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한양 성곽에서 민족의 아픔을 읽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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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한양 성곽에서 민족의 아픔을 읽다

끊어진 한양 도성 성곽 앞에서 필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읽었다. 그것은 남의 강압에 의해 허물어지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허물어지는 성곽과 함께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조국 수호를 향한 민족혼 또한 짓밟혔기에 더 아팠다. 그러나 이런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양 도성의 남은 성곽은 발전하는 서울을 품은 채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한양 도성 성곽 따라 한 바퀴~

한양 도성 초입 흥인지문  비석
흥인지문은 좌우로 이어졌던 성곽이 사라진 채 자동차 홍수를 이룬 8차선 도로 가운데 섬처럼 서 있다. ⓒ석인호

짙은 안개와 미세 먼지가 말끔히 갠 4월 11일 한양 도성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체력이 뒷받침 될 때 해야겠다고 오랫동안 별러 왔던 일이었다. 오전 9시 10분 지하철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을 출발해 興仁之門(동대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흥인지문은 좌우로 이어졌던 성곽이 사라진 채 자동차 홍수를 이룬 8차선 도로 가운데 섬처럼 서 있다. 그곳에는 기치창검 번쩍이며 오가는 행인을 검문하던 서슬 퍼렇던 수문장들도 없었다. 흥인지문은 서울의 동쪽 관문이 지녔음직한 영화를 잃은 채 겨우 일부만 남아 있는 옹성 위에서 회한에 젖어 있는 듯했다.

한양 도성 성곽에서 내려다 본 서울 시내 풍경
한양 도성은 총길이 18.6km, 성곽의 평균 높이는 7~8m이며 이중 12.3km가 남아 있다. ⓒ석인호

한양 도성은 총길이 18.6km, 성곽의 평균 높이는 7~8m이며 이중 12.3km가 남아 있다. 그렇지만 현존하는 구간도 옛 모습대로 남은 건 별로 없고, 대부분 훼손된 부분을 복원한 것이다. 조선 건국 초인 1396년 인왕산 능선에서부터 경복궁 뒤쪽에 있는 백악산 동쪽까지 쌓은 것을 시작으로 성곽은 여러 차례의 증축과 보수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한양 도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외침은 물론 피비린내 나는 숱한 권력 싸움까지 지켜보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도성 역할을 했다. 조선 조정의 도성 보수도 꾸준히 이어졌지만 1869년 동대문 개축이 기록상 마지막 성곽 보수 공사라고 한다.

그 후 기우는 국운을 대변하듯 방치되었고 망국과 함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훼손되고 무너져 내렸다. 구한말인 1898년에 일본인 신사 등이 들어선 왜성 공원을 만드느라 남산의 성곽이 5km 넘게 헐렸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신궁이 지어지며 더 훼손됐다. 뿐만 아니라 1925년에는 당시 히로히토 일본 왕세자의 결혼을 기념한다며 동대문쪽 성곽을 모두 헐고 운동장을 조성했는데, 이때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청계천으로 들어가는 남소문(광희문)천에 있던 이간수문은 통째 흙으로 묻어 버렸다. 1939년에 황국 신민 서사비를 세운다며 서울 성곽의 더 많은 구간이 무참하게 헐려 나갔다. 이처럼 온갖 수난 속에 해방을 맞았지만 한국 전쟁 등 혼란기를 거치며 방치되다가 1963년 1월 21일에야 사적 10호로 지정되었다.

성곽 밖 돌담 길
성곽 안쪽 길도 좋지만 성곽 밖에서 돌담을 따라 걷는 재미도 일품이다. ⓒ석인호

 

혜화동 고개까지는 비교적 복원된 성곽 

이러한 서울 성곽의 아픔을 되새기며 종로를 건너 낙산 공원 쪽으로 갔다. 여기부터 혜화문이 있는 혜화동 고개까지는 성곽이 비교적 완벽하게 복원되어 남아있다. 성곽의 안팎을 따라 길도 잘 정비돼 있었고 온갖 봄꽃들도 다투어 피어나고 있었다. 이 구역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스카이라인, 삼선동과 보문동 일대의 주택가 모습도 정겹다. 삼선교로 이어지는 간선 도로가 지나는 혜화동 고개에 있었다는 혜화문은 해체되어 없어졌다가 몇 년 전에 현재 자리에 이전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혜화문을 지나면 주택가로 이어지는데 경신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성곽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서울 과학고등학교 후문을 지나면 성곽은 비교적 온전히 제 모습대로 남아있다. 이곳부터 숙정문(肅靖門), 백악산(白岳山)까지는 상당히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그렇지만 숲이 무성한데다 성곽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어 성곽 길 걷기의 본격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성곽 안쪽 길도 좋지만 성곽 밖에서 돌담을 따라 걷는 재미도 일품이다.

숙정문
숙정문은 1968년 1.21 사태 때부터 군사 작전 구역으로 묶여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다가 2006년 4월부터 낮에만 개방됐다. ⓒ석인호

숙정문 못 미쳐 있는 말바위 휴게소에서 탐방객들은 신분증을 보여주고 방문증을 받아야만 된다. 다만 월요일은 출입이 폐쇄된다. 만약 월요일이 휴일이면 화요일에 폐쇄된다. 휴게소를 지나면 바로 숙정문에 닿는다. 이 문은 1968년 1.21 사태 때부터 군사 작전 구역으로 묶여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다가 2006년 4월부터 낮에만 개방됐다. 그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뒤늦게 알려진 문이다. 숙정문을 지나 청와대 뒤쪽에 있는 백악산(342m)에 이르는 구간에는 1.21때 무장 공비들과의 교전에서 15발의 총알을 맞은 ‘1.21 사태 소나무’도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싸움판에 서있다 온 몸에 날벼락을 맞은 불쌍한 나무였다. 그러나 그 날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나무는 오늘도 푸르름을 자랑하며 그 곳을 지키고 있었다.

성곽 안쪽을 걸을 때 왼쪽으로 서울 시내 전경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그러나 청와대도 바로 근처에 있어 ‘사진 촬영 금지’ 푯말이 촘촘히 서있어 통제 구역임을 실감나게 한다. 광화문 광장에서 보면 삼각뿔 모양으로 보이는 백악산에 올라서면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한 관청거리와 그 너머 남산 타워까지 자세하게 들어온다. 1000만 명이 모여 사는 서울의 도심 지역 대부분이 한 눈에 잡힌다.

경계 근무 중인 미남 경찰관에게 부탁해 백악산 표지석에서 기념 촬영을 한 후 창의문(彰義門)으로 내려갔다. 이 구간은 성곽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지만 경사가 심해 급전 직하의 계단 길을 조심해서 내려가야 한다. 성 밖으로는 북한산 보현봉, 문수봉, 비봉, 족두리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길이 지호지간에 보인다. 또 북한산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평창동 주택가와 산자락에 핀 꽃들이 무척 아름다웠다. 도중에 있는 쉼터에서 과일과 물을 마시며 피로한 다리를 쉬게 했다.

자하문으로도 불리는 창의문
창의문 구간은 성곽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지만 경사가 심해 급전 직하의 계단 길을 조심해서 내려가야 한다. ⓒ석인호

자하문으로도 불리는 창의문 휴게소에서 방문증을 반납하고 자하문 고개 길을 건너 윤동주 시비가 있는 공원으로 갔다. 이곳에서 인왕산(仁王山, 338m) 자락길을 따라 조금 걷다가 인왕산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자하문 고개에서 끊겼던 성곽은 인왕산 능선을 따라 독립문과 사직단을 잇는 고개 길까지 이어진다. 인왕산 정상까지의 길은 경사가 매우 심한 계단길이다. 또 바위도 많다. 경복궁, 청와대 등 서울의 핵심 도심을 발 아래 두고 있어 사진 촬영 금지 구역도 또한 많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인왕산 정상 부근을 오를 때 지팡이에 의지한 꼬부랑 할머니와 그녀의 친구가 내려오고 있어 나를 놀라게 했다. 가파른 경사 길을 올라와 한 걸음 한 걸음씩 힘겹게 옮기며 다시 내려가는 두 할머니에게 진심으로 경의의 말을 전한 후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있는 경비 초소 앞 바위에 걸터 앉아 또 다시 경비병에게 기념 촬영을 부탁했다. 가파른 성곽 길을 따라 내려와 쉼터에서 김밥과 과일로 허기를 달랬다. 내려 온 성곽 길을 쳐다보니 산을 타고 넘어가는 모습이 만리장성처럼 보였다.

 

끊어지고 훼손된 성곽길,  아픈 역사 실감

만리장성처럼 보이는 성곽길
내려 온 성곽 길을 쳐다보니 산을 타고 넘어가는 모습이 만리장성처럼 보였다. ⓒ석인호

이곳부터 남대문까지는 거의 성벽이 남아있지 않다. 특히 그 사이에 있었던 돈의문(敦義門, 일명 서대문)은 일제의 도시 계획으로 1915년에 헐리고 흔적도 없어졌다. 다만 기상청 서울 관측소 부근에 성곽의 기단 일부가 남아있어 복원한 성곽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강북 삼성병원 옆길로 나와 정동 교회, 서소문, 남대문 앞을 지나 남산 공원으로 올라갔다. 공원 초입 옛날 야외음악당이 있는 곳까지는 일제가 허문 부분을 발굴해서 복원한 성곽 일부가 나타난다. 그러나 김구 선생 동상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 광장에는 성곽의 위치만 지표에 표시되어 있다. 일제의 민족혼 말살 정책이 얼마나 심했던가를 확인할 수 있어 가슴이 아팠다. 남산 팔각정으로 올라가는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다시 성곽 복원 공사가 계속되고 있었다.

남산 봉수대
남산 봉수대에 오르니 조금 전에 지나 온 성곽 길과 함께 고층 빌딩 숲을 이룬 서울 시가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석인호

남산 봉수대에 오르니 조금 전에 지나 온 성곽 길과 함께 고층 빌딩 숲을 이룬 서울 시가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팔각정 앞에서는 봉수대 점화 의식 때 행해졌다는 병사들의 검무와 농악 공연이 펼쳐져 중국인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남산 북쪽 중턱에 있는 생태 복원 구역을 지나면 경사가 급한 성곽길이 다시 나타난다. 성곽은 완벽하지만 길이는 불과 240m라고 적혀 있었다. 그 성곽이 끝나는 곳을 남산 관광 순환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한양 도성
도처에서 끊어지고 훼손된 성곽 길을 걸으면서 수난으로 점철됐던 근대사의 아픈 역사를 실감할 수 있었다. ⓒ석인호

한양 도성 성곽길은 국립극장을 지나 반얀트리 호텔 경계선을 따라 신라 호텔 동쪽으로 이어진다. 반얀트리 호텔 구역을 벗어나면 신라 호텔까지 다시 비교적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된 성곽이 나오지만 장충체육관에서 성곽은 사라진다. 그리고 장충동 고급 주택가를 벗어나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가 보이는 광희문에 오면 성곽 모습이 아주 조금 남아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다. 거기서 조금 더 걸으니 출발했던 장소가 나타났다. 스마트폰의 만보기를 보니 3만 6000보, 걸은 시간(휴식 시간 제외) 355분으로 기록돼 있었다. 한양 도성길 걷기는 이렇게 끝났다. 그리고 도처에서 끊어지고 훼손된 성곽길을 걸으면서 수난으로 점철됐던 근대사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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