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人道)를 슬프게 만드는 4가지 – 전성기뉴스
콘텐츠 바로가기

top

인도(人道)를 슬프게 만드는 4가지

걷기를 망치는 무법자들

걷기를 좋아합니다. 아니 걷는 것이 습관적으로 몸에 배어 있다고 해도 허풍은 아닐 듯합니다. 1년 넘게 하루 평균 2만 보 이상을 걷고 있으니까요. 어떻게 그렇게 많이 걸을 수 있느냐고 놀라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만 비결은 간단합니다. 운 좋게도 회사 사무실이 집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아침 출근 때 걸어서 나올 때가 많습니다. 약 50분을 걸어 회사에 도착하면 스마트 폰에 내장된 앱이 6000보 정도 걸었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낮에 업무 보러 외근 나갈 때도 자동차를 타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불가피한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이 전부입니다. 지하철역에서도 에스컬레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해 오르내립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1만 보 정도가 자연스럽게 추가됩니다. 그리고 퇴근길에 걸어서 집에 가거나 스포츠센터에서 1시간 정도 TV 뉴스를 시청하면서 가볍게 걷다 보면 어김없이 총걸음 수의 앞 숫자는 ‘2’를 그리게 됩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의 다리가 튼튼하다거나 걸음을 많이 걸은 만큼 체력이 아직 쓸 만하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절대’ 아닙니다. 인도, 그것도 서울 도심 한복판의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에서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보고 느낀 것을 속 시원히 털어놓기 위해서입니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 속히 뜯어고쳐야겠다”고 생각한 것들을 저만의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참는다면 우리 사회, 나아가 나라가 달라질 것이 거의 없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솔직한 감정을 쏟아붓기 위한 것이 진짜 이유입니다. 때문에 평화롭고 너그럽다기보다 어찌 보면 가시 돋치고 불특정의 상대방을 향한 분노가 섞인 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토바이 앞에는 인도, 차도 구분도 없나

저를 화나게 하는 인도 위의 공공의 적 중 첫 번째는 사람이 다니는 길로 거침없이 올라온 이륜차, 즉 오토바이와 자전거입니다. 도로교통법상 이들은 별도표시가 되어있지 않는 한 인도를 달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퀵 서비스 오토바이는 물론 일반인들이 탄 오토바이가 행인들 곁을 스치듯 지나가는 광경을 저는 너무나 자주 보고 있습니다. 물론 제 곁을 지나는 경우도 수없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마주보고 달려오면서 저에게 옆으로 비켜나라고 은근히 겁주는 오토바이 운전자도 봤습니다.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고,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었다는 나라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야만적인 행위입니다. “나만 편하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인명 경시의 천박한 사고가 빚어낸 후진적 교통문화가 명품도시를 지향한다는 서울시 한복판에서 아직도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 저는 부끄럽고 분노를 참을 수 없습니다.

인도 위에 세워둔 오토바이
오토바이는 인도 위의 공공의 적이다. ⓒdiyben/Shutterstock

 

쏜살 같이 달리는 자전거는 흉기 그 자체

행인을 위협하는 몰염치한 공공의 적에는 자전거족들도 심심찮게 들어갑니다. 인도 한 편에 설치된 자전거 도로 위를 쏜살같이 내닫는 자전거들 때문에 저는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자전거 그림이 그려졌으니 타고 지나가도 된다는 이야기겠지만 이런 자전거족들에게는 바로 옆을 지나는 행인의 안전이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나게 달리고 싶은 자신의 자전거를 가로막는 장애물 정도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달리던 자전거가 옆으로 넘어지거나 자칫 실수로 행인과 부딪쳤을 경우를 상상해 보셨나요? 어린 시절 자전거 타기를 배우다 담벼락이나 나무에 충돌해 본 적이 있는 분들은 짐작하실 겁니다. 얼마나 큰 충격이 전해지고 상처도 깊고 오래가는지를. 그런데도 인도 위의 자전거는 자동차와 스피드 경쟁을 하듯 행인들 옆을 소리 없이 바람처럼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더구나 귀는 스마트폰과 연결된 이어폰으로 틀어막고 검은 선글라스와 두건으로 얼굴도 거의 가린 상태로 말입니다. 그럴 때 마다 화들짝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은 아무 죄 없는 행인들뿐입니다.

 

걸으면서 피워대는 담배, 이제는 정말 스톱

마주치고 싶지 않은 적 중 또 하나는 담배를 피우며 걷는 흡연자들입니다. 담배 연기는 반드시 주위로 퍼져 갑니다. 흡연자와 마주칠 때도 이들이 내뿜는 연기를 마셔야 하지만 이들을 지나쳐 앞으로 나갈 때도 뒤에 남아 있는 담배 연기는 제 코와 가슴으로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담배와 철저히 담을 쌓고 사는 저는 물론 다른 비흡연자들에게도 참기 힘든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길을 걷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정부와 서울시는 도대체 뭘하는 걸까? 보행 중 흡연의 폐해를 알고나 있는걸까? 아니면 알고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걸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끝내 분노로 이어지고 맙니다. 특파원으로 일했던 2000년대 초반, 일본 도쿄의 최고도심인 치요다구에서는 보행 중 흡연을 조례로 금지했습니다. 배경은 간단했습니다. 행인의 손에 들린 담뱃불이 어린이의 눈에 닿으면서 실명에까지 이르게 했던 것입니다. 흡연에 관대했던 일본 사회였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보행 중 흡연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마침내 치요다구의 금연으로까지 이어진 후 다른 지자체로 퍼져가게 됐던 걸 저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제가 쓴 관련기사를 보고 서울시의 한 공무원이 입법에 참고하겠다며 국제전화로 상세한 내용을 물어왔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담배를 손에 쥔 사람.
일본은 담배를 피우는 행인에 의해 한 아이가 실명에 이르렀다. 그후 대부분의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금지됐다. ⓒSabphoto/Shutterstock

 

인간벽을 만드는 행인들

걷는 즐거움, 그리고 자유를 해치는 마지막 적은 대여섯 명이 한 줄로 늘어서 도로를 점령하듯 걷는 사람들입니다. 다 같은 행인인데 왜 이들에 불만의 화살을 날리느냐고? 물론 인도 위를 걷고 있으니 이들도 행인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냉정히 따지자면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좁은 인도를 여러 사람이 꽉 메우고 걸을 때 다른 행인들이 자유롭게 오고 갈수 있겠습니까? 저는 단호히 주장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편안함, 즐거움을 위해 남의 불편을 아랑곳 않는 집단이기주의를 잠시나마 서슴지 않고 있다고 말입니다. 법을 어기거나 남을 직접 해치지는 않으니 실정법상의 범죄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누구나 지켜야 할 기본예절과 공중도덕에서는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함께 걷는 사람들.
함께 걸으면 즐겁다. 하지만 인간벽을 만들면 타인의 이동에 불편을 준다. ⓒSyda Productions/Shutterstock

 

길이 아닌 길을 대하는 예의를 먼저 만들자

어느 일간지가 수년 전에 지적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지금 ‘걷기’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공원은 물론 둘레길, 산길, 둑방길 등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는 길만 보이면 빠른 걸음으로 힘차게 걷는 사람을 어디서나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중·노년의 건강 유지와 활기찬 삶에 걷기만큼 좋은 운동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중론인 만큼 돈 안 들고,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걷기의 인기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인간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겠다며 육교와 고가를 거의 몽땅 뜯어낸 서울시도 보행자들을 위한 공간을 계속 늘려가겠다고 약속한 이상, 우리는 도심 한복판에서도 걷기의 자유를 더욱 풍성하게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털어놓은 것처럼 인도 위의 위협과 불편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고, 어디서 걷기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오토바이 굉음에 놀라고 소리 없이 나타나 쏜살같이 사라지는 자전거에 분노하고 무리지은 행인들의 벽에 가로막혀 꼼짝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의 인도는 더 이상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하나 밖에 없는 생명과 귀한 신체를 위험과 맞바꿀 각오를 하거나 코를 틀어막고 짜증을 참아가며 걸어야 하는 가시밭길이 되고 말겠지요. 정책 당국자는 물론 고위 공직자들이 읽어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저의 졸문이지만 한 가지 염원을 글 말미에 달아놓고 싶습니다.

발걸음.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은 배려에서 시작된다. ⓒThomas Zsebok/Shutterstock

“인도를 행인들이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편한 길로 만들어 주세요.”

 



전성기뉴스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지난 2015년 9월 첫 문을 열었던 <전성기뉴스>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보다 가까이에서 소통하기위해 SNS 채널을 개설, 50+를 위한 유익한 콘텐츠를 지속 제공합니다.

전성기뉴스는 2017년 12월까지 운영되며, 기존 콘텐츠는 라이나전성기재단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콘텐츠 보러가기

그동안 <전성기뉴스>를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SNS 채널에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