 웃으며 도란도란 살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도월 마을 노래까지 지어 행사 때는 물론 평소에도 마을 사람들끼리 함께 부르며 친목을 다진다.

 

나 이제 / 아침 안개 山水畵(산수화) 같은 / 도월에 사노라

까투리 날고 / 고라니 뛰는 산이 좋아 / 도월에 사노라

나 이제 / 복사꽃 그윽한 향기에 취해 / 도월에 사노라

반딧불이 춤추고 / 별빛 황홀한 밤이 좋아 / 도월에 사노라

 

도월 마을 사람들의 사는 법, 그것은 오유지족의 삶이었다. 번뇌, 번민, 망상에서 깨어나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고 주어진 여건 속에서 만족스럽게 사는 것을 도월 마을이 잘 보여준다. 도연명의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도월 마을기인 태극기와 마을 전경
도월 마을기인 태극기와 마을 전경. ⓒ문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