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다시 떠올린 ‘지진의 추억’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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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다시 떠올린 ‘지진의 추억’

‘부르르르~ 부르’

이불을 펴고 아들, 딸과 잠자리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인 밤 9시 40~50분쯤. 요 밑의 다다미가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잠시 떨더니 유리창이 흔들리고, 방과 마루에 세워놓은 장식장과 가구들이 앞 다퉈 ‘삐그덕~’ 신음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아닌 밤중에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 눈을 떴다가 이내 원인을 알아차렸습니다. 말로만 듣던 ‘지진’이었던 겁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을 머리에 떠올릴 때마다 화산과 함께 연상되는 첫 단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지진.

한참 일본어 공부에 매달려 있을 때 재일교포 일본어 선생이 반 농담하듯 “일본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중 하나”라며 들려줬던 그 공포의 괴물이 우리 가족 4명을 덮쳤던 겁니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건물 더미에서 구조를 진행하는 모습. ⓒwideweb/Shutterstock
일본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진. ⓒwideweb/Shutterstock

 

태생적으로 겪는 일상사, 일본의 지진

때는 1996년 이른 봄, 그러니까 제가 일본 연수차 가족들과 함께 도쿄 신주쿠의 한 단독주택 1층에 둥지를 틀고 난 후 2개월을 갓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잠을 청하다 눈을 떴다는 것 외에 저와 가족들은 이날 밤의 첫 지진 경험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음 날 아침 뉴스에서 들려 준 지진 소식은 진도 3~4의 약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살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이 정도의 지진은 일본인들이 ‘태생적으로’ 수없이 겪는 일상사라고 해도 지나칠 것이 없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난생 처음 겪는 지진이었지만 저와 가족들은 공포와 불안에 떨지 않고 오히려 ‘아하, 이런 게 지진이구나’하는 식으로 피식 웃어넘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반응이며 무식한 판단이었습니다.

첫 경험한 지진을 대수롭지 않게 오판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잘못은 한국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며 소음과 진동에 익숙해졌던 저의 몸이 지진을 마치 흔들리는 버스 안과 헷갈리게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습니다만 만원버스에 올라탔다 하면 일단 엔진 소음과 진동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던 우울한 추억이 지진에도 놀라지 않는 담력과 엉뚱한 용기를 도쿄의 이방인에게 심어주었던 겁니다. 믿기지 않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첫 지진을 접할 때의 제 느낌은 ‘요것 봐라! 지진이 무섭다더니 시동 걸어 놓은 버스에 올라 탄 것밖에 되지 않네?’라는 식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격이었습니다.

 

‘알무’ 알면 알수록 무서운 지진

요즘 한국 사회에서 흔히 떠도는 우스갯소리 중 하나인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저의 그때 반응이 딱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진 무서운 걸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비슷한 수준의 약한 지진은 잊을 만하면 또 찾아왔습니다. 헌데 사람이 겪는 대부분의 일은 여러 번 대할수록 내성이 생기는 법입니다만, 묘하게도 지진에 대해서는 불안과 두려움의 강도가 높아만 갔습니다.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일본 초등학교에 다니던 5학년 아들과 1학년 딸도 지진이라는 단어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듯했습니다.

지진에 대한 대피훈련. ⓒangkanaSU/Shutterstock
일본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지진에 대한 대피훈련을 철저히 시키고 있다. ⓒangkanaSU/Shutterstock

학교에서는 지진에 대한 대피훈련을 철저히 시키고 있었습니다. 학교는 평상시 어린이들에게 제법 두꺼운 비닐 방석을 하나씩 의자 위에 깔고 앉아 있도록 했습니다. 펼치면 자동으로 고깔모자처럼 접혀지고 이를 머리 위에 뒤집어쓰면 안전모가 되는 식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치러지는 대피훈련에서는 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아이들이 방석을 펼쳐 머리 위에 뒤집어 쓴 채 책상 밑으로 머리부터 파고 들어갑니다. 엉덩이는 밖으로 나와 있지만 머리는 책상 밑으로 들어간, 마치 모래 구덩이에 얼굴을 파묻은 타조 같은 모습이 되겠지요. 그러나 유사시에는 낙하물로부터 머리를 우선 보호하고 보라는 지혜로운 대피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진에 대비한 학생들의 교육, 훈련, 대피방법은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서 일일이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저 자신이 눈으로 보고 겪은 경험을 곁들이는 것만 해도 크게 모자라지 않을 테니까요.

역시 1996년 같은 해에 제가 즐겨 찾던 신주쿠 중앙도서관에서 겪은 일입니다. 책을 찾고 반납하는 이들과 학생들의 대화 소리로 활기찼던 열람실이 어느 한순간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갑자기 지진이 엄습했던 겁니다. 공부에 열중했던 사람이건, 아니면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건 저는 이렇게 주위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며 정적과 침묵 속으로 빠져든 것을 그 전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내 말을 하지 않고, 표현하지도 않았지만 지진에 대한 일본인들 특유의 내재된 두려움이 삽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덮치고 단숨에 정적의 블랙홀로 빨아들였던 겁니다.

 

지진과 함께 찾아온 정적, 그리고 공포

이때로부터 4년 후인 2000년 6월, 특파원 일을 위해 다시 건너간 일본 땅은 때마침 제2의 간토대지진이 언제 어떻게 또 닥칠지 모른다는 공포와 루머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서점가에는 대지진 시나리오를 실은 책과 잡지들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매스컴들은 저마다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생기고 일본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인 타격이 닥칠 것이라는 등의 잿빛뉴스를 연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저 혼자 사용하는 사무실에서 서울로 기사 송고를 끝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오후 4시쯤이었습니다. 여태껏 겪어보지 못했던 ‘그 놈’이 마침내 닥쳤습니다. 다른 일본 땅에서는 자주 나타났다고는 했어도 도쿄에서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그 괴물, 진도 5를 넘는 센 놈이 저를 덮친 것입니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대피장소에 모여 있는 모습. ⓒkoi88/Shutterstock
지진에 대해 잘 모를 때 진도 5를 넘는 센 놈이 나를 덮쳤다. 사진은 지진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대피장소에 모여있는 모습. ⓒkoi88/Shutterstock

책상이 마구 흔들렸습니다. 책장도 넘어질 듯 씰그덕거렸습니다. ‘부르르르’ 자동차 소음과는 분명 다른, 여러 물체가 흔들리는 굉음이 여기저기서 전해져 왔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습니다. 책상 모서리를 꽉 붙잡고 서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머리털이 뻗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제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 이걸 어찌해야 하나? 내가 왜 도쿄에 왔나?’ 제가 난생 처음 보는 센 놈이었지만 지진은 천만다행으로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화를 거두고 다시 땅 속으로 숨어 들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후 빌딩 밖으로 나와 올려다 본 도쿄의 하늘과 땅, 그리고 거리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무얼 그 정도 가지고 놀라느냐는 듯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기상 예보에 관한 한 어느 매체보다 빠르고 정확하다는 NHK 뉴스에서는 정규 방송을 잠깐 멈추고 지진 소식을 긴급 뉴스 단신으로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지진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추억을 20년도 더 지난 오늘에 털어놓는 것은 괜한 너스레를 떨기 위함이 아닙니다. 호들갑 때문만은 더 아닙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거의 피해를 경험하지 못한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조금이라도 더 구체적으로 알려드리기 위함이 제 목적의 전부입니다.

일본 열도를 덮치는 자연재해 중에서도 태풍, 화산폭발, 해일 등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물론 2011년 도호쿠 지방을 덮쳤던 금세기 최대의 쓰나미 같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시간을 번다는 의미입니다. 이 틈을 타 몸을 피신시키고 재해 예방 활동으로 손해도 줄일 수 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지진은 다릅니다. 언제 어느 때 땅 속에서 불쑥 솟아나고, 땅을 갈기갈기 갈라놓으며 도시와 산업시설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지 모르는 일입니다. 지진 안전지대인 한국에 발붙이고 살 수 있는 것을 엄청난 행복으로 생각하지만 반대로 만일 일본에 계속 거주했다면 저 또한 지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마음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을지 모릅니다.

 

순명하는 자세로 겸손과 지혜 터득하는 듯

일본인들에게 지진은 자신의 고국을 떠나지 않는 한 평생 끼고 살 수밖에 없는 ‘숙명적 재난’과도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지진을 원망하거나 저주하는 말들을 입에 올리는 경우를 저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이려는 훈련을 수없이 반복하고 건물 구석구석까지 내진설계를 치밀하게 해 넣는가 하면 가재도구도 지진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대자연과 맞서 싸우려는 오만, 만용과는 원초적으로 거리가 멀고 오히려 순명하는 자세로 체념 속의 겸손과 지혜를 키워가는 민족성이 알게 모르게 배인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구마모토와 남미의 에콰도르를 덮친 강진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또 다른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지구촌이 뒤숭숭하고 영 우울합니다. 구마모토에 연이어 닥친 진도 7대의 강진과 에콰도르의 7.8 강진을 실제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이라면 단지 숫자의 크기로만 가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일찍이 맛을 본 저는 얼마나 무섭고 그 피해가 막대할 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갑니다. 그래서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더 이상 땅이 심술을 부리지 않고, 공포에 사로잡힌 수십만 명의 이재민들에게도 지구촌 각국에서 도움의 손길을 지체 없이, 아낌없이 내밀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HELP JAPAN. ⓒconcept w/Shutterstock
공포에 사로잡힌 수십만 명의 이재민들에게 지구촌 각국에서 도움의 손길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원한다. ⓒconcept w/Shutterstock

참, 마지막으로 제가 바라는 것 하나가 더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밉고, 아베 정권이 꼴 보기 싫고, 한국을 적대시하는 ‘혐한파’ 무리들이 너무도 역겨운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정치, 외교의 싸움과 일반인들의 일상은 완전 별개입니다. 뜻하지 않은 재난을 당하고,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 낙담에 빠져 있을 이재민들을 겨냥한 조롱이나 악담은 절대 안 되겠지요. 인터넷 상에 “꼴 보기 좋다”는 식의 악성 댓글이 때를 만난 듯 마구 쏟아진다기에 마음이 아파 해보는 소리입니다. 언격(言格)이 인격이고, 훌륭한 인격이 모여야 나라의 국격도 높아진다는 걸 우리는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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