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이 창조가 될 때, 가치를 이어가는 사람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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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이 창조가 될 때, 가치를 이어가는 사람들

2016.05.17 · HEYDAY 작성

2-1헤리티지(Heritage). 물질이 아닌 정서와 정신적 가치를 만들고 이어나가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났다.


 

PEOPLE STORY 1

유산의 기록, 기록의 유산  코리아나 화장품 유상옥 회장

유상옥,코리아나 화장품,코리아나
삶을 오롯이 기록과 수집에 바친 기업가가 있다. 그에게 유산으로 남은 두 종류의 기록들.

코리아나 화장품의 유상옥 회장은 미술 애호가이자 컬렉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책도 여러 권 출간한 수필가이며 애서가이기도 하다. 수필가협회 부이사장을 맡으면서 한 달에 두어 편의 짧은 수필을 쓴다. 과거에는 컴퓨터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 뒤로는 육필로, 지금은 스마트폰에 녹음한 다음 직원에게 타이핑을 부탁한다.

“생각나는 주제가 있으면 녹음을 해둬요. 몇 번의 퇴고를 거쳐 읽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진 않겠다 싶을 때 원고를 보냅니다. 그렇게 해서 신문 등에 기고한 것들을 모아서 책으로 낸 것도 여러 권 되지요.”

쓰고 기록하는 이유는 글로 남기면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는 사소한 것도 꾸준히 기록했다. 회의 때 했던 말과 여행을 갔던 기록은 수필이 되고 책이 되었다. 첫 번째 직장인 동아제약을 그만둔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연말이 되면 동아제약의 다이어리를 구해와 이어서 쓴다.

짧은 메모 가운데 중요한 것은 다시 다이어리에 옮기고, 연말이 되면 지난 1년간 활동한 것 중 기억할 만한 굵직한 일에 대해 써둔다. 금전적인 얘기와 작품 컬렉션에 대한 기록, 글을 발표한 기록도 남긴다. 유상옥 회장에게 기록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의 유산인 셈이다. 그의 삶에서 그동안 해온 생각의 유산이 되겠다.

“사람이 70~80년을 살아오면서 잘한 일도 실수한 일도 있고, 애쓴 일도 성공한 일도 있는데 기록하지 않으면 가족도 알 길이 없잖아요. 하지만 남겨두면 손주도 알 수 있고 그것이 곧 교육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자신의 삶을 기록해서 유산으로 남겼다면 그의 컬렉션은 다른 이의 삶이 담긴 유산을 수집하는 기록이다. 직장인 시절부터 감성을 키우기 위해 인사동에 다니며 안목을 키웠다. 그사이에 그림 한 점, 화장과 관련한 유물 한 점 모은 것이 각각 1천 점과 5천 점을 훨씬 넘었다.

“직장 다닐 때는 외상으로 사기도 하고 연말에 받은 상여금으로 사기도 했지요. 그러다 결국은 그 결과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만들었으니 잘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안 모았으면 아무것도 없지, 낫싱(nothing)이지.”

유상옥 회장은 뭔가를 부지런히 하다 보면 결과물이 나온다고 믿는다. 지금의 미술관도 마찬가지. 취미가 반복되다 보니 많이 모았고 어느 시점이 되자 미술관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2003년, 건축가 정기용에게 설계를 맡겨서 강남 한복판에 전시를 위한 공간을 지었다. 그곳이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미술관과 전통 화장 유물을 연구하고 전시하는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으로 구성돼 있는 스페이스C다. 미술관과 별개로 유상옥 회장은 요즘 열심히 작품과 유물을 이곳저곳에 기증하고 있다. 그가 모은 유산의 가치를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원해서다.

유상옥 회장이 메모를 모아서 책을 낸 과정과 소소한 미술품을 모아서 미술관을 짓게 된 과정은 너무나 흡사하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구는 바로 이런 그의 ‘기록’에 잘 맞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한 사람이 남긴 기록들을 유산으로 함께 가지게 됐다. 그것이 유상옥 회장이 모두 이뤄낸 ‘소소한’ 일인 셈이다.

 

PEOPLE STORY 2

헤리티지의 재창조  사진가 이주용 교수

옛날 사진을 꺼내어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다. 끊기고 말았던 가치를 다시 복원시켜 지금부터의 가치로 만들어 내는 사진가가 있다.
옛날 사진을 꺼내어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다. 끊기고 말았던 가치를 다시 복원시켜 지금부터의 가치로 만들어 내는 사진가가 있다.

작년 봄 서울 남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수집이 창조가 될 때’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전시가 열렸다. 그 가운데 사진가인 이주용 작가는 ‘천연당’이라는 이름의 조선 시대 개화기의 사진관을 미술관 안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개화기의 사진관과 사진을 통해 시간, 역사, 기록들과 아카이브라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환기 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그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면서도 한편으로 사람들은 완벽하게 재현된 과거 속에 현대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에 약간의 가벼운 흥분을 느끼는 듯했다. 과거의 공간을 완벽히 재연할 수 있었던 건 이주용 작가가 긴 시간 수집한 카메라들이 훌륭한 조연이 돼준 덕분이다.

“미국 유학 시절 우연히 들렀던 벼룩시장에서 다게레오타입의 사진을 발견했어요. 어렵게 구매한 그 한 점의 사진이 계기가 되어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사진뿐 아니라 카메라도 수집했다.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에 주목하는 편이라 구조와 방식에 따라서 카메라를 수집했다. 최초의 카메라라고 하는 다게레오타입에서부터 콜로디언 프로세스의 카메라, 인물이나 초상 사진에 주로 쓰는 카메라 등 300여 종 이상의 진귀한 카메라들이 그의 수중에 들어왔다.

“물리적으로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고민을 해온 것이 분명합니다. 그 해법으로 그림이나 조각을 통해 자신을 남겼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은 극히 일부 계층에서만 가능했지요. 사진은 이 일을 모두가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을 사진이라는 매체에 영원히 담아두고 싶어 했다. 이주용 작가는 이때 사진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판타지’에 주목한다. 가령 과거에는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을 때 배경에 서양식 계단을 만들어 넣기도 했는데 그렇게 꾸며진 판타지 속 허구에 가까운 자신의 모습에 만족해했다는 것이다. 낡고 오래된 사진은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니지 않은 이상 개인적 가치일 뿐이다.

이주용 작가는 그 사진들에 가치를 불어넣었다. 과거의 사진을 현재로 소환해서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새롭게 자신만의 헤리티지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과거를 재구성해서 다시 현재에 접목시킴으로써 잊혀지고 생명력을 잃었던 과거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주용 작가는 다음 작업으로, 1930년 이전에 태어난 그래서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남은 짧은 시간을 인식하고 있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피사체의 지나간 시간이 사진 속에서는 이제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기획 이은석  사진 임익순
※ 이 기사는 <헤이데이> 24호에 게재된 것입니다.