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5월 3일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금주의 역사]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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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3일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금주의 역사]

2016.05.03 · 심언준(전 미디어칸 대표) 작성

벗을 찾아 한국 땅을 밟은 교황

1984년 5월 3일 오후 2시 10분, 교황 특별기인 이탈리아 알리알티아 소속 DC 10기가 사뿐히 김포공항에 내려앉았다. 32명의 수행원과 함께 비행기 트랩에서 내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곧바로 땅에 엎드려 입을 맞추었다. 교황의 친구(親口) 의식이었다. 그리고는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라는 우리말을 되풀이했다.

교황은 인사말 첫머리에서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를 서툰 한국어로 말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논어에 나오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구절을 한국어로 인용한 때문이었다.

마무리도 한국어였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한반도의 온 가족에, 평화와 우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우리 국민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한국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한 듯, 우리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많이 언급했다. 원효와 서산대사, 이차돈 등 고승은 물론 퇴계와 율곡 등의 유학자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했다. 또한 석가탄신을 경축하고 개신교도들에게 인사하는 등 폭넓은 포용력을 보였다.

교황 바오로 2세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행사 참석 모습.
교황 바오로 2세는 우리나라를 방문해 타 종교에 대한 폭넓은 포용력을 보였다. 또한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함께했다. ⓒGasper Furman/Shutterstock

바오로 2세는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식과 순교자 103인 시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교황이 가는 길마다 100만 명의 인파가 몰려서 환영했고, 교황의 방한 기념 우표는 1시간 만에 동이 났다.

교황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00만 명의 가톨릭 신도가 모인 가운데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미사를 집전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한국 천주교 순교자 103인의 시성식을 가졌다. 그 동안 교황청에서만 이뤄지던 시성식이 교황청 밖에서 행해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5월 3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방한한 교황은 방한 기간 동안 광주와 소록도, 대구와 부산 등을 방문했다. 특히 방한 이튿날에는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화해의 날’ 미사를 집전하며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했다.

 

최초의 비 이탈리아계 교황, 바오로 2세

바오로 2세 교황은 456년 만에 처음으로 비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이자, 역사상 최초의 슬라브계 교황이라는 점에서 1978년 교황 선출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청년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은 그는 생전에 세계 평화와 반전을 호소하며 민주화 운동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교황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 각별했다. 나치 침략으로 고통 받은 폴란드 출신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89년 10월 7일,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집전을 위해 교황은 또 다시 한국을 찾았다. 65만여 명이 모인 여의도 광장에서 남북한의 화해를 바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낭독했고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국민을 위로했다. 한반도의 평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바오로 2세 교황은 북한 방문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005년 선종했다.

바오로 2세가 방한한 지 꼭 30년 만인 2014년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 번째로 한국 땅을 밟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 5일의 방한 기간 동안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들을 초청해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했다. 또한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의 미사에는 위안부 할머니 등을 만났고, 아시아청년대회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바티칸에서 한 여성을 위로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바오로 2세가 방한한 지 꼭 30년만에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한했다. 그 또한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함께했다. ⓒgiulio napolitano/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