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리 필화 사건의 전말 [8090 기자수첩]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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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리 필화 사건의 전말 [8090 기자수첩]

직장인 일상을 풍자한 <날자! 고도리>

80년대에 <여원사>에서 발행하던 『직장인』 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지금 보면 참으로 멋대가리 없는 이름이다 싶겠지만, 샐러리맨의 라이프스타일과 성공 처세술 등을 다루는, 그 시대로는 앞서가는 남성 전문 잡지였다.

발행인 김O원 씨는 파격과 실험의 출판 비즈니스로 한때 성공신화를 썼던 인물이다. 당시 의식주, 부부생활, 육아, 요리 등 주부에게 필요한 모든 흥밋거리와 정보를 깡그리 모은 종합 여성지들이 대세였던 잡지출판계에서 남성 전문지 <직장인> 외에도 <미용생활><젊은 엄마> 등의 생활 전문지를 창간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나 유럽과 일본의 패션, 뷰티, 육아 전문잡지들이 국내 라이선스로 대거 출판되어 지금에는 여성지의 주류가 되었으니 상당히 앞선 감각을 갖고 있던 셈이다.

진취와 실험의 마인드를 가진 편집자였지만 한편으론 그만큼의 독선과 파쇼를 갖고 있는 오너이기도 했다. 오너가, 직원들은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지나친 열정과 실험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게 되면 피곤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이 가끔 벌어진다.

여원사에는 기자들의 도전정신과 진취의식을 키워준다는 명목으로 자주 독특한 이벤트를 벌이곤 했다. 예를 들면, 신입기자에게 선거 입후보자처럼 회사 이름이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지하철 역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게 했다. 지금도 열정을 부르짖는 기업에서 신입사원의 도전 과제로 그런 풍경을 연출하기도 하던데 그 옛날에도 우스꽝스럽던 짓을 아직 하는 기업이 있구나 하며 옛 생각을 한다.

<직장인>에는 창간호부터 김수정 씨의 만화가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었다. 김수정 작가는 이후 <아기공룡 둘리>로 크게 유명해졌지만 <날자! 고도리>가 그를 대중에게 알린 첫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직장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풍자한 <날자! 고도리>는 기자들부터 애독자로 마감 중 원고가 오면 먼저 읽겠다고 우르르 달려들었던 만화였다.

<고도리>  1990년 8월 호 부록.
1990년에 잡지 <직장인>의 별책부록으로 나왔던 만화책 <고도리>. 내부 ‘고발’로 연재가 중단됐다. Ⓒ남혜경

 

내부 고발(?!)로 날개 꺾여  

<날자! 고도리>의 연재 중단을 가져온 특별 이벤트가 있었으니, 발행인이 만든 여원헌장(정확한 이름은 잊어버렸으나 기자들은 국민교육헌장에 빗대어 여원헌장이라 명명했다)을 외워서 임원들 앞에서 줄줄 외우는 시험보기였다.

지금도 기억하는 풍경은, 쭉 앉아 있는 임원들과 정해진 거리(빗금이 그어져 있었다)에 부동자세로 서서 헌장을 외워서 큰 소리로 낭독해야 했는데, 실격을 당하면 1주일 뒤에 재시험을 봐야 했다. 통과할 때까지!

김수정 씨가 원고를 들고 온 날, 낯익은 기자들이 회사 옥상에서 선을 그어놓고 그 앞에 서서 헌장을 외우면서 낭독 연습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분량이 꽤 긴데다가 그런 억압된 행위를 하게 하는 것 때문에 기자들은 김수정 씨 앞에서 회사를 향해 욕지거리를 몇 마디 했으리라.

 

상사 앞에 고개 숙인 직장인의 모습.
직장인들을 대변하는 잡지를 만드는 회사였지만 내부의 모습은 달랐다. ⓒbeeboys/Shutterstock

묵묵히 구경하던 김수정 씨가 다음 달의 만화에 그 풍경을 그려왔다. 주인공 고도리 부서의 직원들이 회사 옥상에서 열심히 헌장 낭독을 연습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다가, 막상 시험을 봐야 하는 시간에 아무도 그 장소에 가지 않고 해가 지도록 옥상에서 연습만 하고 있다는 것이 만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속으로는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회사의 지시대로 하던 기자들은 그 만화를 보고 박장대소와 함께 유쾌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만화는 잡지의 마감대지를 일일이 체크하던 발행인에게 걸려 게재되지 못하였고, 이후 한동안 고도리는 직장에서 날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덧붙이자면, 여원사의 발행인은 드라마 <TV 손자병법> 집필을 하는 등 성공처세술의 달인으로 승승장구 하다가 그 독특한 실험정신이 지나쳐 온천레저 타운건설과 관련한 사기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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