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에 대한 편견에 맞서는 ‘엄마’ 이야기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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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에 대한 편견에 맞서는 ‘엄마’ 이야기

‘원영이’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며 필자 또한 어른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계모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원영이한테 미안해서 차마 쓰지 못하겠더라고요. 아무리 착한 계모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현대판 콩쥐 엄마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선고가 내려지고 검찰이 항소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계속되는 계모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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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속에는 부정적인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Gladskikh Tatiana/Shutterstock

계모에 대한 편견과 오해

‘계모=악녀’라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공식처럼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콩쥐팥쥐’ ‘장화홍련’이나 서양의 ‘신데렐라’ ‘백설공주’가 다 악녀계모 얘기잖아요.

그러나 세상에는 착한 계모도 있습니다. 미국 영화 ‘계모(Stepmom)’도 착한 의붓어미 이야기더군요. 깜찍하게 예쁜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은 1998년도 작품이라는데 유감스럽게도 영화를 보지 못해 아쉽네요. 그런데 전래동화나 소설 또는 영화가 아닌 진짜로 착하디착한 계모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명가의 내훈’(名家의 內訓)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는 박필술(朴弼述)씨가 그 주인공인데요. 그녀는 억지로 계모가 되었다거나 개과천선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착한 계모’가 어떤 것인가를 직접 보여주겠다며 스스로 나선 사람입니다.

 

착한 계모? 나쁜 계모?

경북 영덕 태생인 그녀는 20살 때 한국의 대표적 명문가로 꼽히는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선생의 종가(宗家)인 충효당(忠孝堂) 제13대 종부(宗婦)로 시집을 갔습니다. 남편에게는 전처소생 남매가 있었으니 재취, 이른바 계모자리였습니다.

10대 후반까지 10여 년간 한학(漢學)은 물론 야학에서 신(新)학문을 공부하면서 ‘소년회’를 조직, 여성문제와 사회의 흐름에 대해 연구 토론하는 등 당시로서는 개화사상에 물들어 있는 엘리트여성이었습니다. 그 또한 김활란 박사를 흠모하는 독신주의자였으나 어머니가 ‘여자는 결혼하는 것이 도리’라는 말씀에 좇아 스스럼없이 결혼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재취라는 어려운 환경 순탄치 않은 삶에 뛰어들어 멋진 희생을 하면서 살아보자’ ‘이런 계모도 있다는 걸 한번 보여주자’하는 일종의 용맹성이 발동해서 기꺼이 결혼을 승낙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희생을 하더라도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이복남매 간의 불화를 염려해서 처음엔 아예 아기를 갖지 않으려고도 했답니다. 그러나 하다 보니 2남 3녀를 낳아 전실 자식 포함 7남매가 되었는데 자신과의 약속대로 그들 형제자매간 갈등 없이 잘 키워냈습니다. 전처자식인 장남이 당연하게 종손으로서 종가를 이어받았고 함께 충효당에 기거하면서 서애 종가를 명문집안으로서의 위상을 지켜낸 종부로서의 역할도 다 해냈습니다.

‘자식을 낳아서 키워보니 전처자식 내가 낳은 자식 구분이 더 없어지더라’

애들이 예쁜 짓 할 때 미운 짓 할 때 어느 자식 구분이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편애라는 것 그야말로 헛걱정 기우(杞憂)라는 얘기였답니다. 혹시 바깥에서 ‘계모니까’ 또는 ‘계모자식 별수 없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될까봐 더 신경 쓰인 건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나 하나 희생하면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생각대로 살다보니 그대로 편안하더라는 얘깁니다. 더구나 차례(茶禮)와 제사가 1년에 17번씩이나 있는 종가에서의 후취 며느리라는 삶 자체는 자기희생 없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생활이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한자로 법(法)이란 글자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물 수(水)변에 갈 거(去) 자가 법이란 글자인데 법이란 곧 물이 흘러가듯 시대에 맞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제사 관련 예법(禮法)도 시대에 걸맞게 옛날에는 7대조(祖)까지 제사를 모셨으나 3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게 당연하다며 종가에서부터 그렇게 고쳤다고 합니다. 불천위(不遷位:서애 선생 등 사당에서 영원히 모실 수 있는 조상의 신위)제사만 빼고.

 

계모가 아닌 엄마로 바라보는 시선

그러면서 그녀는 앞서 말한 책 ‘명가의 내훈’ 마지막 편에 ‘계모의 한(恨)’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남겼습니다. 말씀인즉 계모만이 느껴야하는 혼자만의 설움이 왜 없었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핵심은 ‘사람은 누구나 착하고 또 악할 수 있다. 계모에 대해 선입관과 편견을 갖지 말고 그냥 엄마의 한 사람으로 봐 주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착한계모 박필술 씨는 우리나이로 92세였던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고로 집안의 부녀자들에 대한 교육지침서인 체험적 저서 ‘종가의 내훈’(현암사)은 1985년 초판 이래 그동안 25쇄 이상을 찍은 스테디셀러 이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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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는 무조건 나쁘다’ 라는 편견 속에 많은 선량의 계모들이 상처받는 일이 없어져야 한다. ⓒgoodluz/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